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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in ‘비긴 어게인’ 나와 친구들, 무엇이든 다시 시작이다!

입력 : 
2018-11-15 15: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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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 도시만큼 존재감이 강렬한 도시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물론 파리, 런던, 로마, 서울 등은 그 역사성에서 뉴욕과 비교되는 것이 기분 상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다. 하지만 뉴욕이 현재 전 세계 금융, 예술, 미디어,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리딩 시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했다. “뉴욕은 세계의 문화 수도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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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화 수도, ‘뉴욕’ 한 해 약 5000만 명이 뉴욕을 찾는다. 그들은 카네기 홀, 자유의 여신상, 록펠러 센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 타임스 스퀘어, 브루클린 브리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돈이 집결하는 증권 거래소와 월 스트리트를 찾는다. 또한 뉴욕에는 미슐랭 스타에 빛나는 맛집부터 쉑쉑버거 1호점이 있고 런던, 파리, 밀라노와 함께 세계 패션을 리드하는 디자이너 숍들 또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매일 공연이 펼쳐지는 브로드웨이, 우디 앨런,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코폴라의 후예들이 서부 할리우드와 대별되는 예술성 짙은 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 타임즈」는 물론 「타임 워너」 등 미디어 본산도 뉴욕에 있다.

그뿐이 아니다. 뉴욕은 인근 도시권을 더하면 약 1800만 명에 이르는 메가 시티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천문학적 땅값의 맨해튼과 슬럼이 공존하고 영어를 비롯해 무려 170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이다. 이 같은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확장성은 300년 역사도 되지 않은 뉴욕에서 세계를 리드하는 문화 운동을 가능케 했다. 뉴욕 뒷골목에서 시작된 할렘 르네상스, 힙합은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40년대는 재즈의 중심, 1950년대에 들어서는 추상주의, 현대 미술의 본산이었고 심지어 알 카포네 마피아의 본산도 뉴욕이다. 한마디로 뉴욕은 ‘너와 내가 존재할 뿐, 너와 내가 다르다’는 가름은 없는 국제도시인 것이다.

뉴욕의 시작은 1524년의 기록부터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차노는 프랑스 왕의 후원으로 대서양을 건너 뉴욕 만을 발견했다. 당시 이 지역은 약 4000여 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 신천지를 프랑스 왕에게 바치며 ‘뉴 엉글렘’이라 불렀다. 그리고 에스테반 고메스가 스페인 왕의 후원을 받아 뉴욕의 허드슨강 입구에 도착하고 이곳을 ‘리오 데 산 안토니오’라 이름 짓고 스페인 카를 5세에게 바쳤다.

그렇게 뉴욕이 유럽에 알려진 지 약 80년이 지난 후, 헨리 허드슨은 당시 해양 패권을 장악한 네덜란드의 후원으로 허드슨강에 도착한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탐험가보다는 능동적이고 ‘합법적’이었다. 네덜란드는 1614년부터 지금의 맨해튼에 정착, 식민지를 건설하고 이곳을 ‘뉴 암스테르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네덜란드 총독 페터 미노이트는 1626년 인디언에게 약 1000달러를 주고 맨해튼 섬을 샀다. 역사상 최고 수익을 올린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다.

해양 패권이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1664년 영국은 이곳을 점령했다. 영국 왕 찰스 2세는 동생 요크 공에게 이 수확물을 주었다. 동생의 이름을 따 ‘뉴욕’이라고 부르며. 그 뒤 뉴욕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도시는 더 넓게 퍼졌다.

뉴욕은 18세기 말 미국의 수도였다. 이후 수도의 지위는 워싱턴 D.C에 넘겨주었지만 유럽에서 배를 타고 하루에도 수백 명의 이민자가 뉴욕으로 몰려들었다.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뒤에 뉴욕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물론 2001년 9.11테러도 겪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실리콘 밸리 등 미국 서부 도시들이 뉴욕, 시카고,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동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그래도 뉴욕은 미국에서 ‘전통과 역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도시다.

미국의 역사는 뉴욕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미국은 뉴욕에서 시작되어 거미줄처럼 남쪽, 서쪽으로 미국의 유전자를 확대시켰다. 오늘날 ‘미국적’이라는 단어에 함의된 대부분은 사실 ‘뉴욕적인 것’과 동일시된다. 뉴욕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영화다. 수많은 영화가 뉴욕과 뉴요커를 다루었고 지금도 뉴욕을 무대로 한 영화는 계속 탄생한다. 그 가운데 우리는 2013년 제작되어 2014년 한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군 ‘비긴 어게인’을 기억한다.

