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같은 듯 다른 ‘문빠’와 ‘문파’

홍진수 기자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

박구용 지음

메디치 | 276쪽 | 1만4000원

[책과 삶]같은 듯 다른 ‘문빠’와 ‘문파’

먼저 ‘문파’와 ‘문빠’의 구분부터 확실히 해놓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알려져 있다시피 문빠는 흔히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의 멸칭으로 쓰인다. 반면 문파(文波)는 그 지지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또 남들이 불러주기를 바라는 명칭 중 하나다.

둘의 구분은 쉽지 않다.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의 저자 박구용은 “문파와 문빠는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둘을 명확하게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둘을 구분하지 않고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 박구용은 “(실제로 문빠와 문파는 혼용되지만) 문빠는 정치 지도자 문재인의 정치 팬덤을 가리키는 말로, 문파는 문재인의 정치를 매개로 시민 주권을 활성화시키는 정치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쓰고자 한다”고 전제한 뒤 글을 시작한다.

문파든 문빠든 공식적인 조직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위력적으로 작동한다. 정당과 의회를 점령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압박한다. 언론매체와 공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기자들과 여론주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그 현상만은 명백히 우리 눈앞에 보인다.

시민들이 문파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의회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의회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판단이 들자 시민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매개로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관련된 사안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문 대통령을 향한 공격을 그저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하게 반격하기도 했다. ‘문빠’란 비난을 들으면 “나도 문빠다” “국민이 문빠다”라고 되레 소리 높여 외쳤다. 이런 행동의 저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이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다. 본인이 ‘문파’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박구용 역시 책에서 “칼럼을 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 충분히 현실적이지 못했고, 역사성이나 당파성도 합리적으로 견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나의 비판은 실천적이지도 역사적이지도 못했다. 이는 반성이 아니라 설명이다”라고 말한다.

2017년 5월3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남 진주시 대안동 차없는거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2017년 5월3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남 진주시 대안동 차없는거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박구용은 문파의 탄생을 ‘시대의 흐름’으로 본다. 또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박구용은 건강한 대의민주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토의정치가 결사체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형식으로 강화돼야 하는데, 문파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파가 ‘생활의 정치화’와 ‘정치의 일상화’를 통해 ‘자본의 정치화’와 ‘정치의 관료화’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파의 ‘과격한 언행’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박구용은 “문파는 비당파적 당파다. 하나의 이념을 가진 조직이나 기관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실체적 권력을 향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파가 ‘우리’ 안팎에 타자를 감금하고 배제한다면 스스로 분화되면서 해체될 것이다. 그러니 문파 스스로 폭력을 조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단언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광장과 의회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문파를 인위적으로 조직하거나 조작할 때 문파의 의사소통적 권력은 폭력으로 둔갑할 것”이라며 ‘정치적 이용’은 우려한다.

박구용은 이 책을 쓰기 위해 9개월 동안 인터뷰도 진행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문빠라고 생각합니까’에서 시작해 ‘문빠는 문재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를 지지할 것입니까’까지 30개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아쉽게도 이 인터뷰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의미를 둘 만큼 양이 풍족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각각의 대답이 복잡하고 이질적이어서 정리가 불가능했다. 다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만난 문파들은 괴물도, 요물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려는 시민 주권자들일 뿐이었다. 내가 만난 문파는 각자 자기 생각을 말하지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다양한 얼굴의 시민들이었다.”


Today`s HOT
개혁법안 놓고 몸싸움하는 대만 의원들 영국 찰스 3세의 붉은 초상화 총통 취임식 앞두고 국기 게양한 대만 공군 연막탄 들고 시위하는 파리 소방관 노조
로드쇼 하는 모디 총리 2024 올림픽 스케이트보드 예선전
조지아, 외국대리인법 반대 시위 이라크 밀 수확
총격 받은 슬로바키아 총리 광주, 울산 상대로 2-1 승리 미국 해군사관학교 팀워크! 헌던 탑 오르기 미국 UC 어바인 캠퍼스 반전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