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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의일상의경제학] 연금 고갈과 세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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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2 22:37:01 수정 : 2018-11-22 22: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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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저출산 상황에서 혜택 확대 논의 / 빚잔치 즐기다 후손에게 짐 떠넘기는 격
일본에 친구들이 있다. 특히 일본 대학에 교수로 있는 친구들이 상당히 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오래전부터 해 온 이야기가 바로 자신은 받지 못할 연금을 매달 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일본 젊은이들은 이미 20년 전부터 국민연금을 아무리 내도 받을 길이 없으니 노후 대책은 민간 연금에 가입해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20년 전에 바다 건너 불구경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 불행한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아직 투표권도 없는 내 자식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나이 70세가 다 된 아버지의 수입이 한창나이인 40세 아들의 수입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제가 좋았던 시절 좋은 직장에 취직해 평생 높은 월급을 받았던 일본 아버지들은 직장 생활의 경험으로 기술력도 좋고, 연공서열 형식의 봉급으로 높은 수준의 봉급을 받으면서 퇴직하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자녀들은 일본 경제가 침체되는 시기에 제대로 직장을 얻지 못해 경험을 쌓지 못한 데다가 비정규직만으로 생활하다 보니 나이 든 부모보다 경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평생 국민연금을 냈던 부모 세대가 나이가 들어서 젊은이들에게 연금을 내라고 하는데 알다시피 저출산으로 젊은이의 숫자가 적으므로 개개인의 부담은 엄청나게 커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일본의 40대라면 부모 세대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을까 싶다. 좋은 시절에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얼마 내지도 않았으면서 미래에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자녀라도 많이 낳았으면 모를까 자기 인생을 즐긴다고 저출산으로 간 까닭에 젊은 세대는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나이 든 세대의 잘못은 아니지만 의학이 마침 발달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이후에도 엄청난 기간 동안 연금과 건강보험의 부담을 젊은 세대에게 지우게 된 것이다.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편하게 세상을 사는 방법이 빚을 얻어서 생활하는 것이다. 빚으로 물건을 사면 내가 일해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쌓인 빚을 갚으려면 갚는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그 돈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므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빚의 또 한가지 특징은 죽으면 갚지 못한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에게 빚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빚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다가 갚지 않고 죽는다면 참으로 편한 인생을 산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갚지 못한 빚은 결국 남은 가족이 갚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건강보험의 혜택도 늘리고 국민연금의 지급도 늘리자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경제는 앞으로 계속 저성장에서 헤어나기 어렵고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데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혜택을 늘린다는 것은 빚으로 잔치를 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물론 이 빚은 우리가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녀 세대로 떠넘겨진다. 자기들은 즐거운 인생을 즐기고 자손들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기고 간 한국 역사상 최악의 세대로 우리 세대가 남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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