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당시 법원행정처장 차한성 ‘강제징용 재판 지연’ 등 비공개 조사
박근혜 지시로 김기춘 만나 논의…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곧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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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70) 시절 초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한성 전 대법관(64·사진)을 피의자 신분으로 비공개 소환조사했다.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대법관 가운데 첫 소환자다. 검찰의 ‘양승태 대법원’ 최고위층에 대한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7일 차 전 대법관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지연 의혹 등과 관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로 소환조사했다고 9일 밝혔다. 비공개로 이뤄진 차 전 대법관에 대한 조사는 12시간가량 진행됐다.
지난달 27일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차 전 대법관을 포함해 박병대(61)·고영한(63) 전 대법관 등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들과 양 전 대법원장이 공범으로 적시됐다.
2011년 10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 전 대법관은 2013년 12월1일 삼청동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9) 등을 만나 강제징용 재판 지연과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한 재판 뒤집기를 논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 조사를 받은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지시에 따라 회동이 이뤄졌고 그 결과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차 전 대법관은 검찰에서 ‘공관 회동’에 참석해 청와대로부터 강제징용 재판 연기를 요구받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지연시키는 대신 재단을 설립해 전범기업들의 배상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논의한 사실도 시인했다. 2014년 6월 행정자치부 산하에 일제강제징용피해자지원재단이 설립됐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에 재단 설립·운영에 관한 조언을 했는지도 수사 중이다.
법원행정처는 회동 직후 작성한 대외비 문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2012년 5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3년 뒤인 2015년 5월 소멸된다’고 분석했다. 이 사건은 2012년 5월 대법원이 1·2심을 뒤집고 피해자들 손을 들어준 뒤 2013년 7월 서울고법에서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다른 피해자들이 추가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2015년 5월 이후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미루는 계획을 세웠고, 파기환송심 선고 후 5년 넘게 흐른 지난달 30일에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검찰은 청와대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대법원이 이명박 정부 때 중단한 법관 해외공관 파견을 요청해 이를 얻어낸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사법농단에 더 깊숙이 관여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공개소환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10월 강제징용 재판 관련 김 전 실장과의 2차 회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사건·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박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특허소송·대법원 비자금 조성 등 다수 의혹에 관여돼 있다. 고 전 대법관은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이 있다.
사법부 2인자였던 전 법원행정처장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1·구속) 등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을 오는 15일 구속기한 만료 전 기소하게 되면 사법농단 첫 재판의 막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