‘윈스’의 존 카니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원스’의 후광을 톡톡히 보았다. 물론 ‘원스’의 적통을 잇는다는 프리미엄을 제쳐 놓아도 영화 ‘비긴 어게인’의 완성도는 꽤 높다. 음악, 사랑, 로맨스, 가족, 인생 등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고 맞아야 하는 ‘삶의 모습’을 뉴욕에서 잘 펼쳐 놓은 작품이다. 영화의 큰 줄기는 물론 음악이다. 키이라 나이틀리, 애덤 리바인의 목소리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이야기와 병행되는 16곡의 OST는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앨범이다. 그럼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뉴욕이다. 영화에서 뉴욕은 당당하게 캐릭터를 부여받고 그 역할을 수행한다. 대도시 뉴욕이 주는 역설적인 고독함, 도시 곳곳에서 발견하고 또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공간들이 영화의 주제인 ‘다시 시작하려는 나와 우리의 친구들’을 포근히 감싼다. 그래서 영화의 그레타, 댄 두 사람이 펼쳐 내는 사랑과 음악 그리고 희망의 변주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비긴 어게인’, 무엇이든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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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와 댄, 최악의 상황에서 만나다 런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데이브(애덤 리바인)는 연인이다. 두 사람의 사랑의 연결 고리는 음악이다. 그레타는 곡을 만들고 데이브는 노래한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데이브가 부른 노래가 영화 음악에 쓰이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에서 인기가수가 된 데이브에게 미국 뉴욕의 대형 음반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레타와 데이브는 뉴욕으로 간다. 넓은 집, 기사가 있는 리무진, 최신 시설의 녹음실과 완벽한 스타 시스템을 갖춘 음반사. 한마디로 데이브는 ‘출세했다’. 그레타와 데이브의 사랑? 이때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데이브는 녹음 작업을 위해 LA로 떠났다. 그레타는 데이브를 위한 노래를 만들면서 그를 기다린다. 뉴욕으로 돌아온 데이브. 데이브는 LA에서 곡을 만들었다며 그레타에게 들려준다. 노래를 듣는 그레타의 표정이 변한다. 데이브의 목소리에 실려 나오는 노래는 분명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대상이 자신이 아님을 알아챈 것이다.

“미안해. 같이 출장 갔던 밈에게 내 마음을 빼앗겼어. 잠깐의 감정일 수도 있어.”

그레타는 사랑이 끝났음을 알게 된다. 분노, 배신, 어이없음 등의 감정이 교차되자 그레타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와 친구 스티브의 집으로 간다. 거리의 무명 가수인 스티브는 그레타를 위로해 주고 자신이 노래하는 클럽에 그녀를 데리고 간다. 노래를 끝낸 스티브는 갑자기 그레타를 손님들에게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라 권유한다. 거절하는 그레타. 하지만 스티브의 능청에 손님들은 호기심의 박수를 보내고 그레타는 어쩔 수 없이 기타를 치며 조용히 노래한다. 노래는 그레타가 만든 ‘A Step You Can’t Take Back’. 손님들은 으레 그렇듯 처음에만 귀를 기울이다 이내 잡담에 빠진다. 클럽 안. 술에 취해 고개를 묻고 잠들어 있던 남성이 그레타의 노랫소리에 고개를 든다. 그는 그레타의 노래에 집중한다. 바로 댄이다.

댄(마크 러팔로). 그는 아내와 별거하고 좁은 방에서 홀로 지낸다. 딸이 있지만 사실 몇 살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는 한때 잘나가던 음반 프로듀서이다. 7년 전, 친구와 음반 회사까지 차릴 정도로 성공했지만 지금은 매트리스만 덜렁 놓인 좁은 방에서 지낸다. 매일 알코올에 절어 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스타를 키워 내고 싶은 욕심만은 여전하다.

