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1613년 발간 이후 지금도 활용되고 있는 아시아 최고의 의학서. 백성에 대한 사랑과 민족애가 담긴 허준의 <동의보감>이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뜻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은 순탄하지 않은 것 같다.
허준도 그랬다. 왕자의 병을 고치고, 임진왜란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질병 치료법을 찾으라는 선조의 어명을 받아 의서편찬에 들어가자 주변의 질투가 시작됐다.
임금이 급사하자 책임을 물어 의주로 귀양을 간 것도, 이어 왕이 된 광해군이 의서 저술에 전념토록 풀어줄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동의보감>은 허준의 우직하고 곧은 집념의 산물이다.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죽은 스승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이었다. 차갑고 매정했던 스승이 제자의 환자에 대한 헌신과 의학 열정에 탄복하여 병든 몸을 내주는 부분은 감동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경남 거창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를 불순히 여긴 어른들이 매년 마을 입구를 막았다. 다음해는 괜찮을까 기대했지만 어김없었다. 3학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텐트 생활을 하면서 묵묵히 일손을 도왔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면 다행이고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러기를 며칠, 야속한 마음에 간혹 사소한 언쟁도 있었지만 진심이 통했는지 그렇게 반대하던 이장님이 우리를 받아 주셨다. 3년 만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의 행복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지금도 정치의 길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를 생각한다. 주변의 온갖 질투와 역경을 딛고 방대한 저술을 완성한 허준의 불굴의 정신과 모든 일에 ‘진심’과 ‘정성’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주신 거창 마을 어르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