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주택가 PC방은 치안의 사각지대였나

백철 기자
10월 26일,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현장 인근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 많은 이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 백철 기자

10월 26일,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현장 인근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 많은 이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 백철 기자

서울시 신길동에 사는 직장인 이종진씨(33·가명)는 친구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겜돌이’로 통한다. 올해 초 직장을 집과 가까운 서울시 구로구로 옮긴 이후 그는 집 근처 PC방을 자주 다닌다. 이씨가 사는 아파트에서 골목길을 따라 5분 정도 지나면 건물 지하에 ㄱ PC방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만난 게임 동호회 사람들과 퇴근 후 2~3시간 게임을 즐기는 게 이씨 인생의 낙이다. 그런데 최근 이씨는 PC방 다니는 횟수를 줄였다. 10월 14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 PC방 손님이 많이 줄어든 것을 보면서 ‘나도 그만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밤엔 진상손님 오지 않길 기도하는 수밖에

ㄱ PC방은 100석이 넘는 대형 PC방이다. 이씨가 보통 게임을 하고 나오는 밤 10~11시에도 절반 이상의 좌석이 찰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주말인 10월 27일, 오랜만에 새벽 2시까지 동호회 사람들과 게임을 즐기던 이씨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PC방을 나섰다. 평소와 달리 PC방에 썰렁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날 ㄱ PC방에는 이씨를 포함해 채 10명도 앉아 있지 않았다.

이씨는 “3년 넘게 다니던 단골이지만 이젠 영등포역 인근 PC방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강서구 살인사건 이후 불안감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강서구 ㄴ PC방도 ㄱ PC방처럼 주택가에 위치한 곳이다. ㄴ PC방 주변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고 있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학교만 다섯 군데 밀집해 있다.

이씨는 “토요일에 골목길을 통해 집에 오는데 평소와 달리 오싹한 느낌이 들더라. 길가에 차들은 달리지만 PC방 간판 말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영등포역에서 집까지 거리는 멀지만 번화가라서 경찰 지구대도 가까운 곳에 있고, 여러 가게들이 문을 열어두기 때문에 그쪽으로 옮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10월 29일 밤 11시, 주택가에 위치한 PC방에 직접 들어가 봤다. 경기도의 한 도시 주택가에 위치한 ㄷ PC방은 앞뒤로 대형 아파트 단지가 형성돼 있다. 인근에 학교도 2곳이 있고 심지어 지구대와도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ㄷ PC방 입구에는 인근 지구대 직통전화 번호도 적혀 있었다. 아직은 건물 1층 카페도 영업을 하고 있고, 길 건너 맥줏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직 버스가 다니는 시간이어서인지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100석 되는 PC방에 앉아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불과 10명 내외.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오버워치 등 최근 인기 게임을 즐기고 있다. ㄷ PC방에서 일하고 있는 김현우씨(가명)는 “아무리 평일이지만 보통 30명 정도는 앉아 있다. 강서구 사건 이후로 손님이 절반 이상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사장이 아닌 입장에서는 손님이 줄어든 게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김씨는 “원래 PC방 야간 알바가 힘들거나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손님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게 무섭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서구 사건 이후 가장 큰 변화로 여성 손님이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ㄷ PC방에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오버워치를 즐기는 여성 손님들이 5명 정도 있었다. 하지만 강서구 살인사건이 보도된 날 이후로는 단 한 명도 PC방을 찾지 않고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전자담배 피우는 손님 때문에 분쟁 잦아

PC방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자정 무렵부터 한두 명씩 빠져나가더니 새벽 1시가 되자 PC방에 남은 것은 단 4명뿐이었다. 김씨는 PC방 절반의 불을 껐다. 김씨는 “보통 새벽 4시가 넘어서야 한쪽 불을 끈다. 벌써 손님이 다 나가고 4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좀 일찍 불을 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특히 손님과의 마찰시 응대가 어렵다고 말했다. 10월 초 김씨는 한 50대 손님과 시비가 붙었다. 손님이 PC방에 설치된 쿠폰 기계에서 구입한 쿠폰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손님은 김씨를 불러 당장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사장님이 오셔야 처리되는 문제고 저는 알바라서 처리해드릴 수 없다”고 하자 손님은 김씨에게 욕을 한참 하다가 PC방을 나갔다. 김씨는 “손님이 소리지른다고 해서 경찰을 쉽게 부를 수도 없다. 경찰이 자주 오는 가게라고 소문나면 손님들에게 이미지가 나빠지고 결과적으로 제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C방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PC문화협회 간부 A씨는 야간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법이 PC방마다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PC방의 경우 본사에서 돌발상황 대응지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PC방은 사장이 하기에 따라 지구대와 연결된 곳도 있고, 긴급상황시 112 긴급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A씨는 협회 차원에서 경찰과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1월 12일 한국PC문화협회는 이사회 겸 워크숍을 통해 PC방 안전문제 등 종합적인 대처방안을 협회 차원에서 마련할 예정이다. A씨는 “주택가에서 야간에 혼자서 일하는 대표적인 사업장이 PC방과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경찰이 수시로 순찰도 하고 버튼만 누르면 경찰이 출동한다. 하지만 PC방은 1층에 잘 없기 때문에 경찰관이 지나다가 볼 수도 없고, 모든 PC방이 경찰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번 강서구 사건을 계기로 협회 차원에서 경찰청과 협의를 해 편의점 버튼 등의 도입을 의논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물론 경찰 출동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대표적인 게 흡연으로 인한 손님들의 시비다. 서울 성북구의 한 PC방에서 일하는 정지훈씨(가명)는 PC방 금연화가 정착됐음에도 여전히 흡연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야간에 구석 자리에 앉아 전자담배를 피는 사람 때문에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는 거다. 만약 다른 손님들이 메모를 통해 조용히 카운터에 알리면 정씨가 직접 가서 담배를 꺼달라고 얘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흡연을 둘러싸고 손님들끼리 언성이 높아질 때가 가장 난감한 순간이다.

