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출국’ 노규엽 감독, "진영논리 떠나 실패한 아버지 얘기 그리고 싶었다"

김경학 기자
노규엽 감독이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뒤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노규엽 감독이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뒤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학 기자

“실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건데 실패한 아버지는 영원히 실패한 아버지로 남아야 하나. 실패 이후 어떠한 삶을 사는지가 가족이나 가장으로서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영화 <출국>으로 장편 데뷔한 감독 노규엽(38)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묵묵히 일했던 가장을 보듬어주고 싶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지난 14일 개봉한 <출국>은 1980년대 냉전시대 자신의 충동적인 판단으로 인해 가족을 뺏긴 오영민(이범수)이 가족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회주의 경제를 전공한 영민은 군부독재 정권에 반발하다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서독으로 망명한다. 베를린에서 지내던 영민은 북한에 가면 자신의 연구도 인정받고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북한으로 향한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공작 활동을 하도록 강요받자 실수라고 판단한 영민은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북한의 감시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아내(박주미)와 작은 딸은 북한 요원에게 잡히고 만다. 큰 딸 혜원(이현정)과 함께 베를린에 송환된 영민은 동베를린에 있는 가족을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이 사실을 파악한 미국 CIA와 한국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영민의 움직임을 감시한다.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노 감독은 독일 유학 중 월북했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탈출한 오길남 박사의 에세이집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썼다. 노 감독은 “6년 전 오 박사님의 비극적 탈출 사건을 알게 됐다. 1970~1980년대 아날로그 시대 체제 굴레 속에 함몰돼 가족을 잃은 스파이 개인의 이야기에서, 차가움과 뜨거움이 겹치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냉전시절 남북미 정보기관이 등장하는 첩보물이지만, 액션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일부 액션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주로 상처받고 고뇌하는 영민 개인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노 감독은 “영민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이 온전히 냉정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고, 완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경계에 있는 인물로 구성했다”며 “어떤 장르에 담을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 첩보전보다 아버지의 사투, 부성애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 빠른 호흡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탈출할 때까지의 초반 설정은 오 박사의 이야기지만, 영화 대부분은 창작한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노 감독은 오 박사를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그는 “오 박사님을 만나면 오히려 테두리에 갖힐 것 같아 시나리오 작업 때도 만나지 않았고, 같은 이유로 이범수 선배에게도 원작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지 않았다”며 “오 박사님의 전기 영화였으면 오 박사님을 만나 뵙고 실존 인물의 호흡을 느끼고 했을 텐데 가족을 구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 이야기라 따로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영화 속 공간은 베를린이지만, 실제 촬영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진행했다. 노 감독은 “브로츠와프는 1950년대까지 독일 영역이라 구시가지에는 독일 양식의 건물이 남아있었다”며 “절반은 폴란드, 나머지는 한국에서 촬영했다. 마지막 벌판 장면은 군산에서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중반 영민이 브로츠와프 르넷 광장 한 가운데 설치된 공중전화에서 3국의 감시 속 통화하는 장면은 갈 곳 없는 경계인의 처지를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노 감독은 “공중전화 부스는 실제로 없다. 개인적으로 부스가 광장 모퉁이에 설치되길 바랐는데, 촬영감독님이 어설픈 모퉁이보다 과감하게 정중앙이 낫지 않을까 해서 위치를 바꿨다”며 “일반적으로 시나리오 속 장소보다 실제 촬영 현장은 못하기 마련인데, 르넷 광장은 제 상상보다 더 훌륭해 설레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출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 ‘화이트리스트’ 영화로 분류돼 지원금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노 감독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른바 화이트라 불리는 영화들이 갖는 일반적인 특성이 있다.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든지 반공·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다든지. 저희 영화는 그런 내용과 거리가 많이 멀고, 결이 다르다”며 “개봉 전부터 진영논리에 의해 좋은 댓글, 나쁜 댓글이 올라온다. 이념 논쟁을 하려면 영화가 아닌 책이나 다른 매체를 택했을 것이다. 진영논리에 의해 제작진의 진심이 왜곡되고 퇴색되는 것 같아 속상한 게 솔직한 제 심정”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영문 제목은 <Unfinished(끝나지 않은)>다. 노 감독은 “영문 제목은 빨리 정해졌다”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오영민의 고통일 수 있고, 가족을 찾기 위한 그의 몸부림도 끝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지금 분단의 현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영화 <출국>의 한 장면. 디씨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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