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들썩이는 국내 미디어 시장-글로벌 강자 상륙에 국내 기업 ‘초긴장’ 플랫폼 장악·콘텐츠 ‘종속’ 우려도 솔솔

  • 노승욱,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8.11.30 09:26:30
넷플릭스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미디어 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넷플릭스가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한 가운데 OTT 시장을 키우고 국내 콘텐츠의 해외 진출 판로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적잖다.

지난 2016년 방한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사진 왼쪽)와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

지난 2016년 방한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사진 왼쪽)와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



해외 진출 판로 열릴까 ‘기대’

▷한류 열풍 확산 특급열차 될까

국내 영상 콘텐츠 제작 업계는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

기다.

넷플릭스는 가입자 1억3700만여명을 보유한 세계 1위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이다. 현재 190여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글로벌 미디어 조사업체 디지털TV리서치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미국 유료 VOD 시장의 48%, 유럽 시장 45%를 차지한다.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플랫폼인 만큼 넷플릭스가 ‘글로벌 급행열차’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의 한류 제한령으로 중국 수출길이 막힌 한국 콘텐츠 업체에 희소식이다.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드라마, 영화 등을 직접 해외에 선보이는 것 외 넷플릭스와 함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 콘텐츠 포맷을 수출하는 방법 등 다양한 경로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황유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류 열풍이 확산되고 국내 콘텐츠 업체가 해외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에서 만든 드라마 ‘다크’가 대표적인 예다. ‘다크’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다. 전체 시청자 중 90% 이상이 독일 외 지역에서 이 드라마를 봤다. ‘다크’가 인기몰이에 성공하자 넷플릭스는 제작사와 장기 계약을 맺었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넷플릭스가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제작하고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이용해 ‘다크’를 좋아할 확률이 높은 가입자에게 시청을 권유한 결과”라며 “한국 제작사도 넷플릭스 추천 기능을 통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모르지만 장르적 취향이 맞는 소비자에게 한국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국내 드라마 중 ‘다크’와 같은 작품이 나온다면 해당 콘텐츠를 만든 업체는 글로벌 제작사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콘텐츠 제작 환경도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제작비를 충분히 책정하고 드라마는 사전 제작 방식으로 촬영하는 등 국내 제작업계가 가진 문제점을 보완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투자해 만든 영화 ‘옥자’에는 600억원이 투입됐고 드라마 ‘킹덤’ 회당 제작비는 15억~20억원가량 된다. 국내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많아야 4억~5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콘텐츠 제작비가 4~5배가량 차이 난다.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에는 스태프가 200명 넘게 동원됐는데 한국 예능 역대 최대 인원이다. 국내 방송사가 좋은 프로그램을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하는 만큼 판권 판매 단가가 오르고 방송사와 제작사 간 불공정거래 관행도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역시 넷플릭스가 메기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기대다.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매출을 거둔다면 제작사 실적이 개선된다는 점도 제작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에 힘을 실어준다.

넷플릭스가 OTT 서비스 대중화에 앞장서며 전체 시장 규모가 성장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OTT 이용 행태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조사 대상자 7426명 중 OTT 이용자는 36.1%에 불과했다. 전년 이용률(35%)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이용자 대부분은 무료 서비스만 골라 봤다. 유료 서비스 이용률은 5.7%로 미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들어와 OTT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유료화에 앞장선다면 전반적인 시장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장악 우려가 일부 있으나 국내 OTT 기업이 선전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만만찮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국내 시청자는 지상파 방송·한국 영화 등 최신 국산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VOD 이용 건수 중 6개월 이내 개봉작 비중은 86.6%, 1년 이내 개봉작으로 확대하면 92.6%에 달했다(2018년 2월 기준). 한국 영화 비중은 50%를 넘었다. 이용 건수가 아닌 매출 비중으로 따지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넷플릭스는 제작된 지 다소 오래된 해외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를 주로 제공한다. 넷플릭스가 가진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IPTV나 케이블TV 등 국내 유료방송 가격이 저렴하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월간가입자당평균매출액(ARPU)은 1만원대 초반으로 영국(40달러), 미국(80~100달러)과 차이가 크다. 이통사와 SO(케이블TV) 사업자가 스마트폰, 인터넷, 유료방송을 ‘결합할인’해 팔기 때문이다.

이통사들이 SO 사업자 인수에 나설 경우 규모의 경제 효과로 가격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이통사들은 유료방송 고객은 물론, 5G·홈네트워킹 등 차세대 사업을 위한 가입자 확보를 위해서라도 SO 사업자 인수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IT 강국이라지만 영상 콘텐츠 시장은 변화가 상당히 느린 편이다. TV 등 기존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소비 행태가 생각보다 빨리 변하지 않고 있다. 또 지상파, 종편, CJ ENM 콘텐츠 수요가 지속적인 증가세라는 점도 한국 기업에는 유리한 포인트다”라고 말했다.

