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불안한 미래가 불러낸 ‘과거에 대한 향수’

김유진 기자

레트로토피아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정일준 옮김

아르테 | 272쪽 | 2만원

[책과 삶]불안한 미래가 불러낸 ‘과거에 대한 향수’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로 주목받은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탈환하면서 트럼프의 일방적 국정운영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여유있게 상원 과반수를 확보했고 경합지역 주지사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트럼프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른 이유다.

사실 ‘중간평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트럼프는 만 2년이 채 되지도 않은 기간 동안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각국 지도자들이 트럼프 특유의 화법을 따라하는 ‘트럼프화(trumpified)’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반대자들의 의견을 덮어놓고 ‘가짜뉴스’로 치부하기, 이민자나 난민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일관하기, ‘아메리칸 퍼스트’처럼 노골적으로 자국중심주의를 주장하기 등이 그 예다.

이제껏 여러 석학과 전문가들이 ‘트럼프 이후의 세계’에 대해 진단을 내놓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이 살아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바우만은 ‘유동적 현대성(liquid modernity)’이라는 개념으로 근대에 관한 이해를 크게 확장했을 뿐 아니라 세계화, 테러리즘, 사회적 배제, 사랑, 성 등 폭넓은 주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 지성이었다.

|폭력으로의 회귀

소외라는 공포가 유발한 ‘분노’
경악스러운 ‘묻지마 폭력’ 양산

|부족으로의 회귀

트럼프의 차별·우파 포퓰리즘
배제될 수 있다는 두려움 키워

|불평등으로의 회귀

고삐 풀린 자본을 방조한 정부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 확대

|자궁으로의 회귀

경쟁도 방해도 없는 안전한 곳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피 원해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언’
‘유토피아’ 아닌 ‘판토피아’로
참여·실천으로 현실을 바꿔라

<레트로토피아>는 그가 지난해 1월9일 91세의 나이로 타계한 뒤 한 달쯤 후에 출간된 책이다. 시간적으로 트럼프라는 예기치 못한 리더의 등장,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충격을 준 브렉시트라는 맥락에서 책이 쓰였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유작이 된 이 책에서 바우만은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 즉 ‘레트로토피아(retrotopia)’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어째서일까. ‘유토피아’가 존재한다거나, 또는 노력하면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은 붕괴된 지 오래다. 바우만의 분석은 이렇다. “불안정하고 너무 뻔해서 신뢰할 수 없는, 미래에 더 좋아질 거라는 대중의 희망에 투자하기보다, 그 희망을 흐릿하게 기억되는 과거, 추정된 안정성과 그로 인한 신뢰성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과거에 다시 투자하기로 한 셈이다.” 한마디로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우선 지구상에 만연한 폭력을 들어 홉스가 말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다. 홉스는 인간의 폭력성을 통제할 강력한 국가권력, 곧 ‘리바이어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리바이어던의 약속대로라면 폭력은 진작에 줄어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무기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불황을 모른다. 정부의 방관 아래 총기 등 소형무기 거래도 활발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에도 이민자들이 빼곡히 탄 트럭은 미국을 향했다. 유작 <레트로토피아>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울타리를 쳐서 불행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은 피신처에 숨어서 핵전쟁을 피하려는 행동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에도 이민자들이 빼곡히 탄 트럭은 미국을 향했다. 유작 <레트로토피아>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울타리를 쳐서 불행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은 피신처에 숨어서 핵전쟁을 피하려는 행동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폭력은 미디어의 욕망과 결합되면서 날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시청률을 갈망하는” 미디어들은 “폭력을 우리의 관심사로 밀어넣는다”. 이전 저작들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사유한 바 있는 바우만은 이번에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해 예리하게 서술한다. 그는 인터넷이 어떻게 “유동하는 현대라는 조건 아래서, 피할 수도 없고 절대 타협할 수도 없는, 소속감과 자아 형성이라는 열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지, 또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반복하는 행위가 어떤 감정을 낳는지를 설명한다.

