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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레스 in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우리가 필요한 것은 통제 가능한 새로운 질서다’

입력 : 
2018-11-21 16: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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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레스(Juarez), 미국 텍사스 주 엘패소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멕시코 치와와 주의 북단 도시다. 인구 100만명이 조금 넘는 이 도시는 한때 공업 도시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미국으로의 마약 밀반입 루트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살인 사건과 폭력이 일어나고 멕시코 마약 카르텔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아 여행하기 위험한 도시로 손꼽힌다. 물론 이 도시의 낮과 밤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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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레스에서 바라본 엘패소_위키피디아 ⓒAstrid Bussink
▶낮에는 일상이, 밤에는 카르텔이 지배

선인장, 데킬라 그리고 정열적인 태양의 나라 멕시코. 아메리카 대륙의 정가운데에 위치한 멕시코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연결 고리며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다. 사실, 미국 북쪽의 캐나다는 미국과는 거의 한배나 다름없다. 인종적, 언어적 이질감이 없고 캐나다 역시 미국과 별반 차이 없는 생활 수준으로, 캐나다 국민들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멕시코는 다르다. 미국 독립 전쟁 때부터 멕시코와 미국은 분쟁이 잦았고 이때마다 멕시코는 조금씩 땅을 내주었다. 지금의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 멕시코 주 등은 원래 멕시코의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은 멕시코의 ‘엘도라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1세기 만에 멕시코는 미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이자 비상구 역할을 할 정도로 그 차이가 커졌다. 물론 미국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세계의 경찰 국가이자 공급 공장으로서의 역할을 마다하고 그 비용마저 각 국가에 청구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에는 중남미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국경선을 넘고 있다. 정치 사회적 불안정, 경제적 불황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들에게 미국 국경선을 넘는 것은 ‘마지막 선택’처럼 절박하다. 이와 함께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의 철책은 더욱 견고해지고, 벽은 높아지고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부르짖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현재의 미국 시민’들은 찬성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방법은 땅굴이 되어 버렸다. 날개가 없으니 어쩌면 필연의 선택이다. 휴전선에만 있는 줄 알았던 땅굴이 태평양 건너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멕시코의 시우다드 후아레스(Mexico Ciudad Juarez)다.

미국 텍사스 주 엘패소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멕시코 치와와 주의 북단 도시 후아레스는 인구 100만명이 조금 넘는 도시로, 한때 공업 도시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마약 밀반입 루트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많은 살인 사건과 폭력이 일어나고 마약 카르텔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아 여행하기 위험한 도시로 손꼽힌다. 물론 이 도시의 낮과 밤은 다르다. 낮에는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을 영유하지만 밤에는 모두 문을 닫는다. 후아레스의 밤은 또 다른 세상이다. 이 후아레스가 폭력과 공포의 도시가 된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 가깝다는 것, 그것은 돈을 의미한다. 중남미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는 마약 중 상당수가 바로 후아레스의 육상 루트를 통하기 때문이다. 이는 후아레스를 장악하면 세력과 돈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래서 각 카르텔 간의 후아레스를 손에 넣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 같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 바로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다. 텍사스 엘패소 리오그란데강 건너에 있는 이 도시는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지난 십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사라지거나 시체가 되어 발견되는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이곳에도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뛰노는 평범한 일상이 뒤섞여 있다.

이 도시의 이면을 드니 빌뇌브 감독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죽음과 삶이 뒤섞인 일상, 합법이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폭력의 효용성, 개인적인 복수와 공권력의 단죄 등 이 모든 것을 한데 뭉쳐 꽤 심각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선과 악이 뒤집어진 세상에서 혼란에 빠진 원칙주의자 FBI 요원 케이트, 목표를 위해서라면 법의 테두리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 수 있는 알레한드로, 탈법적인 행동을 묵인하며 임무만을 위해 움직이는 CIA 소속 맷까지, 입체적인 세 캐릭터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며 강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또한 캐릭터 각각에게 주어진 밀도 높은 드라마는 “악을 제압하기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다면 이를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드니 빌뇌브는 “영화는 미 국경에서 벌어지는 마약 카르텔에 대한 비밀 작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결국 문제 해결 상황에 부딪힌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후아레스는 지옥처럼 보인다. 이 도시 사람들에게 공권력과 정부의 정책이나 복지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저 황량한 모래바람이 쓸고 지나는 것처럼 도시는 하루가 지나면 또 다시 비극이, 참극이 반복된다. 이런 모습이 더욱 극명해 보이는 건 바로 건너편 미국의 모습 때문이다.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미국 땅은 나무도 있고, 집도 있고, 물건도 있고 그리고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스쿨버스도 있다.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인간은 보지 않은 것,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욕망은 없다. 한번쯤 보거나, 맛보았던 욕망은 아무리 털어 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질긴 생명력으로 인간을 지배한다. 결국 욕망 달성 수단으로 후아레스가 선택한 것은 마약이다.