판로 넘어 플랫폼 종속 우려

▷“중장기적 코드커팅 가능성”

반면 OTT 업계는 새로운 글로벌 강자의 등장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간 국내 미디어 시장을 주도해온 주체는 지상파 방송사다. KBS·EBS·MBC·

SBS는 자체 제작한 방송 콘텐츠를 공동 운영하는 OTT ‘푹(pooq)TV’를 통해 배타적으로 선보여왔다. 그러나 지상파 최고 콘텐츠였던 ‘무한도전’이 종영되고 종편, CJ ENM 등의 콘텐츠 경쟁력이 높아지며 푹TV 이용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넷플릭스까지 등장하자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질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최근 IPTV 업계에 시장을 뺏기고 있는 SO 업계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옥수수’(SK브로드밴드), ‘올레TV모바일’(KT), ‘LTE비디오포털’(LG유플러스), ‘티빙’(CJ ENM), ‘브이라이브’(네이버), ‘카카오페이지’ ‘카카오TV’(이상 카카오), ‘왓챠플레이’ ‘아프리카TV’ 등 여타 OTT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시청자가 최신 국산 콘텐츠를 선호한다는 것도 ‘안전장치’로서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일단 넷플릭스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산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한국 TV쇼 작품 수는 2018년 초 60여편에서 7월에는 한국 영화를 포함해 총 500편 이상으로 늘었다. 물론 지상파 3사가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푹을 자체 운영하고 있는 탓에 견제가 만만치 않다. 다만 소비자 시청 행태 변화, 기술 발전 등이 맞물리면 넷플릭스가 중장기적으로 국내 OTT 시장을 넘볼 가능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황유선 부연구위원은 “10~30대 TV 시청 시간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OTT 서비스를 통한 동영상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 스마트TV 보급 확산, 미러링 기술, 인터넷 속도 개선 등 기술 발전을 통해 TV를 통한 OTT 서비스 시청 편의성이 좋아졌다. 이를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일정 수준의 코드커팅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넷플릭스에 대항할 만한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언제든 시장이 잠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상황이 이렇자 OTT 업계는 넷플릭스처럼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벤치마킹에 나섰다.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는 지난 2016년부터 매년 50여편씩 총 120여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다. 다른 OTT 업체도 방송사, 기획사, 제작사 등과 손잡고 아이돌이 참여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옥수수 ‘엑소의 사다리타고 세계여행’, 올레TV모바일 ‘아이콘 심쿵 청춘여행’ ‘데뷔하겠습니다’ 네이버 ‘달려라 방탄’ 등이 대표적이다. 카카오페이지는 VOD 서비스를 10분 미리보는 ‘일단 10분 플레이’ 등 독자적인 감상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옥수수는 인공지능(AI)을 통한 추천 서비스 고도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통신사 단독 중계 등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이동륜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기업의 영상 플랫폼 관련 투자로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게 유지될 것이다. OTT 플랫폼이 영상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 미디어 사업구조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콘텐츠, 채널, 플랫폼 중 1~2가지의 사업을 영위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넷플릭스, 훌루 등 통합자(Aggregator)들은 IP와 플랫폼 경쟁력을 모두 보유하면서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OTT 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프리미엄 콘텐츠 기업 가격 협상력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의 막강한 점유율 탓에 새로운 판로를 넘어 ‘플랫폼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국내 콘텐츠 산업이 넷플릭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유선 부연구위원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넷플릭스가 해외 유통망을 독점한다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제작사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은 세계 OTT 시장 판도가 어떻게 변하는가에 달려 있다. 디즈니(훌루), 아마존, 유튜브 등 다른 글로벌 OTT가 세계 시장에서 넷플릭스 독주 체제를 막고 국내 제작사가 이들과 활발하게 계약을 맺는다면 한국 시장이 넷플릭스에 종속될 가능성은 낮아질 전망이다.

급기야 방송·통신업계 일각에서는 ‘한국판 넷플릭스’ 또는 ‘그랜드 플랫폼’을 만들어 넷플릭스에 공동 대응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별 사업자의 콘텐츠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는 데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상파 3사를 중심으로 수개월 동안 ‘한국판 넷플릭스’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종편과 CJ ENM, 통신사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최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개인적 판단으로 세계에서 넷플릭스에 대항할 OTT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지상파 방송사뿐 아니라 모든 방송사가 (이용자의) ‘구독’에 의존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오를 갖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다양한 사업자의 이해관계 조율이다. OTT 업체가 대부분 자사 콘텐츠를 중심으로 서비스하고 있어 먼저 나서서 콘텐츠를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먼저 손잡는 쪽이 배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한 ‘죄수의 딜레마’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OTT 사업자 간 공동 대응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에 명과 암이 교차하자 미디어 업계는 셈법이 복잡해졌다. 방송사, CJ헬로, 종편 등은 영상 콘텐츠를 유통하는 OTT임과 동시에 콘텐츠를 제작하는 PP(Program Provider)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와 제휴하면 수익 배분 조건은 다소 불리하더라도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판로’를 확보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OTT로서는 경쟁관계지만 PP로서는 협력관계여서 ‘양날의 검’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마냥 견제, 반대하기에는 소비자 편익과 경쟁·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도 때문에 복잡하다. 넷플릭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두고 주판알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5호 (2018.11.28~12.04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