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2년, 아직 실체가 다 안 밝혀진 ‘금융농단’

정용인 기자

2년째 국감 거론되는 자베즈파트너스 사모펀드의 실체는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2012년 3월 17일 서향희 변호사를 만나셨죠?”

“예, 만났습니다.”

10월 11일 정무위원회 국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의 질의에 대해 참고인으로 나온 김동진 MG손해보험 노조위원장의 증언이다.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공개해 달라’는 추 의원의 요구에 김 위원장은 “회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M&A 전문변호사라는 변호사를 소개받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박지만 EG그룹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였다”고 답했다. 이어 당시 서 변호사는 그에게 “하나은행 김승유 회장과 (인수) 논의가 끝났으니, (노조가 나서서) 당시 회장(이영두)으로부터 경영권 포기각서를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하나은행 회장이 그 후 바뀌면서 실제 매각은 안 됐다. 이날 국감에서 추 의원은 “매각 당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금융농단이었다”고 발언했다. 매각의 밑그림을 보면 금융위가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주장이었다. 답변 순서가 아니던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감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올해 국감서 처음 드러난 서향희 개입

벌써 정무위 국감에서 2년째 되풀이되는 그림이다. 지난해 국감 때 ‘금융농단’이 거론된 것은 현대증권 관련이었다.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국민은행의 현대증권 주식 고가매입 과정에 박근혜 정부 당시 권력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권력? 거론된 사람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다.

‘금융농단’ 의혹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사모펀드가 있다. 자베즈파트너스라는 회사다.

현대증권은 자베즈파트너스가 만든 제1호 펀드가, 현 MG손해보험은 2호 펀드가 인수에 관여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박지만씨가 거론됐다면 올해 국감에서는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개입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시민단체 플랜다스의 계(대표 안원구) 측은 지난 10월 2일 자베즈파트너스가 개입된 현대증권 매각과정에서 탈세가 있었다며, 매각 관련 당사자들을 국세청과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현 MG손해보험의 전신은 그린손해보험이다. 매각은 앞서 거론된 만남이 있은 지 1년을 훌쩍 넘겨 최종 이뤄졌다. 2013년 5월이다. 박근혜 정부 1년차였다. 사모펀드 자베즈파트너스의 활동은 이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와 관련이 있는 사모펀드라는 점에서다. 이 회사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설립은 2009년 5월 27일. 첫 대표는 홍콩에 거주하는 미국인 박신철씨로 되어 있다. 올해 국감에서는 이 회사의 전 대표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다음은 역시 추혜선 의원과의 문답이다. 답하는 이는 최원규 전 자베즈파트너스 대표다.

“그러니까 금융사 인수에 여러 번 자베즈파트너스라는 이름이 오르내리거든요. 2009년 박신철 대표와 같이 만드셨죠.?”

“맞습니다.”

“박신철 대표가 누구십니까. 박영우 회장 친조카시지요?”

“예.”

“박영우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조카사위십니다.”

“예.”

박영우 회장은 대유그룹 회장이다. 박 전 대통령 이복언니 딸의 남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 의혹이 있던 다스와 비슷하게 카시트 제조를 하던 대유에이텍이 그룹의 핵심회사다. 박 전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지자 대통령 유관회사 대유에이텍도 주목을 받았다. 자베즈파트너스의 등기부등본만 보면 이 사모펀드는 대유그룹과 관련된 펀드로 보인다.

“명목상은 그렇죠. 하지만 실제 전주(錢主)가 누군지는 알 수 없어요. 그게 검은 머리 외국인이니 하는 사모펀드 관련 논란에서 핵심인데….” 추혜선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회사가 박근혜 관련 회사라는 의혹과 관련해 회사 핵심 관련자가 사실을 확인해준 것도 이번 국감이 처음이다.

자베즈, 껍데기만 남았다?

자베즈의 현재 실제 주인이 누군가는 애매하다. 박신철씨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2015년 12월에는 그나마 갖고 있던 사내이사직도 사임한다. 한 달 앞선 그해 11월 박씨는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이라는 회사에서 전무로 들어간다. <주간경향>이 추혜선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5년 5월 21일 금융감독위원회 11차 제재심의위원회 회의록과 공개안(6월 2일자)에 따르면 자베즈가 설립한 1호·2호 펀드는 기관경고 및 퇴직자 위법사실 통지, 직원 2명에 대한 감봉 등의 조치를 받는다.