그것조차 모두의 것은 아니다. 순간의 달콤함에 현혹된 경찰은 할 일을 잊고 마약을 운반하지만 그 대가로 손에 쥔 건 푼돈이고 그조차 막상 쓸 데가 없는 곳이 후아레스다. 마약 냄새로 가득 찬 후아레스에서 법은 물론이고 ‘인간적’이라는 단어는 통용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이 도시의 모두에게 하루는 동일한 시간이지만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천국이든 혹은 천국이라 믿고 살고 있든, 지옥이든, 서서히 ‘중독’되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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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대항하는 정의는? 합법 혹은 불법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멕시코의 소노라 마약 카르텔에게 납치된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카르텔의 아지트를 습격한다. 일행은 쉽게 아지트를 장악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하지만 벽을 뜯는 순간 케이트는 경악한다. 벽에는 살해된 채 거의 미라가 된 수십 구의 시체가 즐비하다. 그때 소노라 카르텔이 폭탄을 설치한 야외 가건물을 수색하던 경찰이 폭탄에 의해 죽고 만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하고 정부에 마약 카르텔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케이트는 파트너인 레지와 함께 FBI 본부로 호출된다. FBI 간부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이 회의를 하고 있다. 그 인물은 맷 그레이버(조슈 브롤린)다. 케이트의 상관은 소노라 마약 카르텔의 폭탄 테러를 응징하기 위한 특별 수사팀을 구성했다며 케이트에게 자원할 수 있는지 묻는다. 케이트는 응낙한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짓는 맷과 악수를 나눈다.

애리조나주 루크 공군 기지. 이곳에서 케이트는 맷과 전용기를 탄다. 맷은 케이트에게 작전에 대해, 이 비행기가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또 전용기에는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라는 의문의 인물이 동승한다. 맷은 케이트에게 알레한드로를 ‘사냥개’라고 소개한다. 전용기 안에서 케이트는 알레한드로가 악몽을 꾸는 것을 지켜본다. 온통 의문투성이다.

맷과 알레한드로, 케이트는 국경 도시인 엘패소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대테러 부대 정예 부대원들이 완전 무장한 채 집결 중이다. 케이트는 맷이 CIA 요원임을 알게 된다. 즉 이번 작전에는 CIA, FBI, 육군 대테러 부대 그리고 정체불명의 알레한드로가 참여하는 연합 작전이다. 맷은 팀원에게 이번 작전을 설명한다. 곧 멕시코의 시우다드 후아레스로 가 그곳에 수감되어 있는 소노라 카르텔의 간부 기예르모를 미국으로 호송하는 것이다. 케이트는 맷에게 알레한드로의 정체, 이번 작전의 불법성을 지적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여하기 싫으면 그냥 여기 있어요”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 맷과 팀원들을 태운 대형 SUV 3대가 질주한다. 이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는 순간 멕시코 경찰 순찰차가 이들을 경호한다. 국경선 하나로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 잔혹한 죽음과 평범한 일상이 공존하는 멕시코 후아레스를 바라보는 케이트. 알레한드로가 케이트에게 말한다.

“웰컴 투 후아레스!”

기예르모를 인계받은 일행은 빠르게 국경 검문소로 향한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있다. 맷과 팀원들은 긴장하며 총을 든다. 그 순간, 두 대의 승용차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팀원들은 총을 들고 있는 카르텔 조직원들을에게 “총을 내려 놓으라” 소리친다. 그 순간 마약을 한 것 같은 조직원 한 명이 권총을 뽑자 맷과 팀원들의 총이 일제히 불을 뿜는다. 쓰러지는 카르텔 조직원들. 케이트는 경악한다. 시민들이 있는 곳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것은 미국법상 불법. 그때 케이트는 승용차의 사이드 미러에서 총을 든 조직원을 발견하고 그를 쏜다. 이 총격전으로 멕시코 카르텔 조직원 8명이 사망했다.