최근 일어나는 폭력의 양상은 공격 목표나 동기 모두 불확실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분노’야말로 자살테러나 무차별 살인 등과 같은 폭력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견딜 수 없는 창피함과 굴욕감, 또는 사회에서 타락하고 배제된다는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의해 생겨난 공격성”을 언급한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거제도 ‘묻지마’ 살인 사건 등 근래 한국 사회를 경악에 빠뜨린 범죄들에도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두번째로 지적하는 ‘부족으로의 회귀’는 트럼프 당선을 떠받치는 사회심리적 구조와 맞닿아 있다. 다름 아닌 민족주의, 인종차별, 우파 포퓰리즘의 논리다. “유동하는 세계 엘리트층”과 “배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현지 주민들” 사이의 간극은 넓어지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 의해 “장벽을 세우고 국경을 강화해 외국인을 본국으로 인도하자”는 정책이 힘을 얻는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놓고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이에 호응한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우리’를 완전하게 지켜내는 것, 즉 “이방인이 사라진 미래의 국가”는 불가능한 기획이다. 바우만은 “자국 영토의 안전을 바라며 실제로 울타리를 쳐서 세계적인 불행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은 고작 가족 피신처에 숨어서 핵전쟁을 피하려는 행동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일갈한다.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행동이라는 얘기다.

세번째로 언급하는 ‘불평등으로의 회귀’는 인류와 세계의 진보를 의문시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문제다. 바우만은 불평등 확대의 “핵심 용의자”로 몇 가지를 지목한다. 세계화로 자본 규제가 풀렸는데 국가는 이를 방조했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상호의존적 관계가 깨졌다는 것이다. 자본가는 더 이상 소비자이기도 한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빈곤율을 줄이거나 고용을 늘리는 일에 관심이 없다. 상대적 박탈감도 불평등 심화에 기름을 붓는 요인이다.

국가나 규범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소비사회 물결 속에서 “본능과 욕구의 노예”로 전락했다. 여기서 마지막 “자궁으로의 회귀” 현상이 나타난다. 경쟁자도 없고, 도전이나 방해도 받지 않는 ‘안전한’ 장소인 자궁으로, 다시 말해 “자기염려와 자기지시라는 대피소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작지만-날마다-만족감을 주는 도구를 사용해 감당할 수 없는 예측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느라 바빠 보인다”는 서술은 요즘 우리 사회의 키워드인 ‘소확행’과도 직결된다. ‘성격 장애’인지, ‘사회 장애’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건강관리에 대한 집착, 자기계발, 심리상담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14년 영국 리즈의 자택에서 만난 고 지그문트 바우만.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4년 영국 리즈의 자택에서 만난 고 지그문트 바우만. 경향신문 자료사진

바우만은 ‘홉스, 부족, 자궁으로의 회귀’라는 세 가지 흐름에는 비슷한 구조가 놓여 있다고 본다. 바로 “분통 터질 정도로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현재에 내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맺음말에서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을 인용해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는 청년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 공정한 경제 모델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집단적 사회운동을 불신하는 바우만은 각 개인이 참여하고 실천하는 현실 개선형 유토피아, ‘판토피아(pantopia)’가 대안이라고 본다.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을 것인지, 아니면 같이 공동묘지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영국 리즈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는 학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충성스러운 독자층을 확보한 저술가로도 이름이 높다. 그의 글이 고루한 학술적 문체의 틀에서 비켜서 있을 뿐 아니라, 읽는 이와 적극적으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레트로토피아> 역시 고담준론과는 거리가 있다. 혹시라도 바우만의 독자적 서술보다 다른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는 대목이 더 많은 것 아닌가 싶다면 역자인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설명을 참조하면 좋겠다. “그(바우만)가 지은 사상의 집에는 여러 사상가가 동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바우만이 소환하는 여러 사상가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은 뤼트허르 브레흐만이다. 브레흐만은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저널리스트로, 2016년 발표한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김영사) 정도가 대표작이다. 2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노학자는, 죽음을 앞두고서도 어느 패기있는 젊은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극단의 한 세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학자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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