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의 시대, 사람들은 좀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다. 장시간 종이를 넘기며 작가가 그려놓은 설계도 안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는 행위가 전혀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흉내내는 ‘책물고기’ 속 책벌레는 어쩌면 바쁘게만 사느라 내 삶의 이야기가 어떤지 살펴볼 틈 없는 삶의 수면에 던져진 하나의 돌멩이가 아니었을까. 역자 김택규는 ‘책벌레’ 대신 몸속을 헤엄쳐 다니는 ‘책물고기’, 서어라는 다소 이색적인 표현으로 작가 왕웨이롄의 상상력을 압축해 보여준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소금 공장에서 살아가는 노동자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광저우 사람이 되려고 기를 쓰는 북방 출신의 아버지(‘아버지의 복수’). ‘책물고기’를 포함, 5개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한 사람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컬러가 다르지만,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주변인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링허우’란 덩샤오핑의 ‘한가구 한자녀 정책’ 실시 이후인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로, 대부분 외동이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란, 반항적이고 개성 있으며 의식이 있는 세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 왕웨이롄도 1982년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난 ‘바링허우’ 세대로, 중국 문단에서 ’이야기 없는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불린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 없는 시대란, 후기에서 밝혔듯 “더 높은 효율로 공장에서 찍어내듯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로 채워진 시대다. 왕웨이롄은 더 이상 신비로울 것이 없는 시대, 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의 독자들을 환상세계로 데려가고, 거기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환상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그가 표현해내는 환상은 너무나 현실 같고 생생해서, 도무지 빠져나올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중·단편의 물리적 한계 속에 그러한 장치를 심어두고, 독자들이 빠져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현실로 소환해내는 재주는 쉽지 않다. ‘이야기의 숲을 가만히 거니는 고양이’라는 뜻의 ‘묘보설림(猫步說林)’은 글항아리의 중화권 현대소설 시리즈로,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최근 젊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효율’과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효율과 정반대에 서 있는 몽환적인 이야기의 늪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뜻하지 않은 그림책 위로법 『그림책테라피가 뭐길래』
그림책테라피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 그림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읽고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매년 1000명 이상 참가하는 그림책테라피 워트숍 속 풍부한 사례와 체험에 따라 그림책테라피의 탄생, 개념, 실전 워크숍, 마음의 증상별 추천 그림책까지 알기 쉽게 전달한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글항아리, 나는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5호 (18.11.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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