심문실, 기예르모는 공포에 떨고 있다. 그곳으로 알레한드로가 물통을 들고 들어가자 녹화도 중단되고, 요원들도 철수한다. 기예르모는 냉혹한 알레한드로의 비공식적인 심문 즉 ‘고문’을 당한다. 케이트에게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의혹투성이다. 자신의 역할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케이트의 거듭되는 요구에 맷과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작전을 설명해 준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소노라 카르텔 보스 파우스토 알라르콘이다. 그는 미국으로 엄청난 양의 마약을 쏟아붓고 있다. 그 공급 루트는 땅굴인데 우리는 밀입국자들을 통해 땅굴의 위치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또 보스 파우스토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사촌이며 카르텔의 중간 보스인 마누엘 디아즈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돈세탁을 책임지고 있는 마누엘 디아즈를 잡기 위해서는 카르텔의 자금을 동결시킬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마누엘 디아즈는 분명히 파우스토를 찾아갈 것이다.”

이 설명에 일부 수긍한 케이트는 돈세탁을 하러 은행에 온 조직원을 붙잡고 돈을 압수한다. 맷은 케이트에게 “은행에 들어가지 말라” 충고하지만 케이트는 계좌 동결을 위해 은행에 들어가고 케이트의 모습은 CCTV에 녹화된다. 케이트는 법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맷에게 요구하지만 맷과 알레한드로는 들은 척도 않는다. 분노한 케이트는 자신의 FBI 상관에게 맥과 팀원들의 불법성, 카르텔 간부에 대한 불기소 등을 보고하지만 FBI 상관은 이렇게 대답한다. “카르텔 중간 보스 하나 잡아넣자고 작전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이들 조직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 이 작전의 최고 승인자는 우리 같은 임명직이 아닌 ‘선출되신 분’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번 작전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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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늑대들의 땅 우울해진 케이트는 동료인 레지와 함께 술집을 찾는다. 이때 레지의 옛 동료인 현직 피닉스 경찰인 테드가 합석한다. 케이트는 테드와 오랜만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두 사람은 케이트의 숙소로 간다. 소파에서 뒹구는 두 사람. 그 순간 테드가 불편한지 주머니에서 소지품을 꺼낸다. 달콤한 순간을 보내고 있던 케이트는 무심결에 테드의 소지품을 본다. 그리고 깜짝 놀란다. 하늘색 고무 밴드. 바로 소노라 카르텔이 사용하는 돈을 묶기 위한 밴드다. 권총을 뽑으려는 케이트를 제압하는 테드. 그는 이미 카르텔에게 매수 당한 경찰이다. 은행 CCTV로 케이트를 확인한 카르텔에서 케이트를 조사하려 테드를 일부러 접근시킨 것이다. 목이 졸리는 케이트. 곧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테드를 덮친다. 알레한드로다. 그는 카르텔에서 케이트를 습격하리라 예상하고 케이트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테드는 맷에게 넘겨진다. 테드는 고문과 회유를 당한 후 매수된 경찰관 명단과 비밀 땅굴의 위치를 밝힌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조심성 없음과 무능,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진 케이트. 그녀에게 알레한드로가 말을 건넨다.

“당신을 보면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이 떠오른다.”

맷은 작전을 세운다. 카르텔의 비밀 땅굴을 습격한다. 그러면 중간 보스 마누엘이 분명 파우스토를 찾을 것이다. 그때 마누엘을 뒤쫓아 파우스토를 제거하는 것이다. 케이트도 팀원들과 땅굴로 들어간다. 어둠 속, 미로의 땅굴에서 총격이 벌어지고 맷과 대원들은 천천히 땅굴을 장악해 나간다. 그때 팀원들과 떨어져 다른 곳으로 향하는 알레한드로. 케이트는 알레한드로를 미행한다. 알레한드로는 땅굴의 다른 입구로 향한다. 그곳에는 카르텔 조직원이 멕시코 경찰 실비오의 차에 마약을 담는 중이다. 멕시코 경찰인 실비오 역시 예전부터 카르텔에 매수된 경찰. 알레한드로는 조직원을 사살하고 실비오를 묶으려하자, 그때 케이트가 알레한드로를 저지한다. 그 순간, 망설임 없이 케이트가 입고 있는 방탄복 위로 총을 발사하는 알레한드로. 쓰러지는 케이트. 케이트에게 다가간 알레한드로가 조용히 말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다시는 내게 총을 겨누지 말라.”

