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측 의견서에는 무엇이 담겼나

류인하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구속수감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의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는 장장 6시간 동안 진행됐다.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청구서는 234페이지, 임종헌 전 차장 측은 180페이지의 의견서를 각각 영장전담판사에게 제출했다.

<주간경향>은 최근 임 전 차장이 법원에 제출한 180페이지 분량의 의견서 중 일부를 단독입수했다. 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이 제시한 각 혐의를 반박하며 “대관에 필요한 각종 보고서 작성 지시는 법원행정처 차장으로서는 불가피한 업무였고, 심의관들에게 작성을 지시한 각종 보고서는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것은 아니었다. 재판거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앞서 구속 전 네 차례에 걸친 검찰 조사 때와는 달라진 태도다.

검찰은 적어도 11월 15일 전후로 임 전 차장을 기소해야 한다. 본격적인 법정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제출한 3년치 업무수첩과 80명에 달하는 전·현직 판·검사, 변호사의 진술, 임종헌 전 차장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8000개의 파일이 든 USB 등 증거를 갖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1일 전화통화에서 “재판개입 관련 증거와 진술을 확보했다”며 유죄판결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다면 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방패를 마련했을까.

“예측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뿐, 재판거래는 없었다”

의견서는 검찰이 제시한 재판거래 사례에 대해 “설령 (재판거래) 시나리오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재판은 해당 사건을 맡은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재판은 청와대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재판 결과에 우려를 하여 대응을 하였다 하여도 법원행정처 입장에서 대응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판결들은 그대로 선고되었다. (중략)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무죄 가능성이 보이자 그런 결과가 나왔을 때 사법부가 처할 상황에 대한 나름의 고육책을 강구한 점만 보인다. 그것도 향후 대법원에서 대법관들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의 시나리오로서 임시 모면해 가려고 함을 알 수 있다.”(의견서 중)

검찰은 현재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사건, 카토 다쓰야 전 산케이 지국장에 대한 재판 등 각종 재판에 임종헌 전 차장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의 의중을 받아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관여하려 했다는 것이다.

의견서는 그러나 재판개입을 했더라도 결과적으로 판결이 개입에 의도한 바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는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 카토 다쓰야 사건의 경우 행정처가 청와대의 의중대로 재판에 개입했다면 유죄판결이 내려졌어야 하지만 무죄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에 재판개입의 사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사건이 미치는 파장, 영향 등을 고려하여 합법적인 범위에서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상급법원이나 상급자, 지인, 전문가 등에게 법정 외에서 자문을 얻고 이를 절차나 결론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재판부의 의사나 판단을 억압 내지 무시하고 이루어진다면 큰 문제겠으나, 만약 그 양상이 자문 내지 지도, 조언의 모습으로서 그 의견과 판단을 재판부의 의견과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라면 과연 비난 가능성이 있거나 큰 비난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숙고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의견서 중)

또 심의관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이 곧바로 재판개입의 증거로 볼 수 없다고 제시하고 있다. 의견서는 “검토보고서는 판결문이나 행정기관의 공문과 다르다. 자신의 이름으로 결정하고 집행되고, 법적 효력을 갖게 되는 문서가 아니다. 검토 지시자가 지시자나 상급자의 행위를 결정하기 위해, 또는 상급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작성시킨 것이고, 작성자에 대해 법적 효력이 논란되는 문서가 아니다. (중략) 검사는 판결문 같은 문서들을 염두에 두고 검토보고서에 대해 법령 적용이나 죄질을 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의율이다”라며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또 “대검찰청 연구관들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며 대검 연구관의 업무도 직권남용 의율 대상이 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실·국장에 대한 복종의무가 있고, 심의관에게 주어진 업무가 다소 불만족스럽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이더라도 그것만으로 상급자가 지시한 검토보고서 작성지시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는지는 법정에서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재판 일방 당사자를 위한 문건을 작성하고 검토하도록 시키는 것은 당연히 의무 없는 일이고 재판개입에 해당한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라는 데에 이론이 없고, 만약 이것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면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당시 밝혀지지 않은 ‘7시간’에 대한 기사를 썼다가 기소된 카토 다쓰야 전 지국장에 대해 재판부가 청와대 의중과 달리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중요한 것은 판결문 안에 들어가는 판단이유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처음 판결문 이유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공인이다. 공인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작성했지만, 임성근 당시 형사수석부장으로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판단을 ‘허위사실에 해당하므로 명예훼손은 되지만 비방 목적이 없어 무죄’로 적시하라는 지시를 받고 재판부가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재판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가욋일 지시… 불가피한 업무”

검찰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에서 외교부의 의견서를 사전에 검토하게 한 행위, 고용노동부의 재항고이유서 검토, 메르스 사태 관련 국가 배상책임 등 검토, 유명인 형상 가면 판매에 따른 법적 책임 검토, VIP 관련 직권남용죄 등 법리모음, 홍일표 국회의원 개인 사해행위 취소소송 사건 검토, 홍일표 개인의 정치자금법 위반 형사사건 검토, 유동수 개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검토 등 11개 혐의에 대해 직권남용을 의율한 상태다. 사실상 개개인의 청탁을 공적업무를 해야 할 행정처 심의관에게 맡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의 요지다.

임 전 차장 측 의견서에 따르면 “가욋일은 맞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관이 전체 업무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법원행정처의 현실에서 각종 청탁에 대한 대응 역시 넓게 볼 때 행정처 업무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임 전 차장 측 주장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피의자는 개인적 부탁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법부의 입장에서 행정기관들에 대한 업무협조 차원으로 생각…(중략) 수사된 내용을 자세히 유추해 보면 피의자가 담당 재판부에 원하는 결론을 내달라고 부탁, 요구, 지시한 적도 나타나 있지 않다”고 의견서에 적시돼 있다.