정씨는 “한 번은 새벽 2시에 경찰관까지 부른 적이 있었는데 자신들이 아니라 보건소에서 단속해야 하는 일이라며 주의만 주고 돌아갔다. 그 시간에 문을 여는 보건소가 어딨느냐”며 “단골손님들끼리 언성을 높이고 있으면 일하는 입장에서도 어떻게 대처를 할 수가 없다. 이상한 짓을 하는 손님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의 PC방 사장 박찬우씨(가명)는 24시간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범죄피해를 완전히 예방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PC방이 24시간을 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야간에 문을 닫고 싶으면 닫아도 된다. 하지만 PC방 사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쉽사리 야간에 문을 닫을 용감한 사장은 없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ㄴ PC방도 바로 길 건너편에 경쟁 PC방이 있다.

박씨는 PC방 이용자들이 정액제로 묶여 있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손님이 1만원에 12~13시간 하는 정액제를 끊어 놓고 밤에도 왔다가 낮에도 온다는 거다. 그는 “밤에 손님이 적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버리면 그 사람들이 낮시간에도 우리 쪽으로 오지 않고 옆 가게로 옮긴다. 한 번 다른 PC방 정액제에 정착한 손님은 완전히 잃어버린 손님이 된다. 주택가마다 2~3개 PC방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밤시간에 용감하게 문을 닫을 사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도시 주택가 한 PC방의 새벽 시간 모습. 평소엔 손님 10여명이 있었지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 야간 손님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 백철 기자

경기도 도시 주택가 한 PC방의 새벽 시간 모습. 평소엔 손님 10여명이 있었지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 야간 손님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 백철 기자

24시간 영업해야 살아남는 현실

한국PC문화협회 간부 A씨는 경찰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특히 야간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협회 차원에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PC방에서 돌발상황은 밤시간에 많이 일어난다. 낮에는 학생들로 붐비긴 하지만, 대부분 1~2시간을 하고 돌아간다. PC방 알바도 여러 명 있는 경우가 있기에 좀 더 대처하기가 쉽다. 하지만 야간엔 조용한 주택가에서 혼자 일하기 때문에 돌발상황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A씨는 “협회 차원에서 실용적인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협회에 가입된 매장에다가 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A씨는 PC방 24시간 운영에 대해서는 “이미 PC방은 24시간으로 인식이 굳어져 있고, 각 매장이 자율적으로 시간을 정해야지 정부나 협회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강서구 사건을 이유로 PC방을 범죄의 온상으로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PC방 범죄는 전체 범죄의 0.3%에 불과했다. 지난해 PC방에서는 강력범죄가 51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발생건수만 따지면 슈퍼마켓(75건), 종교기관(81건), 화장실(138건)보다도 적었다.

강서구 PC방 사장 박씨는 “저희 매장도 그렇고, ㄴ PC방도 그렇고 은행보다 더 철저하게 CCTV를 갖춰 놓았다. 손님과 말다툼은 있어도 이렇게 심각한 일이 터질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며 “우연히 벌어진 사건으로 PC방 전체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종진씨는 국정감사에서 강서구 살인사건의 원인이 게임중독처럼 묘사된 것에 대해서도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5일씩 PC방을 갈 때도 있지만 몇 년째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 주변에 보면 매일같이 술에 취한 채로 귀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는 술도 적게 마시고 그들보다 건강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게임을 탓하기보다 밤시간에 일하는 사람이 불안하지 않도록 치안을 강화하는 게 나라의 역할 아닐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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