실비오에게 운전을 시키고 뒷좌석에서 총을 겨누는 알레한드로. 그는 마누엘을 쫓는다. 이미 인공위성에서는 마누엘의 위치를 추적 중이다. 그 시간, 총격의 충격에서 벗어난 케이트는 뒤늦게 땅굴에서 나온다. 그리고 맷을 보자마자 그에게 주먹을 날린다. 맷은 흥분한 그녀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이번 작전의 진짜 목적을 이야기해 준다.

“애초부터 이 작전은 우리들의 몫이다. 케이트 당신을 합류시킨 것은 순전히 합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우리 CIA는 국내에서 작전을 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국내 작전 권한이 있는 FBI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 목적으로 당신이 이 작전에 들어온 것이다. 또 소노라 카르텔의 보스를 제거하는 것만이 작전의 끝이 아니다. 보스의 빈자리는 또 누군가의 차지가 된다. 우리는 멕시코 카르텔을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우리의 통제가 가능한 콜롬비아 카르텔에게 패권을 넘겨줄 것이, 그리고 이 지구상의 20% 인구를 설득해서 당장 마약을 끊게 할 수 없다면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케이트, 시계의 구조를 알려고 하지 말고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것을 봐.”

그 시각, 알레한드로는 실비오가 운전하는 경찰차를 타고 카르텔 중간 보스 마누엘의 차를 세운다. 마누엘의 다리를 쏘는 알레한드로. 그리고 실비오도 사살해 버린다. 마누엘의 차를 타고 소노라 카르텔의 보스 파우스토의 집으로 향하는 알레한드로. 저택 경비병을 차례로 처리하는 알레한드로. 이윽고 야외 식당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파우스토를 발견하고 그의 앞에 선다. 파우스토와 그의 아내, 두 아들은 순간 긴장하고 당황한다. 조용히 의자에 앉는 알레한드로.

“아이들이 영어를 알아듣나?”

“모른다.”

“그럼 영어로 하지.”

“알레한드로,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내게는 개인적인 감정이야, 파우스토. 식사해!”

사실 알레한드로는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과 연결 고리지만 카르텔 조직원은 아니다. 그는 후아레스에 근무하던 검사. 파우스토는 알레한드로의 아내를 참수하고 딸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장본인이다. 알레한드로는 개인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 CIA 작전에 참여한 것이다. 파우스토는 “아이들 앞에서는 이러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알레한드로는 냉혹하다. 그는 조용히 말한다.

“신을 만나러 갈 시간이군(Time to meet god).”

그리고 파우스토의 아내와 두 아이를 순식간에 사살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가족이 죽는 것을 본 파우스토의 눈빛은 흔들리고 온몸은 굳는다. 알레한드로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긴다.

케이트의 숙소를 찾은 알레한드로. “케이트, 발코니에 서 있는 것은 좋지 않아. 당신은 겁에 질린 어린아이 같아. 당신을 보면 내 딸이 생각나는군. 이 서류에 서명을 해.”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이번 작전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서류를 내민다. 케이트는 울면서 이를 거부한다. 그러자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의 목에 총을 겨눈다. “케이트, 여기서는 자살을 당할 수도 있어. 서명해.” 서명을 하는 케이트. 서류를 챙기고 권총을 분해해 버린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나직이 말한다.

“케이트, 여기는 무법천지의 늑대들의 땅이야. 여기서는 목숨을 지킬 수가 없지. 당신은 늑대가 아니야. 그러니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으로 떠나.”

알레한드로가 방을 나가자 케이트는 급히 권총을 조립한다. 그리고 숙소 밖 주차장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알레한드로를 겨냥한다. 알레한드로는 정면으로 돌아서 케이트를 바라본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케이트. 알레한드로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간다.

