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감쪽같은 문서 위조…10만배 확대 현미경 앞에선 ‘들통’

조미덥 기자

진화하는 문서 감정

어음 사기 사건에서 피의자가 ‘2003년 1월29일’ 발행된 어음을 ‘2003년 11월29일’로 조작한 어음증서. 분광비교측정기에 비추자 나중에 가필한 ‘11월’이란 숫자에서 ‘1’이 혼자 다른 색의 빛을 반사해내고 있다. 대검 문서감정실 제공

어음 사기 사건에서 피의자가 ‘2003년 1월29일’ 발행된 어음을 ‘2003년 11월29일’로 조작한 어음증서. 분광비교측정기에 비추자 나중에 가필한 ‘11월’이란 숫자에서 ‘1’이 혼자 다른 색의 빛을 반사해내고 있다. 대검 문서감정실 제공

지난해 3월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법과학분석과 문서감정실에 3장짜리 문서에 대한 감정 의뢰가 들어왔다. ㄱ씨가 ㄴ씨에게 커피추출장치 특허권 사용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업무협력협정서’였다. 특허권자인 ㄱ씨는 이런 협정을 맺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상황이 불리했다. ㄴ씨가 경찰에 제출한 이 서류엔 ㄱ씨의 서명 날인까지 들어가 있었다. 이 때문에 경찰은 ㄴ씨에 대해 ‘혐의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문서감정실의 최첨단 광학현미경을 속일 순 없었다. 분석 결과 3장의 문서 중 계약 내용이 적힌 2번째 장이 다른 1·3번째 장과 글자의 토너 흡착 상태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2번째 장만 다른 프린터에서 출력됐음을 의미했다. 며칠 후 ㄱ씨는 진실, ㄴ씨는 거짓이라는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결과도 나왔다. ㄴ씨는 특허법 위반에 사문서위조, 공무집행방해 혐의까지 받고 구속 위기에 몰리자 자신의 서류 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사건 당사자들의 말이 엇갈릴 땐 계약서 같은 문서가 증거로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다 보니 수사기관에 조작 문서를 내 자신의 죄를 피하거나, 상대방을 무고하는 일이 많다.

문서 조작은 내용을 바꾸거나 도장, 지문을 위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문서감정실은 일선 수사팀 의뢰를 받아 필적이나 필기구(잉크)가 동일한지 분석하고 도장 자국이 실제 도장과 동일한지, 도장과 글씨 중 무엇이 먼저인지 등을 가려낸다. 지난해 이렇게 3440건에 1만925점을 감정했다.

위조 기술은 나날이 정교해진다. 문서감정실도 50여개의 최첨단 장비를 갖춰 대처한다. 최대 10만배까지 확대할 수 있는 주사전자현미경, 빛의 파장으로 잉크 성분을 분석하는 분광비교측정기가 대표적이다.

2016년에 일어난 어음사기 사건에선 분광비교측정기가 큰 역할을 했다. 6억원짜리 어음의 발행일이 ‘2003년 11월29일’이었는데 측정기에 비춰보니 ‘11월’의 ‘1’ 중 하나가 혼자 다른 빛을 반사했다. 원래 1월인데 뒤늦게 1자를 가필한 것이다. ㄷ씨가 ㄹ씨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자 ㄹ씨에 대한 채권이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해 2003년 1월29일에 발행했다 무효화한 어음을 또 다른 어음인 것처럼 변조한 것이다. ㄷ씨는 유가증권변조, 소송사기미수 등 혐의로 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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