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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 위기 카드업계 5대 과제 | 수수료 인하 1조…고객 혜택 축소 수순 뒤늦은 간편결제·빅데이터 사업 ‘울상’

  • 박수호, 나건웅 기자
  • 입력 : 2018.11.19 17:53:01
  • 최종수정 : 2018.11.23 10:37:08
“배추 한 포기를 팔면 100원이 남는데 이 중 70원이 카드 수수료로 빠진다.”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된 ‘불공정 카드 수수료 차별 철폐 자영업자 1차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배추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며 외친 말이다. 참가자들은 가맹점 카드 수수료 협상권 보장, 원가 산정 중소상인·가맹점 참여 보장, 대손·조달 비용 없는 체크카드 수수료 대폭 인하, 대기업 마케팅 비용 원가 배제 등을 요구했다. 조만간 정부가 카드 수수료 수준을 정하기 전 압박용으로 해석된다. 이를 거꾸로 돌려보면 신용카드사 입장에서는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수차례 정부가 주도해 수수료를 인하한 바 있는데 이번에 또 한 번 인하하면 수익 모델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돈다. 위기의 카드 산업이 처한 5대 골칫거리를 짚어봤다.

▶1. 정부가 순이익 강제 조정

▷가맹점 수수료 인하 1조원 이상 될 듯

11년간 11차례.

카드 수수료 인하 사례다. 게다가 정부는 3년 주기 재산정 원칙에 따라 조만간 카드 수수료를 조정할 예정이다. 신용카드 업계가 예의 주시하는 이유는, 수수료 인하는 기정사실이고 그 폭이나 정도가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금융당국이 조만간 내놓을 새로운 안은 가맹점 카드 수수료를 1조원가량 인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일부 시민단체는 “무이자 할부, 포인트 추가 적립 등의 혜택을 주면서 카드사가 쓰는 막대한 일회성 마케팅 비용이 1조원 가까이 되는데 이것만 줄여도 충분히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온다.

국내 8개 전업 카드사의 순익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2014년 2조2000억원에서 2015년 2조원, 2016년 1조8000억원, 지난해 1조2268억원에 불과했다. 여기서 다시 수수료 1조원 인하 방안이 확정된다면 순익은 거의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시각이 비등하다. 이미 8개 카드사의 올 상반기 순익은 9669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1.9%(4524억원) 줄었다.

특히 업계 1위 신한카드 3분기 누적 기준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7806억원에서 올해 3955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지난해 1분기 회계기준 변경으로 2800억원 규모의 대손충당금이 환입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순익이 대폭 줄었다.

한 카드사 임원은 “선거철만 되면 너도나도 공약으로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들고나오는 데다 이번 카드 수수료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에서는 특정 구간 수수료 인하안까지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며 카드사 입장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 제시한 연매출 5억~10억원 미만 우대 수수료율 구간 신설 정도만 받아들여져도 나름 선방한 것이란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카드사 임원은 “경쟁구도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업계가 수수료를 인하하도록 유도해도 될 텐데 순익을 아예 정부가 관리하는 이런 환경에서는 카드사가 자생할 방안이 솔직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년 카드 수수료 인하를 앞두고 신용카드 업계는 골머리를 썩이는 중이다. 반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소상공인 목소리도 드높다. 사진은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불공정 카드 수수료 차별 철폐 자영업자 총궐기대회’.

내년 카드 수수료 인하를 앞두고 신용카드 업계는 골머리를 썩이는 중이다. 반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소상공인 목소리도 드높다. 사진은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불공정 카드 수수료 차별 철폐 자영업자 총궐기대회’.

▶2. 위기 자초한 뻔한 수익 모델

▷카드사 순익 ‘뚝’…인력 구조조정 가시화

견디다 못한 신용카드사는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가 올해에만 희망퇴직으로 223명을 내보낸 데 이어 현대카드도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창사 이래 처음이다. 카드업계 종사자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7개 전업 카드사 임직원(계약직 포함) 수가 올해 6월 말 기준 1만1796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1만5000명 선을 유지했던 마지노선마저 무너졌다는 얘기가 돈다.

사실 카드업계는 10년 전부터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는 했다. 점점 산업이 저수익 구조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가 계속 환경 탓만 하고 제대로 된 자구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란 시각도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10년 전부터 수수료 규제가 존재했는데 그 기간 동안 신용카드사는 얼마나 자구 노력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현재 카드사의 대표적인 수입은 수수료다. 결제 수수료와 신용대출 수수료가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결제 수수료는 정부가 규제하고 신용대출 분야는 저축은행, P2P 대출 등 제2금융권, 핀테크 업체와 경쟁하게 되면서 구석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객 점유율 확대를 위한 출혈경쟁에만 골몰하며 성장동력 모색에 소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외로 눈을 돌리지도 못했다. 신한카드가 베트남에서 그나마 선전하는 것을 제외하면 해외에서 뜨고 있는 자동차 할부, 신용카드 시장 성장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친다.

업계 관계자는 “신용카드사가 한국에서 쌓은 마케팅 노하우와 서비스 실력을 해외에 가져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 지금 위기를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QR코드 결제를 비롯한 간편결제 서비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카드업계는 시장 주도권을 뺏길 위기를 맞이했다.

QR코드 결제를 비롯한 간편결제 서비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카드업계는 시장 주도권을 뺏길 위기를 맞이했다.

