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상은 속여도…뇌파는 못 속여

조미덥 기자

심리분석

한 20대 남성에게 둔기 6개를 1초씩 보여줬더니, 범행도구로 쓴 둔기를 보고 뇌파가 흔들렸다

미궁에 빠질 뻔한 ‘여수 두 살배기 살해 사건’은 이렇게 해결됐다

<b>뇌파분석 재현</b>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의 법과학분석과 심리검사실 연구원이 피의자에게 뇌파 감지 기구를 씌운 후 범행도구로 사용된 둔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뇌파분석 재현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의 법과학분석과 심리검사실 연구원이 피의자에게 뇌파 감지 기구를 씌운 후 범행도구로 사용된 둔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초 전남 여수에서 20대 남성이 두살배기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붙잡혔다. 세 차례 현장검증에도 시신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수사팀은 부인에게서 충격적인 자백을 받았다. 남편이 무차별 폭행으로 아들을 실신시켰는데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날까 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결국 사망했고, 둔기와 흉기로 아들 시신을 훼손해 유기했다는 내용이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이 진술에 근거해 수사했지만 2년 넘게 지난 사건이라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대검찰청에서 과학수사 기법인 ‘뇌파분석’을 제안했다. 대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법과학분석과 심리분석실에서 피의자에게 뇌파 감지 기구를 씌우고 서로 다르게 생긴 둔기 6개를 순서대로 1초씩 보여줬다. 피의자의 뇌파는 부인이 시신 훼손에 사용했다고 지목한 둔기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였다. 피의자의 머릿속에 이 둔기가 각인돼 있다는 뜻이었다.

이후 재판에서 남성은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당시 수사검사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학대치사만으로는 형량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뇌파분석 결과 등으로 시신 훼손이 인정돼 중형이 선고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뇌파분석은 이렇게 강력범죄에서 범인만 알고 있는 범행 도구나 범행 장소 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범죄자가 범행과 관련된 것을 보면 0.3초 후 중추신경에 반응이 나타난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심리분석실의 다른 과학수사기법으로 ‘심리생리검사’가 있다. 흔히 ‘거짓말탐지기 검사’로 알고 있는 것이다. 탐지라는 표현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2004년 공식 명칭을 바꿨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죄책감, 상대를 속이는 즐거움 등 3가지 감정이 일어나면서 땀과 맥박, 혈압, 호흡 등 자율신경계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를 잡아내는 기법이다.

조사자는 피의자에게 10여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번 조사에 사실대로 응하겠습니까’ 등 통상적인 질문들 속에 피의자가 거짓 진술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을 섞어 넣고, 대답할 때 반응을 살핀다.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는 사전에 피의자에게 알려준다. 거짓말이 아닌데 질문 자체에 놀라서 거짓 반응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심리생리검사 결과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1979년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최근 하급심에서는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2013년 이웃 남성이 장애인 모녀를 강간한 사건이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들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재판에서 이 남성에 대한 심리생리검사 결과가 증거로 채택돼 유죄가 확정됐다.

‘행동분석’은 초당 30프레임이 들어가는 스포츠 중계용 카메라로 피의자가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찍어 거짓말인지 가려내는 기법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입꼬리가 올라간다거나 미간을 찌푸리는 등 0.25초 안에 미세한 표정 변화가 생긴다. 위협적인 질문에는 눈을 비비는 등의 방어행동도 보인다. 그러한 변화를 프레임마다 체크해 분석하는 것이다.

‘임상심리평가’는 강력사건에서 피의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성격의 특질이 어떤지 분석하는 데 사용된다. 피의자가 감형을 받기 위해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 그 타당성을 분석하기도 한다.

최근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에게 변태성욕과 가학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서 피의자가 주장하는 해리성 장애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것도 임상심리평가에 따른 것이다.

대검 심리분석실은 연간 6000건을 의뢰받아 분석을 진행한다. 피의자가 일체 자백한 사건이라면 임상심리평가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심리생리검사와 행동분석, 임상심리평가를 통합해 진행한다. 이런 통합분석은 선진국에서도 흔치 않은 한국 검찰의 독보적인 수사기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방철 심리분석실장은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 뇌파와 자율신경계의 반응은 막을 수 없다”며 “향후 수사에서 심리분석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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