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삶과 죽음 뒤섞인 미국판 ‘신과 함께’

문학수 선임기자

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지음·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 500쪽 | 1만5800원

[책과 삶]삶과 죽음 뒤섞인 미국판 ‘신과 함께’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셋째 아들을 일찍 잃었다. 윌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이는 장티푸스에 걸려 열한 살에 세상을 떠났다. 비탄에 빠진 링컨은 수차례 납골묘에 들어가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그 이야기가 소설의 출발점이다. 제목의 ‘바르도’는 이승과 저승 사이를 뜻하는 티베트 불교용어다. 죽은 인간은 누구나 그곳에서 49일간 머무른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중음(中陰)’이라고 칭한다.

그곳은 아마도 어둡고 축축할 거라고 상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설은 첫 스텝부터 경쾌하다. “결혼식 날 나는 마흔여섯이고 그녀는 열여덟이었습니다”라는 첫 문장의 화자는 한스 볼먼이다. 머리가 벗겨지고 한쪽 다리를 절고 나무 틀니를 꼈다. 나이가 많을 뿐 아니라 남자로서의 매력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결혼의 이유는 뻔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프다.” 볼먼은 어린 신부에게서 “공포와 혐오”를 읽어내고는 첫날밤을 포기한다. 대신 친구로, 우정을 나누면서 살자고 제안한다.

소설의 문맥으로 보건대 인쇄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추되는 그는 상당히 사려 깊은 사람이다. 어린 아내도 그의 배려와 다정한 태도에 차차 감복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부드럽고,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키스를 하고 서로를 끌어안는 수준으로 발전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진정한 첫날밤을 목전에 둔 어느 날, 볼먼은 인쇄소 천장에서 들보가 떨어지는 바람에 사망한다. 그렇듯이 세상일은 뜻때로 잘 되지 않는다. 죽은 볼먼이 중얼거린다. “얼마나 실망스럽던지!”

눈치챘겠지만 볼먼은 ‘바르도’로 간다. 아마 이 무렵에 윌리는 장티푸스에 걸렸을 것이다. 작은 조랑말을 선물로 받은 그 아이는 “너무 기뻐서, 매일 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쌀쌀한 날씨 탓에 “심한 감기에 걸렸고 감기가 심해지면서 열병이 되었다”. “열로 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숨 한번 쉬는 것도 힘겨워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허파에 울혈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겁에 질렸다.” 결국 1862년 2월, 열한 살의 귀여운 아이는 바르도의 신입생이 됐다. 보통의 경우라면 순수하고 죄없는 영혼들은 바르도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는다. 저세상으로 빨리 간다. 하지만 윌리는 왠지 미적거린다. 아버지 링컨 때문이다. 월리는 또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묘지를 떠난 아버지를 바르도에서 기다린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조지 손더스는 2017 맨부커상 수상작 <바르도의 링컨>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어린 아들이 다다른 사후 세계 ‘바르도’를 배경으로 수많은 영혼들의 독백을 들려준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조지 손더스는 2017 맨부커상 수상작 <바르도의 링컨>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어린 아들이 다다른 사후 세계 ‘바르도’를 배경으로 수많은 영혼들의 독백을 들려준다.

그곳은 시끄럽다. 볼먼뿐 아니라 로저 베빈스 3세, 에벌리 토마스 목사 같은 이들이 있다. 그 밖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40명은 넘어 보인다.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말이 많을까 싶을 정도로 저마다 입을 열어 말들을 쏟아낸다. 죽은 자들의 말, 그것이 바로 소설의 뼈대다. 그 사이사이에 링컨과 그의 시대에 관한 책, 서간문, 신문 등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등장한다. 복잡한 모자이크처럼, 때로는 파편처럼 튀어오르는 말들 사이로, 당시를 기록한 몇몇 객관적 진술들이 들쭉날쭉 뒤섞인다. 삶과 죽음, 가상과 현실이 그렇게 엇갈리면서 서사를 구축한다. 독특하고 과감한 플롯이다. 그리스 신화, 혹은 셰익스피어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작가의 필체가 음울하지 않고 유머러스해서 가끔 키득거리게 만든다. 예컨대 볼먼은 바르도에서도 젊은 아내의 벗은 몸을 상상한다. 때로는 불끈 발기한다.

주된 서사는 윌리를 설득해 저세상으로 빨리 보내주는 것이다. 볼먼과 베빈스 3세, 토마스 목사는 윌리가 안쓰럽다. 특히나 볼먼은 윌리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한말씀 드려도 될까요?”라고 윌리가 말하는 순간, 볼먼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 순간 내가 그 애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아주 묘한 어린 친구였습니다. 아래로 흘러내린 긴 앞머리, 동그스름하게 튀어나온 배, 약간 어른 같은 태도.” 이렇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떻게든 제대로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아버지의 약속에 대한 윌리의 기대와 고집이 만만치 않아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만 한다. 결국 그들은 윌리를 설득할 사람이 아버지 링컨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바르도에 머물고 있는 존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제 바르도의 수많은 존재들이, 윌리를 저승으로 보내기에 합세한다.

[책과 삶]삶과 죽음 뒤섞인 미국판 ‘신과 함께’

지난해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심사위원회는 이렇게 밝혔다. “완전히 독창적인 이 소설의 플롯과 스타일은 위트 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감동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린 아들이 다다른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고통받는, 그리고 독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생생하고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의 작가인 조지 손더스(60·사진)가 빼어난 단편소설들을 속속 발표하다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독특하고 강렬하지만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묘하게 마음을 잡아당긴다. 미국에서는 많이 팔렸다.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영어권 문학작품 번역으로 일가를 이룬 정영목의 번역인데, 역자 후기 마지막에 이런 사실을 밝혀놨다. “링컨은 아들이 죽고 나서 3년 뒤인 1865년 4월, 내전이 거의 끝난 시점에 암살당한다. 이때 윌리의 관도 다시 꺼내, 일리노이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장례 열차에 실어, 부자는 함께 주검으로 고향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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