후아레스.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실비오의 아들도 있다. 그때 수십 발의 총성이 들린다. 잠시 멈추고 조용한 아이들, 그러다 다시 축구를 한다. 그들에게 후아레스에서 총성은, 즉 죽음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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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할 수 있는 질서의 필요성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는 미국과 멕시코 정부, 경찰, 마약 카르텔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FBI, CIA의 관계 등을 세심하게 짚어낸 액션 수작이다. 특히 탁월한 총격전, 긴장감 넘치는 연출 솜씨로 개봉 당시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시카리오 sicario’는 살인 청부업자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영어에서 쓰일 때는 마약 카르텔 조직원을 뜻한다.

영화는 ‘늑대를 제거하기 위해 더 잔인한 야생 늑대를 풀어 놓는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을 선택한 미국의 마약 카르텔을 대하는 이데올로기를 큰 틀로 하여 정의, 법과 폭력의 미묘한 경계선을 넘나든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은 우선 CIA와 FBI의 관계와 정체다. CIA는 미중앙정보국으로 우리의 국정원과 같은 조직이다. 해외 작전을 주로 하지만 국내에서의 작전과 공작 그리고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에 반해 FBI는 연방 경찰이다. 미국 내 영토에서 벌어지는 모든 범죄를 관할하지만 해외 공작을 할 수 없다. 당연히 FBI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성을 강조하는 조직이고, CIA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FBI보다 광의의 활동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맷에게 케이트가 필요했던 것은 케이트의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오로지 케이트가 FBI 요원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과 멕시코를 넘나드는 작전 영역, 기예르모 등의 카르텔 조직원 심문, 무력을 이용한 작전, 카르텔 보스 파우스토의 암살 공작 등 이 모든 것이 불법이기에 합법적 수단으로서 케이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알레한드로가 케이트에게 ‘작전의 합법성’ 서류에 서명을 받아낸 것도 다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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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ONEOKROCKmx
물론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미국은 물론 세계인을 위협하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과연 합법적인 수단 안에서만 작전을 할 것인가, 아니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최소한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인가,라는 물음이다. “머리를 자르면 몸통은 분화되고 또 머리가 자란다. 세계 인구의 20%에게 당장 마약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이 마약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하다. 그것에도 질서가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로 통제할 수 있는 질서다”라는 맷의 말처럼 마약 카르텔을 대하는 미국의 이중 잣대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폭력과 일상의 흐려진 경계다. 멕시코 후아레스. 하루도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 카르텔의 도시. 이 안에서 누군가는 주검이 되어 매달리고 또 아이들은 축구를 한다. 매수된 부패 경찰이지만 그는 또한 누군가의 아빠이며 남편이다. 알레한드로의 복수 대상인 파우스토. 그 역시 가족들과 단란하게 저녁 식사를 즐기는 가장이다. 파우스토의 아내와 두 아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는 것이, 알레한드로의 아내와 딸 역시 그토록 참혹한 죽음을 맞은 것 역시 폭력과 복수가 낳은 고통의 악순환이다. 이 모든 죽음과 폭력, 합법과 무력 수단…. 이런 것들로 정의는 구현되고 옳다고 믿는 것은 과연 실현될 수 있는가? 영화는 그 엄중한 물음과 함께 흔들리는 답을 내놓는다. ‘이것도 현실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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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가르는 리오그란데강, 리오그란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우리가 이루려는 정의의 실체적 진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마약 카르텔이다. 텍사스 엘패소 리오그란데강 바로 건너 후아레스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의 원천이 마약 카르텔이고 후아레스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최전선 공급처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국경선을 경계로 미국 엘패소와 마주보고 있는 인구 100만 명의 도시 후아레스. 이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행지’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국(?)’이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대부분은 중남미에서 공급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70, 1980년대의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의 최대 마약 카르텔은 메데인 카르텔로 보스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였다. ‘마약왕’으로 불린 에스코바르는 한때 마약 밀매로 벌어들인 돈이 너무 많아 세계 최고 부자 랭킹 6위에 오르기도 했다. 에스코바르는 천문학적 수입을 바탕으로 콜롬비아의 모든 분야에 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뇌물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그의 말은 콜롬비아에서 또 다른 법이었다. “은이냐 납이냐, 선택하라”는 에스코바르의 유명한 말처럼 당시 콜롬비아에서는 ‘은=뇌물, 납=총알’,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된 마약은 멕시코를 통한 육상과 해상 루트로 미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당시만 해도 멕시코는 콜롬비아의 마약을 미국으로 전달하는 운반책이었다.

