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가 들려주는산티아고 순례 이야기
낸시 루이즈 프레이 지음·강대훈 옮김
황소걸음 | 480쪽 | 2만원
2016년 5월22일부터 26일까지 취재차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100㎞ 구간을 걸어본 적이 있다. 사리아라는 작은 마을을 출발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의 대성당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 평균 20㎞씩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을, 두 발의 고통을 참아내며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이 길을 걸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의 역사는 1000년을 훌쩍 넘는다. 9세기 중반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인근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부터 시작된 순례는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어떤 행위가 10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면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텐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낸시 루이즈 프레이가 이 책에서 시도한 것이 바로 순례자들에 대한 인류학적 분석이다. 저자는 순례자들의 출발 동기나 도보 과정에서의 경험은 물론, 여정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 사람들이 겪는 변화까지 추적해 인류학자의 렌즈를 들이댄다.
저자는 1990년대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러 번 순례하고 1년 이상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현장 조사를 수행했다.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인류학 보고서 스타일로 썼기 때문에 가장 재미있는 산티아고 관련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번역 출간된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책들 중 인문적 깊이에서는 가장 앞설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변화하고 싶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변화를 경험하진 않는다. 여정을 마친다고 해서 반드시 변화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변화되기를 허락한 인간만 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