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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롱 패딩의 원인-롱 패딩 겨울 왕국

입력 : 
2018-11-28 1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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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패딩은 한파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초 겨울부터 롱 패딩의 나라가 됐다. 겨울이 되면 모두가 약속한 듯 길고 두툼한 월동복을 꺼내 입는다. 아니, 새로 산다. 하나 된 겨울, 하나 된 대한민국 패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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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대한민국의 겨울은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롱 패딩으로 하나 된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할 기세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모두 이 제품에 겨울 매출의 사활을 걸었다. 심지어 이른 한파 예고에 롱패딩이 8월부터 조기 등판했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10월 셋째 주까지의 롱 패딩 매출은 전년 대비 50% 상승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작년 약 60만 장의 패딩 판매 기록을 세운 패딩 강자 디스커버리 역시 지난 10월 전년보다 40%를 웃도는 매출 신장을 보였다고 한다. 소비 경기가 바닥을 친다는 요즘,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다. 이러니 온갖 패션 브랜드에서 빅 모델이란 빅 모델은 모두 등장시켜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게 설명이 된다. 기능, 디자인, 소재를 강조하며 전 연령대에 어필하는 건 기본이다. 가격은 합리적으로 유지하면서, 길이를 더 길게 하고, 세련된 컬러와 라인으로 어필하는 디자인 전략이 주요 포인트.

사실 롱 패딩은 디자인 변주가 쉽지 않은 항목이다. 태생이 야외에서 극강의 추위를 견뎌야만 하는 스포츠 선수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보니, 패셔너블한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직 ‘방한’이라는 기능에나 충실한 놈이었다. 오죽하면 이름이 ‘벤치 재킷’이었을까. 국내에서는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야외 촬영이 많은 영화판 스태프들이 즐겨 입는다 해서 ‘스태프복’이라고 불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마디로 ‘생존 재킷’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게 어쩌다 전 국민의 패션 필수품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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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컬렉션부터 연예인 출근룩, 롱 패딩 기억을 더듬어 보자. 2017년 라프 시몬스, 배트멍 컬렉션에, 수도 없이 많은 컬렉션에 등장한 화려한 디자인의 롱 패딩들. 하지만 가을 겨울 컬렉션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등장하는) 롱 패딩은 과장되고 상징적인 쇼복인 경우가 많다. 그 옷을 그대로 거리에 입고 다니는 걸 보긴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겨울 길거리는 캣워크의 재현? 그건 또 아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디자인은 컬렉션 느낌과는 달리 상당히 실용적이고 심플하다. 거의 스포츠 경기에 등장하는 벤치 재킷을 테마로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 등장해 대란이 났던 롱 패딩 역시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쇼트 패딩이 인기인데, 국내는 롱 패딩 없이는 겨울 나기가 힘들 지경이다. 인터넷엔 ‘롱 패딩 브랜드별 디자인 비교’라는 친절한 평이 넘친다. 작년만 해도 중고생과 20대에 한정된 인기였다면 이제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수품이 된 느낌. 브랜드 마케팅의 힘이 발휘된 결과겠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이 현상엔 대한민국 ‘셀럽’의 영향이 있는 게 틀림없다. 아이돌의 출근룩에 등장했던 수많은 롱 패딩의 디자인이 대부분 스포츠 브랜드의 기능적인 벤치 재킷 스타일이었다. 기능성 롱 패딩이 ‘워너비’ 아이템이 된 것은 그들의 영향력이 센 대한민국에선 자연스런 흐름이기도 했다. 광고 모델로 동원된 그들의 스타일은 하나같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안에서 가성비, 가심비를 꼼꼼히 따지고 한끗 차이인 디자인 디테일을 매의 눈으로 캐치한다. 이 열풍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겨울 롱 패딩 없이 겨울을 난다는 건 어색할 수 있다. 거리에 롱 패딩이 차고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유니폼처럼.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언스플래시, 유니클로, 디스커버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6호 (18.12.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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