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대법원 재심 무죄 확정 판결 후 서울을 떠나 시골 생활을 하고 있는 강기훈씨가 지난 13일 전남 장흥의 아기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재심을 통해 사건 발생 24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노태우 정권의 지시에 따른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지난 12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 사건 조사결과를 보고 받고 강기훈씨(54)에 대한 검찰총장 사과 등을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이 1991년 5월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고 김기설씨(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가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해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개월이 확정된 사건이다. 강씨는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유서대필이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고, 이후 강씨의 재심 청구를 거쳐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자살방조 혐의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고 강경대씨가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숨지면서 이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자 위기에 몰린 노태우 정권이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다.
과거사위는 조사단이 강씨와 정구영 당시 검찰총장, 정해창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당시 수사팀 검사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인 등의 진술을 듣고 수사·재판기록, 진상조사기록, 국회 회의록, 자료집, 단행본, 언론보도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제기된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먼저 사건 발생 초기 ‘분신의 배후에 대한 수사’라는 가이드라인이 수사팀에 전달됐고 이는 당시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당시 긴급하게 개최된 ‘치안관계장관회의’에서 분신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청와대 지시가 있은 직후 검찰총장이 분신의 배후를 철저히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점, 사건 발생 직후 전격적으로 수사팀이 관할이 아닌 서울지검 강력부에 구성되고 사건 발생 하루 이틀 사이에 유서대필로 수사 방향이 잡힌 점, 유서의 필적과 김기설씨의 필적이 동일한지에 대한 국과수 감정회보가 도착하기도 전에 검찰이 강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과거사위는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자살방조의 범죄사실 입증에 불리한 증거는 은폐하고 유리한 증거만 선별해 감정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감정 대상물 선정, 감정 절차, 감정 결과 회신 등 감정 전 과정이 규칙을 위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당시 국과수 감정이 부실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씨 등에 대한 검찰의 가혹행위와 위법한 피의사실 공표도 있었다고 했다.
과거사위는 “사건 발생 직후 정권의 부당한 압력이 검찰총장의 지시사항으로 전달되었고, 그에 따라 초동수사의 방향이 정해지면서 무고한 사람을 유서대필범으로 조작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검찰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며, 현 검찰총장이 강씨에게 직접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5년 11월 강씨는 국가와 수사검사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과 신상규 전 검사장(당시 주임검사), 유서 필적감정을 맡은 김형영 전 국과수 문서감정실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에서 검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데 이어 항소심에서는 추상적인 국가 책임만을 인정하고 개인들의 손해배상 책임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강씨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사건 조작에 관여한 누구도 아직까지 강씨에게 사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