그는 오늘 할 일이 있다. 아내가 일이 생겨 딸 바이올렛(헤일리 스테인펠드)을 픽업해야 한다. 자동차 안에서 수많은 데모 CD를 들어보지만 채 10초도 듣지 않고 CD를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 댄은 어느덧 훌쩍 커 어색하기까지 한 딸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자 자신이 설립했던 음반 회사로 간다. 하지만 한때 친구였던 지금의 사장은 댄을 해고한다. 화가 난 댄은 “내가 산 그림은 가져가겠다”며 벽에 걸린 그림을 떼지만 그림은 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경보음만 울린다. 딸 앞에서 망신을 당한 채 집으로 돌아온 댄은 아내와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 술을 들이킨다. ‘오늘 술이나 잔뜩 먹고 죽어 버릴까.’ 그는 늦은 밤, 클럽을 찾는다. 취해서 고개를 묻고 잠이 든 그의 머리를 때리는 노래가 들려온다. 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고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한 여성이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댄은 그레타의 목소리와 기타 반주에 다른 악기의 소리를 입히기 시작한다.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첼로… 그러자 댄에게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풍성한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레타와 댄, 최악의 상황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댄은 그레타에게 명함을 주며 당장 자신과 계약하고 음반을 내자고 제안한다. 술에 취한 목소리, 허름한 옷차림, 누가 봐도 노숙자 같은 댄의 제안에 그레타는 그를 경계한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며 음악 이야기를 한다.

“그레타, 당신 음악은 특색 있어요. 그리고 얼굴도 괜찮고요.”

“뭐요? 음악에 왜 얼굴이 필요해요. 누가 뭐래도 난 내 음악이 좋아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진정성이라고요.”

“암튼, 내일 나에게 전화해요, 그레타. 그리고 이 술값은 그쪽이 내요.”

그레타는 댄을 검색해 본다. 그리고 한때 이름을 날리던 음반 제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미 상을 두 번이나 탔어. 그 트로피를 전당포에 맡기고 술을 마셨다고… 그래, 사기꾼은 아니네.” 다음날, 그레타는 댄에게 전화한다. 댄은 말한다. “누구시죠?” 반가운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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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기 싫을 때 ‘하겠다’고 말하지 마

깔끔하게 차려 입은 댄. 그레타를 데리고 자신이 세웠던 음반사로 간다. 댄은 대표 사울(모스 데프)에게 그야말로 ‘물건’을 발견했다며 직접 노래를 들어보라 하지만 사울은 믿지 않는다. 그레타보다 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사울은 말한다. “댄, 그럼 데모를 하나 만들어 와.” “알았어. 그런데 그 데모 만들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미리 주면 안될까?” 제안은 단칼에 거절. 하지만 댄은 기발하지만 엉뚱한 생각을 해낸다.

“뉴욕 거리가 모두 스튜디오지! 그레타, 우리 거리에서 녹음하자. 도시의 모든 소리도 같이 노래에 담아 보자. 뉴욕을 다니면서 녹음을 해 보자고.” 댄과 그레타는 의기투합한다. 댄은 밴드를 구성할 뮤지션을 구한다. 기타, 드럼, 건반 등. “비용은 다 후불이야. 알지?” 댄은 자신이 발굴해 스타로 만든 트러블검(씨 로 그린)을 찾아간다. 수영장이 있는 호화스런 집. 댄과 일행은 수영장에서 즐거운 물놀이를 즐긴다. 댄은 그레타에게 수영장에 들어오라 한다. 거절하는 그레타. 그러자 댄은 “저 여자는 영국인이야!”라고 말한다.

그레타와 댄은 도둑 촬영하듯 도시를 돌아다니며 녹음한다. 뒷골목, 악기를 세팅하고 노래하며 녹음한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가지만 댄과 그레타는 이 역시 훌륭한 BGM이라 생각한다. 골목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을 즉석에서 섭외해 화음으로 활용한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Hold on~~”을 부른다. 지하철 역사. 녹음하던 댄과 그레타는 황급히 악기를 들고 뛰기 시작한다. 역무원이 단속을 하러 온 것이다. 뉴욕이 녹음 스튜디오가 된다.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호수, 보트 위, 야경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경이 드러나는 인근 루프탑, 녹음이 진행되면서 그레타와 댄은 음악적 파트너로 교감을 이룬다.

그레타는 댄이 딸 바이올렛과 갈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레타는 한참 멋을 내고 싶고 부모의 갈등에 방황하는 바이올렛을 진심으로 감싸 안고, 코디, 쇼핑, 연애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바이올렛, 너는 모습도, 옷도, 참 섹시하게 입어. 그런데 내 생각에는 너를 보고 상상할 정도는 조금 남겨 놓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넌 더 멋있고 섹시할 거야.”

