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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못생긴 야채들-다시 보자 못난이들

입력 : 
2018-11-14 16: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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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늘 못생긴 걸 매끈하게 다듬는 방식으로, 불편한 것을 편리하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무인양품 성공 신화의 중심엔 ‘깨진 표고버섯’이 있다. 이 이름의 상품이 출시되었을 때, 모두들 그 아이디어에 놀랐고 이어 마음을 끄덕였다. 누구나 예쁘게 생긴 A급 상품만을 곱게 포장해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사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모양은 들쭉날쭉했지만 ‘탈락된 버섯들의 모음’이라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소비자에게 좋았고, 늘 버려지기 일쑤던 것들의 활용이니 생산자에게도 좋았다.

사진설명
못난이라 여기지 말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겨, 새로운 상품으로 디자인하는 창의력을 발휘할 때다.
일석이조의 이 제품은 소박한 비닐 봉투에 담겨 말끔하게 디자인되었는데, 곧 소비자들은 이 버려지기 직전의 표고버섯이 자신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에 감격했다. 생각해 보라. 국물을 내는 데 잘생긴 표고버섯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뭐 있겠나. 일본의 시각 디자이너 하라켄야는 이런 말을 했다. “익숙한 일상생활에도 무수한 디자인의 가능성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기묘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창조성이다.” 이것이야 말로 재발견이며, 자연의 재조합, 리디자인이었다. 이런 측면에서의 디자인은 더욱 위대하다. 작은(하지만 실로 큰) 변화를 통해 인간의 편협한 시각을 바꿀 수 있으니까.

SNS상에서 유명한 농산물 직거래 마켓 ‘마켓레이지헤븐’의 안리안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구상에는 2만5000여 종의 토마토가 있지만 국내에 유통되는 건 30종 정도”라고. 간택된 30여 종은 유통하기 편한 것들 위주였다. 그녀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생활하며 좋은 농산물을 선별해 판매하는데, 마음을 다한 제품이 ‘못생겼다, 무르다’며 종종 오해받을 때마다 ‘소비자의 오랜 학습’에서 오는 고정관념이 안타까웠다. 이 오해는 유통하기 좋은 제품만 판매하는 편의 구조에서 발생한 것이다. 단단한 것들이 우선되다 보면 소비자들은 점점 단단해야 일등품이라 여기고 무른 품종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는 것. 선택의 폭을 좁혀 상품 유통을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제품엔 편지 형식의 상품 설명서가 함께한다. 담백함이 느껴지는 종이와 서체 안에는 진심을 다해 자연에서 거둔 것들의 이야기와 속내를 알리고자 노력 중이다. ‘과일과 야채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비뚤어지고 제각각인 그 모양새’에 있음을, 그 자연스러움이 아름답고 순수한 자연의 ‘디자인’임을.

결국 이런 노력은 앞선 무인양품의 예처럼 소비자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반듯하기만 한 것보다 이렇게 제각각 자란 놈들이 훨씬 매력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소비자도 깨닫게 된다. 진실된 스토리가 상품 디자인을 보는 소비자의 관점을 바꿔 놓은 것이다. 사실 자연의 이치에 맞게 자라난 것들은 모두 제각각의 얼굴, 키, 몸매를 가져야 정상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특상품’으로 분류된 과일과 야채들은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선 우등생들을 보는 것처럼, 안쓰럽다. 그저 인간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니 인간의 잣대로 계급을 나누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못난이 채소 박스를 구성해 파는 업체들이 생겨났고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베지트’라는 못난이 채소를 갈아 만든 가공품을 판매한다. 못난이들을 모아서 갈고 한천을 섞어 김처럼 얇게 굳힌 것이다. 색이 곱고 가볍고 날렵한 모양이 어여쁘다. 김처럼 싸 먹기도 하고 잘라서 음식에 장식하기도 좋다. 누구도 이 원재료가 괄시받던 못난이들이라고 여기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제품은 ‘못난이 되살리기’, ‘못난이 다시 보기’라는 발상 디자인의 변주에서 시작된 것이다. 세상의 못난이들, 아니 인간의 잣대로 못난이라 여겨진 것들에 사과한다. 다시 보자, 못난이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언스플래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4호 (18.11.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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