의견서에 따르면 임 전 차장 측은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활용해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한 각종 위상강화 방안을 마련하려 했던 혐의, 통합진보당 의원 관련 각종 재판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직 대법관도 수사대상에 오르나

그동안 현직 대법관들도 직권남용(재판거래) 혐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분분했으나 확인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의견서에는 검찰이 2명의 현직 대법관에 대해 재판거래에 관여한 혐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대법관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 검찰은 해당 대법관들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할 당시 법원행정처로부터 전달받은 의견대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A대법관은 2015년 구 통진당 소속 의원들이 법원을 상대로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소송 항소심에서 법원행정처로부터 기각판단을 내리라는 의견서를 전달받고 법원행정처의 주문대로 기각판결을 내린 혐의다. 의견서에는 해당 대법관에 대해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김○○ 부장판사)는 법리를 제공하려 하자, 인사이동 전 사건 처리가 어렵다고 하여 더 이상 제안한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후임 재판부(△△△ 부장판사=A대법관)는 자료를 제공받고 1심을 파기한 것으로 돼 있는데…(후략)”라고 기재돼 있다.

B대법관은 지방 고등법원 항소심 재판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당 해산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옛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의원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개입은 판결 결과보다는 판결 이유에서 B대법관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전달받은 의견서대로 작성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그러나 의견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지방법원에서의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사건은 피의자가 관여한 것이 아니며, ○○지법에서의 행위가 과연 모두 법원행정처의 관여에 의한 것인지, ○○지법 재판장의 독단적 판단과 행위인 부분이 어디까지인지가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의 핵심 실무를 맡았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조사를 받기위해 이송되고있다. / 이준헌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의 핵심 실무를 맡았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조사를 받기위해 이송되고있다. / 이준헌 기자


‘충격적인’ 보고서… 유죄받아낼 수 있을까

현재까지 공개된 임종헌 전 차장 재직시절 법원행정처 내에서 생성된 각종 보고서들은 이미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깊은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러나 각종 시나리오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 충격적인 것과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지 여부는 정치적 고려를 떠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현재 검찰은 임 전 차장에 대한 범죄사실은 30여개, 적용죄명은 7~8개 정도로 정리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은 ‘직권남용’이다.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청와대와 결탁해 각종 재판거래 및 로비를 벌여왔다는 것이 범죄사실의 요지다.

검찰은 박근혜 정권에 부담되는 각종 재판과 관련된 여러 시나리오가 적힌 보고서들이 실제 실행에 옮겨졌는지 여부를 면밀하게 따져 입증해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이미 충분한 진술을 받아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임 전 차장 쪽에서 어떤 주장을 펼치든 막아낼 자신이 있다”고 했다. 검찰은 전·현직 판사, 심의관들로부터 법원행정처의 개입으로 결과를 바꿨다는 일부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고법 항소심 재판장에게 변론 재개, 추가기일 진행, 선고기일 지정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해당 재판장으로부터 일부 진술을 받아낸 상태이고, 카토 다쓰야 전 지국장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장으로부터 “행정처의 지시대로 수정했다”는 진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정위헌결정 직권취소 사건 역시 당초 재판부 결정과 다른 판단을 행정처가 지시했고, 이를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자 행정처로부터 압력을 받아 선고를 하지 않은 채 놔뒀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임 전 차장 측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관여 증거는 없고, 판결의 결과가 바뀐 것은 없기 때문에 무죄를 받아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견서에 따르면 “법리적용 문제를 떠나서 사상 초유로 개인적 행위가 아닌 법원행정처 차원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고위 법관을 구속하려면 해당 재판부의 의사를 제압하는 재판 관여가 1건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적어도 어느 재판부나 대법관이 부당한 관여를 경험해서 충돌 내지 반발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대법관들이나 재판부들은 불법부당한 관여를 경험하여도 이를 따르고, 반발조차 엄두를 못 내는 그런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일제 강제징용 사건’은 법정에서도 첨예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 측은 외교부 관계자로부터 의견서를 받아 행정처 심의관에게 ‘의무 없는’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가 전부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입장이다. 보고서 작성은 심의관의 업무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유죄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쪽에서 요구했던 것은 ‘시간을 끌어달라’,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가져가달라’는 것이었고, 그대로 이뤄졌다”면서 “2012년 김능환 대법관 재판부에서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환송을 시킨 사건을 항소심 재판부가 대법원 취지대로 그대로 판결했으면 설령 재상고가 됐더라도 그대로 심리불속행 기각을 시킬 일이지 전원합의체로 가져갈 사건이 애당초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10월 31일 선고된 판결을 봐라. 2012년 대법원 판결과 거의 유사하다. 이렇게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것을 5년을 끈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냐”고 지적했다.

검찰은 늦어도 11월 15일 전후로 임 전 차장을 기소하고 재판에 넘겨야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놓고 이견만 확인하고 있다. 검찰도, 임 전 차장 측도 특별재판부 설치는 향후 재판과정에서 유·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무엇보다 임 전 차장 측은 법원행정처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재판부가 사건을 맡을 경우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일 전화통화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수사의 최종 목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차한성·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이지 임종헌 전 차장이 아니다”라며 “11월 내에 특별재판부 설치가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는 있지만 임 전 차장 기소 전에 설치가 되지 않더라도 양 전 원장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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