루프탑. 신나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댄과 그레타. 이 모습을 지켜보는 바이올렛. 댄은 바이올렛에게 기타를 주고 세션으로 참여하라 한다. 주저하던 바이올렛은 기타를 들고 댄이 놀랄 정도의 실력을 보여 준다. 댄과 바이올렛은 합주를 한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는 댄과 바이올렛. 어느덧 눈가에는 미소가 생기고 두 사람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바이올렛, 기타를 정말 잘 치네. 난 네 실력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곧 그레타의 담백한 보이스가 흘러나온다.

‘아마도, 넌 슬플 때 웃지 않아도 돼. 네가 기분 나쁠 때는 약속할게, 난 그러지 않을 거라고. 너를 쫓아. 넌 우울할 때 춤추지 않아도 돼. 넌 네가 하기 싫을 때 하겠다고 말하지 마. 그냥 이제까지 내게 말하지 않은 하나만 말해 줘. 그냥 나를 완전히 놓아 줘. 그냥 나를 던져 줘. 날 바래다 준다면, 혼자 남을 건지 말해 줘. 빌려줬던 마음을 되찾아, 돌아갈 건지 내게 말해 줘.’ -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댄과 그레타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오늘은 녹음이 없는 날. 댄은 주머니에게 ‘스플리터splitter’를 꺼낸다. “우리 서로의 플레이 리스트를 들어 볼까.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지.” 이어폰을 꽂고 뉴욕의 밤거리를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등의 노래가 두 사람에게만 들린다. “우후, 이건 춤을 춰야 할 것 같아요.” 몸을 흔드는 그레타. 두 사람은 클럽으로 간다. 클럽을 흔드는 음악 소리, 그레타와 댄은 두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그레타,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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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엔 낭비인가

그레타는 TV에서 데이브를 본다. 그는 시상식에서 “그저 꿈을 꾸고, 그 꿈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말한다. 그레타는 그 소리를 듣고 분노한다. “우리의 꿈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 그레타는 노래를 부르고 이를 보이스 메일에 남긴다.

‘때론 우린 운을 믿곤 해. 위험한 모험도 감수했어. 넌 우리가 한 모든 약속들을 산산이 부셔 버렸지만 그래도 난 널 사랑했어. 오랜 시간 끝에 난 홀로 남겨졌고, 아직 난 슬프지만 이젠 널 잊을 거야. 넌 나의 돛에서 모든 바람을 앗아 갔지만, 그래도 난 널 사랑했어. 함께 꿈을 찾는 순간 넌 떠났지. 무지개만 바라본 건 너였어. 원망할 곳 없을 때 넌 날 괴롭혔지만 그래도 난 널 사랑했어. 마지막 남은 우리의 약속 모두 어겨 버린 널, 난 바보처럼 사랑했어.’ - ‘Like A F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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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스런 리무진 버스. 데이브는 그레타의 ‘Like A Fool’을 듣는다. 데이브는 그레타에게 다시 만나자고 한다. 데이브는 그레타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노래 ‘Lost Stars’를 들려준다. 그레타가 데이브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 준 노래다. 2절은 데이브가 완성했다. 풍성한 밴드곡으로 편곡된 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레타. “데이브, 내 생각에는 원곡의 느낌이 살아 있으면 좋겠어.” 데이브는 그레타에게 자신의 공연에 와 줄 것을 부탁한다. “너를 위해 기타를 준비해 둘게. 그레타, 무대로 올라와 같이 노래 부르자.”

공연 날, 그레타는 잠시 주저하다 공연장 문을 연다. 후끈, 열기로 가득한 공연장. 데이브는 조명을 받으며 ‘스타’처럼 노래하고, 관객들은 그의 노래에, 몸짓에 환호한다. 데이브는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레타는 데이브를 한참 쳐다본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짓고는 공연장을 떠난다. “굿바이, 데이브.”