회의록을 보면 펀드의 대표이사로 참여했던 인사들이 자신들이 실제 운영자임에도 불구하고 ‘을의 위치’에 있었다든가, “회사의 구조상 지시에 따라서 제한된 업무만 수행했다”와 같이 진술한다. 다시 말해 투자결정에서부터 다른 회사의 참여, 승인을 할 권한을 대표이사가 갖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석연찮은 것 또 하나. MG손해보험에 투자한 대유는 막상 회사가 인수되자 3개월 만에 손을 턴다. 운영사(GP·자베즈파트너스)는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LP)로 여러 회사를 끌어들인다. 그 중 하나가 앞서 서향희 변호사가 “인수의향이 있다”고 거론한 하나은행이었다. 하나은행이나 교원인베스트먼트, 대한예수교장로회 등 수백억 원씩 투자한 다른 투자자들은 다 수익을 올리고 빠져나가는데, 자베즈파트너스나 대유는 약 8억여원의 운영수익을 제외하곤 특별한 수익을 얻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래서 MG손보 노조나 국회 쪽 시각의 초점은 새마을금고 중앙회에 맞춰져 있다. 현행법상 겸업이 불가능한 손해보험을 사모펀드를 통해 인수한 실제 주인이 새마을금고 중앙회라는 것이다.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다른 재무적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지분의 거의 전부를 인수했다. 새마을금고 중앙회가 넣은 돈은 총 4300억원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그 후 이 회사의 사정이 호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실지정을 받으면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손절매라도 해야 한다.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이 회사를 다른 금융지주나 사모펀드에 재매각해야 한다. 그러나 부실지정이 임박한 회사 인수에 나설 회사는 없다.

“당시 서향희가 누군지 몰랐다. 한참 대화를 한 뒤 동석한 인사로부터 박지만의 부인이라고 귀띔을 받았다. 그래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당시는 잘 몰랐다.” 10월 30일 기자를 만난 김동진 MG손해보험 노조위원장의 말이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날짜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와 서 변호사, 서 변호사를 중개한 미국 변호사, 장화식 당시 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 그리고 서 변호사의 후배라고 한 한 언론인을 포함해 5명이 그의 집 인근에서 회동했다. “당시 그린손보 인수전에 ㄱ건설이라는 회사가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노조는 반대 입장이었다. 그 건설회사가 참여하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의 말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 “서 변호사는 ‘ㄱ건설은 내가 확실히 아웃시켜줄 수 있다. 대신 노조가 현 회장의 사퇴의향서를 받아달라’고 말했다.” 노조가 실력행사를 할 수 있었던 근거는 노조원들 상당수가 회사의 주주로, 당시 노조위원장이 동시에 우리사주조합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촛불 2년, 아직 실체가 다 안 밝혀진 ‘금융농단’

박지만·‘대유’는 썩은 동아줄이었나
실제 ㄱ건설은 대주주 적격심사 일주일 전에 인수를 포기하고 나갔다. 서 변호사는 김 위원장에게 김승유 하나은행 측을 대리해 인수에 나서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하나은행도 대유가 나가는 시점에 새마을금고 중앙회에 지분을 넘기고 나갔다.

국정농단의 큰 그림이 나온 지금에 와서 정리해보면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씨 일가가 ‘포획’해 동생들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는 것은 집권 1년차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에도 박지만씨 부부는 초대받지 못했다. 권력실세에 줄 대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썩은 동아줄’이었다. 인수 주체인 자베즈파트너스라는 ‘껍데기’만 남기고 실질적 주인이었던 대유가 ‘쫓기듯 정리하고 나간’(김 위원장의 표현) 시점은 공교롭게도 서향희 변호사의 이권개입설이 나오고 해외에 출국한 시점과 일치한다.

2016년 10월, 2년 전 촛불의 직접적인 계기는 JTBC가 공개한 태블릿PC, 즉 비선권력 국정농단의 구체적 증거가 나오면서였다.

하지만 이미 그 의혹의 단초는 2014년 초에 불거진 ‘정윤회 사주 인사의 박지만 미행설’ 때부터 촉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권 1년차부터 불거진 금융농단 의혹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벌어진 친동생들과 최씨 일가의 싸움’이라는 틀로 봐야 의혹 해소의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한편, 김동진 위원장이 2012년 3월 ‘5인 회동’에 참여한 것으로 거론한 언론인은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서향희 변호사는 그 전부터 알고 교류했던 사이였지만 노조 주장처럼 인수 등에 개입한 적도 없고, 서 변호사와 함께 노조 측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론스타 뒷돈’ 사건으로 복역했다가 지난해 출소한 장화식씨 역시 <주간경향>에 “서 변호사나 미국인 변호사와 술자리를 했던 기억은 나지만 당시 같이 무언가를 도모할 입장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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