에스코바르의 득세에 심각함을 느낀 미국은 콜롬비아와 함께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시도했지만 에스코바르는 군대 수준을 능가하는 사병까지 보유하며 저항했다. 협상을 통해 에스코바르는 자신이 만든 교도소에 ‘셀프 수감’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에스코바르는 여전히 왕처럼 군림했다. 그러다 지속적인 단속과 검거로 조직이 축소되고 분열된 끝에 1993년, 자신의 부하에게 암살 당했다. 에스코바르만 없어지면 미국 내 마약의 확산이 멈출 것이라 생각했지만 에스코바르의 빈자리를 바로 멕시코 카르텔이 차지했다.

특히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공항, 항구, 국경의 검문을 강화했다. 그러자 미국 내 마약 유통의 대부분이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이 마약 루트 중 하나가 바로 후아레스다. 현재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70% 이상이 멕시코 카르텔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수익은 약 5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멕시코 카르텔의 시작은 미겔 펠릭스 가야르도다. 그는 1980년 멕시코 카르텔의 전신인 과달라하라 카르텔을 조직해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모든 마약 밀매를 중계하며 엄청난 돈을 모았다. 콜롬비아 조직조차 그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과달라하라 카르텔의 붕괴는 어이없이 찾아왔다. 그의 동업자인 라파엘 퀸테로가 미국마약단속국 요원을 납치하고 살해한 것. 그러자 미국 정부는 이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응징을 감행했고 퀸테로는 미국에 체포되었다. 가야르도는 은퇴를 선언하고 지방으로 떠났다. 물론 그곳에서 가야르도는 카르텔을 세분화하고 각 지역 조직책을 선발해 조직을 관리했지만 1989년 4월8일에 검거되면서 과달라하라 카르텔의 빈자리는 다른 카르텔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후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 당연히 후아레스도 포함된 루트를 확보하기 위한 카르텔 간의 충돌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카르텔 조직원은 물론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 당하고, 카르텔은 ‘공포로’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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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의 존재는 결국 돈이다. 마약은 천문학적인 수익이 보장된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기에 카르텔이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한때 콜롬비아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정부군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의 일화다. 빈집에 들어간 그는 어린 딸이 추워하자 불을 지폈다. 나무 장작이 없어 그때 불에 태운 것이 무려 20만 달러 상당의 지폐였다고 한다. 그는 또한 정부와 협상하면서 “나를 사면하면 콜롬비아의 모든 국가 빚을 다 갚아 주겠다”고 장담했을 정도였다.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국인 미국은 1973년 닉슨 대통령 때 법무부 산하에 ‘마약단속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을 설립했다. 그 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에 20여 개의 지부, 해외 60여 개국 연락사무실에 약 5000명의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 마약 거래 단속, 마약 사범의 단속, 마약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미국에서 마약을 비롯한 약물 과다 복용은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를 넘어섰다. 2013년만 해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능가하는 약 4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미국이 당면한 현안 중에서 총기 사용과 마약 등 약물 과다 복용이 가장 심각한 과제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 ‘시카리오’는 미국으로 흘러가는 마약 루트 중에서 멕시코 후아레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또다시 많은 인물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다. 법과 원칙을 준수하며 정의를 구현하려는 케이트,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서도 목적을 달성하려는 맷,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작전에 참여한 알레한드로, 집에서는 아이와 축구를 하는 아빠지만 카르텔에 매수되어 마약을 운반하는 멕시코 경찰 실비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거대한 마약 카르텔을 이끌지만 가족과 단란하게 저녁 식사를 즐기는 카르텔 보스 파우스토. 이들을 통해 마약의 폐해는 물론이고 우리가 이루려는 정의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케이트가 옳은지, 맷과 알레한드로의 수단이 더 옳은지는 정확하게 등식으로 나타낼 수 없다. 다만, 악은 언제든지 존재하고 그 악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과 목적으로서, 합의된 합법이 아닌 ‘차악과 대체된 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후아레스를 비롯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익’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돈의 무간지옥’에 스스로 빠져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위키피디아, Daum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5호 (18.11.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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