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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글로벌 방송·콘텐츠 시장-넷플릭스·아마존 공세에 디즈니도 맞불 영화·드라마·스포츠…스트리밍으로 만끽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8.11.30 09:26:46
EPL(English Premier League).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다. 잉글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EPL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리그다.

1992년 출범한 EPL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중계권료를 받는다. 2018년 기준 EPL 중계권료는 2조4000억원에 이른다. 2위인 독일 분데스리가와 비교하면 약 1조원 비싸다. EPL 주요 팀은 막대한 중계권료를 바탕으로 스타플레이어와 감독을 영입했다. EPL이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스포츠 리그가 된 비결이 바로 ‘돈’인 셈이다.

EPL 중계권료가 높게 책정된 이유는 다름 아닌 ‘스카이TV’ 덕분이다. 스카이 TV는 EPL 출범 초기부터 다른 경쟁 매체를 따돌리기 위해 축구 중계권료에 과감히 투자했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시즌 동안 스카이TV가 EPL 중계권료로 지불한 금액은 무려 7조3400억원이나 된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시즌 동안 새롭게 맺은 계약금은 약 6조5000억원으로 지난 계약보다 약 8000억원 줄었다. EPL이 유럽을 넘어 한국 등 아시아로 확장하며 인기를 이어가는데도 중계권료가 떨어진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 아마존 같은 글로벌 OTT 업체 영향으로 유료 회원 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서트, 영화 등 고급 동영상 콘텐츠를 담은 디즈니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 홈페이지.

콘서트, 영화 등 고급 동영상 콘텐츠를 담은 디즈니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 홈페이지.

▶세계에 부는 ‘코드커팅’ 열풍

▷지상파 방송사 vs 넷플릭스

코드커팅. 말 그대로 ‘선을 자른다’는 뜻이다. 동영상 콘텐츠 소비 도구가 TV 대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로 바뀌며 나타난 단면이다. 기존 케이블TV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 스카이TV가 어쩔 수 없이 EPL 중계권료를 낮춘 이유도 코드커팅 영향이 크다. EPL 중계권료가 오를수록 스카이TV는 유료 회원 가입비를 올려 이에 대응했다. 부담을 느낀 축구팬들은 회원가입 대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술집에서 축구를 보거나 인터넷을 활용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을 활용하면 EPL 전 경기를 시청할 수는 없지만 일부 주요 경기는 시청 가능하다. 유료 가입자가 점점 줄자 스카이TV는 중계권료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코드커팅은 스포츠 중계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OTT 업체들은 세계 콘텐츠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1분기 미국에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내 넷플릭스 가입자(5058만명)가 케이블TV 가입자(4861만명)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IPTV(인터넷망을 활용한 TV 서비스)가 중심인 한국과 달리 미국 방송 시장은 여전히 케이블TV 중심이다. 넷플릭스 가입자가 케이블TV 가입자를 넘어선 것은 시장 판도가 그만큼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에도 미국 케이블TV 가입자는 분기당 약 100만명씩 감소하는 반면 넷플리스 가입자 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3분기 기준 넷플릭스 가입자는 5800만명을 넘어섰다. OTT 업체는 미국 케이블TV뿐 아니라 지상파 TV도 위협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OTT 서비스 가입자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OVUM’에 따르면 2022년 이후에는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OTT 가입자 수가 유료방송 서비스 가입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OTT 시장을 이끄는 주체는 단연 넷플릭스다. 미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기준 넷플릭스 가입자 규모는 1억3700만명에 이른다.

▶안방 사수 작전, 승자는?

▷결국 콘텐츠 경쟁력 싸움

넷플릭스나 아마존과 지상파 방송사의 출발점은 달랐다. 넷플릭스나 아마존은 인터넷을 활용해 콘텐츠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기업이다. 반면 방송사는 콘텐츠 생산과 유통을 함께했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콘텐츠 생산에 뛰어들면서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넷플릭스가 널리 이름을 알린 배경이 된 드라마다. 원래 플랫폼 기업이었던 넷플릭스는 2013년 자체 제작 드라마였던 ‘하우스 오브 카드’를 선보였다. 결과는 대성공. 이후 넷플릭스가 지금까지 만든 콘텐츠는 700개에 달한다.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콘텐츠의 힘이었다. 이후에도 넷플릭스는 ‘범인은 바로 너!’ ‘시에라 연애 대작전’ 등 잇따라 히트작을 내놨다.

넷플릭스는 요즘 콘텐츠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콘텐츠에 투자한 비용은 63억달러. 올해는 약 8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미국 지상파 방송에서 소위 ‘시청률 제조기’로 불렸던 유명 제작사들은 계약 종료 후 하나둘씩 넷플릭스로 옮겨가는 중이다. 넷플릭스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강화’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다른 플랫폼 기업 또한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아마존은 올해 초 영화·드라마 제작 계열사인 ‘아마존스튜디오’ CEO로 제니퍼 살케를 영입했다. 제니퍼 살케는 NBC엔터테인먼트 대표 출신으로 NBC를 미국 시청률 1위 방송사로 올린 주역 중 한 명이다. 아마존이 넷플릭스와의 경쟁구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아마존은 올해 스트리밍 콘텐츠에 약 4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마존의 적극적인 행보는 이제 막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 방송계 최대 행사인 ‘에미상’ 시상식에서 아마존이 제작한 ‘더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즐(The Marvelous Mrs. Maisel)’은 코미디 시리즈 부문에서 최우수 시리즈상을 포함해 8개 에미상을 석권했다. 지상파와 케이블TV가 점령했던 방송 콘텐츠 시장에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IT 기반 플랫폼 기업 역시 잇따라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다. 애플TV는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서사 소설 ‘파친코’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올해 직접 제작한 ‘쏘리 포 유어 로스(Sorry For Your Loss)’를 선보였다. 플랫폼 기업의 콘텐츠 시장 참여가 활발해지자 기존 콘텐츠 업체는 반격에 나섰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대한 콘텐츠 공급을 중단했다. 아울러 폭스를 인수하며 콘텐츠 제작 독점구조를 갖췄다. 내년에는 자체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레이’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상파 방송사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 모습이다. 미국 인기 프로그램인 ‘디스 이즈 어스’나 ‘마니페스트’는 NBC, ‘더 굿 닥터’나 ‘더 코너스’는 ABC에서 제작한다. 중장년층 시청자는 여전히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지상파 텔레비전을 선호한다.

주요 지상파 방송사는 인기 제작자와 연장 계약을 체결하며 집안 단속에 나서고 있다. WB 방송사가 인기 제작자인 그레그 벌랜티와 2024년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한 것이 좋은 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미국 지상파 방송은 OTT를 가장 큰 경쟁자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콘텐츠 왕국인 디즈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OT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각자 영역을 초월하며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은 치열한 싸움을 펼치는 모양새다. 지상파와 OTT 업체 간 경쟁은 궁극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의 싸움에서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관건은 콘텐츠 확보란 얘기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5호 (2018.11.28~1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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