▶3. 간편결제 급증…늘어나는 라이벌

▷수수료 0% ‘제로페이’ 시범 도입 ‘우려’

먹거리는 없는데 경쟁자는 늘어만 간다. 간편결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기존 카드사들이 느끼는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올 12월 시범 도입을 앞두고 있는 ‘제로페이’는 당장 카드사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제로페이는 QR코드를 활용해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바로 돈을 이체하는 결제 방식이다. 결제 과정에서 밴(VAN)사와 카드사를 생략해 0%대의 낮은 수수료율이 가능하다. 현재는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향후 소액결제에 한해 여신 기능을 도입할 여지도 남아 있어 신용카드 업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제로페이 상용화에 적극적이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제로페이로 갈아타도록 소득공제 혜택을 40%로 높였다.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 15%의 2배가 넘고 체크카드의 소득공제율 30%와 비교해도 10%포인트 높다.

제로페이가 상용화하면 카드사는 당연히 수수료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가맹점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카드사 시장점유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시에서는 제로페이 시범 도입 시점에 맞춰 가맹점 50만개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 신용카드 가맹점이 약 269만개라는 점에 비춰보면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수수료 인하로 마케팅 비용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부가 서비스 등 카드 혜택이 줄어들면 제로페이로 넘어갈 유인이 더 커진다. 가맹 시장 장악력이 약화되면 장기 수입 감소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간편결제 시장 주도권 싸움에서도 IT·유통업계에 밀리는 모습이다. 지난해 간편결제 시장 규모는 약 40조원으로 2016년보다 4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카드사 등 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간편결제 시장은 카드사가 아닌 플랫폼 사업자가 주도하는 양상이 역력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네이버페이와 같은 간편결제 플랫폼에 신용카드를 등록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보편화됐다. 단기적으로 보면 카드 사용액을 늘려 카드사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주도권을 뺏긴 이후 중장기 관점에서는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4. DSR에 금리 인상 ‘첩첩산중’

▷가계대출 총량규제도 부담

결제 수수료 수익뿐 아니라 대출이자 수익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부의 대출 심사가 강화된 데다 금리 상승에 따라 자본 조달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가계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신용카드 업계에도 시범 도입됐다. DSR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신용대출·자동차 할부금 등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골자는 DSR이 높은 사람의 대출을 제한하는 방향이다. DSR이 정식 도입된 은행권에는 DSR이 70%가 넘는 대출이 전체 대출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신용카드 업계는 당장 규제비율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만큼 카드론과 현금 서비스 한도 역시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7개 카드사의 카드론 수익은 9369억원으로 전체 수익(5조4511억원)의 17.1%를 차지하고 있다. 시범 도입 기간을 거쳐 향후 DSR이 다소 엄격하게 적용될 경우 카드론과 현금 서비스는 물론 신용카드 이용 한도가 줄어들 가능성도 없잖아 타격이 더 크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가계대출과 신용판매 부문 DSR 관리 기준이 어떻게 연동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DSR 기준이 강화된 만큼 이용 한도 역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도 부담스럽다. 금융당국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7%로 못 박았다. 올해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 잔액이 지난해 말 잔액에 비춰 7%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올 상반기 BC카드를 제외한 7개사 카드론 취급액은 전년 동기 대비 이미 16.7%나 증가했다. 상반기에 카드론 대출을 많이 늘린 카드사는 총량규제를 맞추기 위해 연말까지는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미국 금리 인상에서 촉발된 금리 상승 추세 역시 카드업계에 악재다. 카드사는 카드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뒤 이 돈으로 대출을 해 수익을 낸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고 카드채 금리가 덩달아 뛰게 되면 카드사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수익성은 당연히 악화된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만기 도래하는 채권금리에 비해 신규 발행되는 채권금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상반기 카드채 평균 발행금리는 2.7% 수준으로 1년 전보다 0.6%포인트가량 오른 상황이다.

▶5. 새 수익원 찾기 ‘난망’

▷규제에 가로막힌 빅데이터 활용

수수료는 떨어지고 대출은 막혔다. 카드사 입장에서 남은 선택지는 미래 먹거리 발굴이다. 카드사가 보유한 무기는 방대한 빅데이터다. 너 나 할 것 없이 빅데이터 사업 확대에 뛰어들고 있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개인정보보호 규제로 신사업 진출에 발목이 잡힌 모습이다.

카드사들은 보유한 빅데이터를 새로운 수익 모델로 발전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 중이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를 낸 회사는 없다. 마케팅이나 신상품 개발에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하는 수준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 다른 기업과 제휴를 맺어놓고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카드사 숫자도 많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말 빅데이터 중개 플랫폼을 활용한 수익 모델 발굴에 나섰다. 기업과 개인이 필요한 빅데이터 관련 현황·자료·보고서 등을 구매하고 보유한 빅데이터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빅데이터 거래소’를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관련 사업 진행에 속도를 붙이지 못하고 있다.

BC카드 상황도 비슷하다. 가맹점 통계정보를 신용협동조합에 제공해 제휴 수익을 얻을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11월 업무 제휴만 맺었을 뿐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모호한 규제다. ‘비식별정보 활용에 따른 개인정보보호 논란’에 따른 불분명한 규정 탓에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렵다. 금융위원회가 법제도 등의 종합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신용정보법(금융위)·개인정보보호법(행정안전부)·정보통신망법(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법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에 비해 한국은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과도하게 강하다. 기존 제도와 규제에 얽매여서는 빅데이터 활용 같은 신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 쓸데없는 규제는 대폭 낮추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4호 (2018.11.21~11.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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