‘보지 말아요, 한낱 꿈과 환상에 빠진 남자로. 날 봐요, 보이는 누군가에게 손 뻗는 나를. 그 손을 잡고 내일 아침 함께 눈을 떠요. 미래를 계획하지만 때론 하룻밤 놀이일 뿐. 어처구니없게도 큐피드는 화살을 되돌려 달라지. 그럴 땐 우리 눈물에 취해 봐요. 신이여, 왜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엔 낭비인가요? 사냥철이 왔으니 이 어린 양은 달리기 시작하죠. 의미를 찾아 헤매는, 우린 어둠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길 잃은 별들인가요? 난 당신이 밖에서 울고 있는 걸 봤어요. 난 당신이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난 당신이 그곳에서 울고 있는 걸 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똑같을 뿐이에요. 우린, 어둠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길 잃은 별들인가요?’

- ‘Lost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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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데모를 들고 사울을 찾은 그레타와 댄. 노래를 들은 사울은 당장 계약하자며 “음, 앨범 한 장이 10달러면 그레타, 당신은 1달러를 받아요”라고 말한다. 이런 조건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레타. “우선 댄을 회사에 복귀시키세요.” 그레타는 사울의 회사에서 음반을 내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그레타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댄. 그레타는 자신의 노래를 온라인 유통시키겠다고 결정한다. 댄은 그레타의 노래를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홍보한다. 유명 스타들은 그레타의 노래를 트윗한다. 점차 그레타의 노래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차트를 점령한다. 댄과 마주한 그레타. 그레타는 뉴욕의 밤거리에서 댄과 같이 음악과 인생의 교감을 이루었던 스플리터를 댄에게 준다. “댄, 이것을 다시 사용해 봐요. 아내인 메리엄과.” 댄과 그레타는 서로를 안는다. 그 사이에 미묘한 감정, 그것을 자제하는 두 사람. 서로를 격려하고 헤어진다. 그레타가 떠난 길. 댄은 미소를 띠고 잠시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길을 가기 위해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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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뉴요커에 바치는 헌사 이 영화는 제목처럼 인생에서 최악의 하루를 보낸 댄과 그레타가 우연히 만나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다. 음악 영화의 모습이지만 곳곳에 삶과 유머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도 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윈스’다. 제작비 10만 달러짜리 영화 ‘원스’의 초대박 성공 이후 존 카니는 ‘원스’ 제작비의 80배에 달하는 800만 달러(한화 90억 원)의 제작비에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마룬5의 애덤 리바인을 캐스팅해 ‘블록버스터급’으로 이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의 월드 박스오피스는 6400만 달러. 미국은 1760만 달러다.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의 히트다. 한국 박스오피스는 342만 명, 2587만 달러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이는 ‘원스’, 존 카니에 대한 기대감과 우리 정서에 잘 맞는 이야기와 감성을 채워 준 음악 덕분이다.

‘비긴 어게인’은 뉴욕 영화다. 영화는 음악을 BGM 삼아 뉴욕에 캐릭터를 부여했다. 단순히 공간과 무대의 활용이 아닌 뉴욕의 모든 곳, 모든 소리, 정서가 영화의 주요한 요소다. 센트럴 파크 호수 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루프탑, 차이나타운, 지하철, 워싱턴 스퀘어, 유니언 스퀘어 등 특색 있는 거리와 사람들이 보인다. 영화에 채워진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맞는 각기 다른 장소는 뉴욕이라는 캐릭터의 내면이다. 그레타와 댄이 노래를 부르는 매 장면의 배경이 되는 풍경은 여느 영화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현장의 소리는 뉴욕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느끼고, 듣고, 보고, 관객의 모든 감각을 동원시키는 장치로서 뉴욕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 것이다.

뉴욕과 더불어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음악이다. 존 카니와 음악 감독 그레그 알렉산더는 뉴욕 특유의 정서와 함께 따뜻하고 감성적인 노래를 펼쳐 냈다. 그레그 알렉산더가 만든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 가사의 ‘Lost Stars’를 비롯해 키이라 나이틀리의 보컬 능력을 만나 볼 수 있는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존 카니 감독이 작사, 작곡한 ‘Like A Fool’ 등 16곡이 등장한다. 특히 ‘Lost Stars’는 애덤 리바인과 수준 높은 보컬 실력을 선보인 키이라 나이틀리가 각각의 버전으로 불렀다.

뉴욕 맨해튼에 살고 있는 마크 러팔로는 물론이고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존 카니, 영국 런던 출신의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뉴욕은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도시다. 이는 뉴욕이 모든 것이 ‘더해져’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아프로-아메리칸, 유태인, 동양인, 스페니시, 독일계 등 전 세계의 모든 인종, 문화, 음식, 예술이 모인, 20세기 초 인구 1000만 명의 메가 시티기에 가능한 것이다.

