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가 무덤이 아니라면 시인은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용목 시인

허수경 시인을 보내며

독일에서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49일 추모제가 많은 문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20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중흥사에서 열려 함성호 시인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독일에서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49일 추모제가 많은 문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20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중흥사에서 열려 함성호 시인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키 큰 참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뮌스터 외곽의 한 오래된 숲이었다. 간간이 노란 잎들이 햇살에 뿌린 것처럼 한 움큼씩 반짝이며 떨어져 내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꽃과 함께 한 사람을 남겨놓고 나오는 숲이었다. 나무가 사람의 이름을 가져가는 숲이었다.

지난 10월27일, 발트프리덴 호르스트마르-알스트 35번지. 작고한 지 24일 만의 장례식이었다. 일일이 인사라도 나누듯 독일 북서부의 매서운 바람이 오륙십 명의 머리카락을 차례로 쓸어주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으로, 어떤 사람들은 이웃으로, 어떤 사람들은 시인으로, 허수경을 기억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 줌, 시인이 잠든 희고 작은 항아리 앞에서 한 이웃이 긴 추도사를 했다. 꼬깃꼬깃 적어온 사연을 읽으며 어떤 대목에선 슬픈 얼굴로 웃어보였다. 슬픈 얼굴로 웃을 수 있어서, 아름다웠다. 오랜 시간 시인이 독일어로 나누었던 수많은 인사 뒤에 슬프게 웃는 얼굴이 서 있을 것만 같았다.

11월20일, 사십구재를 지내는 중흥사에 오르며 나는 몸을 떠나보내는 일과 마음을 떠나보내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시인은 1992년 한국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우리를 떠났다. 그러나 시인이 떠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인은 이곳의 삶이 자신의 사랑을 지옥으로 바꾸기 전에 스스로를 그리움의 편으로 돌려놓았는지도 모른다. ‘저곳에서의 고독’을 통해 ‘이곳에서의 사랑’을 지키는 일. 그래서 버려진 몸의 기억을 더듬는 ‘마음의 역사’를 우리에게 시로 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혼자 가는 먼 집> 산문). 많은 사람들이 시인의 시를 사랑했던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마음의 증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알 수 없는 일들을 알 수 없는 채로 말하기 위하여, 우리는 ‘슬픔을 거름 삼아’ 하루하루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이쯤에서 우리는 왜 시인이 끝내 시를, 모국어를 버릴 수 없었는지 깨닫게 된다.

풍경소리가 바람과 몸 바꾸는 걸
우리는 아름답게 지켜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모국어 속으로 든 시인의 모습을

요컨대, 모국어 속에서 시인은 여전히 우리에게 돌아오는 중이다. 1987년 발표된 “소나무는 제 사투리로 말하고”(‘땡볕’)로 시작되는 등단작의 거의 모든 행에 ‘사투리’란 단어가 들어 있는 것도 그러하지만, 2006년 발간한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1부에서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라는 부제를 달고 시인은 자신의 시를 사투리 버전으로 다시 써서 나란히 실었다. 시인에게 사투리는, 진주 말은, 그리하여 자신의 말인 모국어는 무엇일까. 처음부터 자연이었던 말, 몸과 마음이 같이 쓰는 모국어가 없었다면 애초에 그리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인은 모국어를 통해서만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을 배웅하며 슬픔을 다독일 수 있었을 것이다. 고고학을 전공하고 많은 날들을 바빌론의 무덤 속에서 보냈던 사람. 모국어가 무덤이 아니라면 시인은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산 입구에서 산길 30분을 오르는 중흥사였지만, 사십구재에는 그를 사랑한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시인의 순간을 지켰다.

모국어가 무덤이 아니라면 시인은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21세기전망’ 동인을 함께했던 동료(차창룡 시인)이자 지금은 출가한 동명 스님의 주재로 이광호, 함성호, 이병률, 김민정 등 동료 문인들의 추모사와 송사가 있었다. 시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법당을 나와 꺾어 신은 신발을 바로 고치며 우리는 흰 새치 나무들이 추억처럼 돋은 먼 능선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아름답다 했다. 워낙 작은 소리여서 차라리 입술까지 번져나온 생각 같았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시인이 가는 날은 아름다웠다. 정말이지 우리는 풍경소리가 바람과 몸 바꾸는 모습을 아름답게 지켜보았다. 바람소리의 모국어가 바람 속에 있고, 새소리의 모국어가 새 속에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 같았다. 모국어로 그리워할 것 같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함께 느끼고 있었다. 모국어 속으로 든 시인의 영혼을 말이다.

다시 10월27일 장례식, 파란 점퍼를 입은 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나와 추도사 중인 아빠의 코트 자락을 잡아당겼다. 열 살 갓 넘었을까. 조금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아이를 슬픈 얼굴의 사람들이 한 사람처럼 웃으며 쳐다보았다. 한국에서 온 옛 친구가 편지를 읽는 동안에도 후배 시인이 시를 읽는 동안에도 가을 숲속에 날아온 봄 나비처럼, 아니 흑백의 풍경 속에서 파란빛을 발하는 아이는 인가의 저녁을 달래러 온 반딧불이 같았다.

아이 몸에 꼭 맞는 파란 점퍼는 남편 르네가 시인에게 선물한 옷인데, 작은 체구의 시인이 떠나기 며칠 전 아이에게 물려주었다고 했다. 322번 참나무 작은 구덩이에 꽃을 던지고 돌아나오는 행렬 끝에서 아이는 자신이 (옷이 아니라) 수경을 입고 있다고 말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 순간, 나는 시인의 가장 해맑은 한때와 악수했다. 그리고 표지에 시인의 스무 살 적 얼굴이 박힌 시집을 아이에게 건네며, 서툰 외국어로 다음에 꼭 다시 보자고 말했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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