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 가위손’ 리마스터링 앨범 내며 10년 만에 활동 재개

활동을 재개한 싱어송라이터 임현정. 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제공
가수 임현정(44)이 지난 10월 <2집 가위손(리마스터링)> 앨범을 내놨다. 1998년 내놓은 오리지널 앨범은 한국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명반으로 불린다. 모두 10곡이 수록됐다. 9번 트랙 ‘Moon lover(문 러버)’ 작사를 빼고는 모든 곡을 임현정이 작사·작곡·편곡했다.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와 나를 깨우던 그대는….’ 첫 소절부터 사람들을 흥얼거리게 하는 노래 ‘첫사랑’이 수록된 앨범이기도 하다. 임현정은 2008년을 마지막으로 음악 활동을 접다시피 했다. 그간 심한 공황장애를 앓았다. 10년 만에 활동을 재개한 그를 최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임현정은 “2008년 준비했던 디지털 싱글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음악을 중단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곡이 잘 써지지 않았고 2010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며 “심각했을 때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곁에 있어 준 이는 남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랜 침묵을 깨고 올해 4월 발표한 싱글 ‘사랑이 온다’는 배우자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했다.
그는 “2013년, 몸이 최악의 상황에 다다랐을 때 유고처럼 만든 노래였다”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을 축복처럼 기도하는 마음을 담았다. 결국 몸을 회복하고 의미 있게 내가 부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타 선율로 시작하는 곡은 ‘가난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사랑을 만나 이토록 눈부신 하늘을 날고’라고 노래한다.
2016년 이후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고 다시 음악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음악을 했던 20대 때처럼 갈급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는 “어렸을 때, 많이 고독했다. 종일 음악만 만들었고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이 힘든 시기였다”며 “이제 음악을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2집 리마스터링을 하면서 음악 환경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임현정은 “녹음실에 갔는데, 예전에 유명하던 연주자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며 “전자음악이 많아지다 보니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연주하는 이들의 수요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장 신경 쓴 노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라고 했다.

1996년 데뷔한 임현정은 2006년까지 총 5개의 앨범을 발매했다. 데뷔 때부터 전곡을 프로듀싱하는 등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첫사랑’이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은 경쾌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노래다. 아름다운 사랑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임현정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그의 앨범을 찬찬히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는 록을 기반으로 재즈, 펑크, 뉴웨이브 사운드를 결합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해왔다.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가장 나쁜 것 중의 하나가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한때 지겹도록 신문과 뉴스를 보며 살았다”고 말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2집 앨범에 담긴 ‘5월의 꿈’은 5·18 민주화 운동을 모티브로 한 노래다. ‘바보상자’는 당시 대두하던 TV 방송을 향한 풍자적인 비판을 담았다. 사회적 소수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동명의 영화 <가위손>과 연상해 풀어낸 노래나 편견에 대해 말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등의 노래도 있다.
뮤지션 ‘임현정’의 정체성이 대중에게 알려진 부드럽고 경쾌한 곡들로만 채워지는 것에 대한 괴리감은 없을까. 그는 “대중적인 팝스타가 안된 이유도 그 차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음악이란 언제나 청자의 입장에서 재해석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의도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대로 소중하지만, 아니어도 속상해할 일은 아니다. 팬들과 공감할 수 있는 공연도 언젠가 하고 싶다”고 전했다.
임현정은 12월 또 다른 싱글 발매를 앞두고 있다. 3개월 간격으로 싱글을 발표해 내년에는 신곡 5~6곡을 담은 EP 앨범을 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