뉴욕을 상징하는 건물, 거리, 상징들은 많다. 먼저 센트럴 파크. 도심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이곳은 동서 800m, 남북 4km에 무려 50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뉴욕과 뉴요커의 힐링 포인트이자 허파다. 호수, 연못, 산책길, 잔디 공원, 아이스 링크, 야생 동물이 뛰노는 공간, 야외 극장은 불과 몇 걸음만 옮겨도 누구나 ‘자연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하나, 뉴욕의 상징은 단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이 빌딩보다 더 높은 빌딩이 뉴욕은 물론 전 세계에 즐비하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는 수식어를 놓지 않는다. 이는 빌딩이 갖는 상징성. 마천루의 기원이자 완성품이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바벨탑처럼 하늘로 치솟은 이 빌딩은 1930년대 경제 공황에 빠져 있던 미국인에게 자부심이었다. 그 프라이드는 미국의 상징처럼 지금까지 약 100여 편의 영화에 등장했다. ‘킹콩’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인디펜던스 데이’ 등의 영화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또한 뉴욕을 사랑한 예술가 앤디 워홀은 1964년 ‘엠파이어’란 제목으로 카메라가 이 건물 안에만 머무는 무려 8시간짜리 영화를 만든 적도 있다. 67개의 엘리베이터, 5700t의 철골, 1000만 장의 벽돌, 6400여 개의 창문, 1800여 개의 계단은 물론 방송 탑까지, 381m, 102층, 뉴욕의 전경을 한눈에 보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마치 공중 곡예를 하듯 고공의 건설 현장 철근 구조에 앉아 점심을 먹거나, 걸어 다니고 심지어 낮잠을 자는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이다. 합성이라 의심할 만한 이런 사진들은 건축 당시 사진 작가 루이스 하인의 카메라를 통해 약 1만 장이 남아 있다. 고소 공포증이라고는 ‘1도’ 없는 캐나다 출신의 모호크 원주민들이 그 주인공으로 그들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설의 최고공에 있었다. 약 3500명의 인부들이 불과 410일 만에 완공한 이 빌딩은 열악한 당시의 건설 여건을 감안하면 거의 기적 같은 스피드와 완성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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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자부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시작은 1929년이다. 당시 뉴욕 최고층 빌딩은 ‘트럼프 타워’. 마천루 경쟁이 본격화되자 뉴욕의 자산가인 크라이슬러의 월터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의 존 래스콥은 뉴욕, 아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자동차로 첨예한 대결을 벌이던 두 사람에게 빌딩 건설, 특히 높이는 자존심 대결이 되었다. 애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설계안은 320m로 크라이슬러 빌딩보다 불과 60cm 높았다. 그러자 크라이슬러는 욕심을 갖고 비밀리에 56m짜리 첨탑을 별도로 만들었다. 짠! 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훨씬 높은 빌딩을 선보이는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것. 존 래스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크라이슬러의 계획을 눈치채고 건물 최종 높이를 382m로 준비했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완공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불과 몇 달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불과 410일 만에 완공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속도였다. 물론 당시 경제 대공황으로 원자재 값의 하락, 숙련된 기술자의 풍부한 공급 등의 요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한 콘크리트 타공 시설, 타워 크레인 하나 없던 당시 모든 것을 인부들이 일일이 이고지고 날랐다고 한다. 이를 통해 1개 층을 불과 1.4일 만에 완성하고 높게 높게 올라간 것이다. 381.6m 높이로 무려 42년 동안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볼거리 많은 뉴욕에서도 이 빌딩은 9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여전히 뉴욕의 랜드마크다. 뉴욕 시민은 이 빌딩을 단순히 높이로, 관광 자원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뉴욕의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던 시기, 경제 공황의 시련기, 세계 최고, 최대, 중심으로서의 영광을 누리던 시기, 세계 자본의 중심 월 스트리트의 자부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금융 위기 시기, 9.11테러의 공포스런 순간에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뉴욕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이 빌딩은 이제 단순한 빌딩이 아닌 뉴욕의 1세기에 걸친 역사가 한 층, 계단 하나에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Daum영화 ‘비긴 어게인’,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4호 (18.11.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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