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 큰 별’ 신성일 폐암으로 4일 별세

김경학 기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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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 최고의 남성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강신성일씨가 4일 새벽 폐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81세.

신성일은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뒤 3일 만에 대구로 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1956년 경북고를 졸업한 뒤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우연히 배우학원에 들어간 것이 인생을 바꿨다. 1957년 고 신상옥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 배우 모집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전속배우가 됐다. 이때 받은 예명이 그의 평생 이름이 됐다. 신 감독의 성에다가 ‘뉴스타 넘버원(성일·星一)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

젊은 시절의 신성일. 경향신문 자료사진.

젊은 시절의 신성일.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1960)로 데뷔한 뒤 탄탄대로를 걸었다. 1964년 김기덕이 감독한 영화 <맨발의 청춘>은 서울에서만 관객 약 36만명을 동원했다. 같은해 11월 <맨발의 청춘> 상대역이기도 했던 배우 엄앵란과 결혼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하객과 팬 등 4000여명 인파가 몰렸다.

영화 <맨발의 청춘>의 한 장면. 왼쪽이 신성일씨, 오른쪽이 엄앵란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 <맨발의 청춘>의 한 장면. 왼쪽이 신성일씨, 오른쪽이 엄앵란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린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린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5년 6월 신성일, 엄앵란 부부가 서울 새빛둥둥섬에서 열린 엄앵란씨 팔순잔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2015년 6월 신성일, 엄앵란 부부가 서울 새빛둥둥섬에서 열린 엄앵란씨 팔순잔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별들의 고향>(1974), <겨울여자>(1977) 등 1970~198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신성일은 출연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으로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만 500편이 넘는다. 한국영화계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영화 <별들의 고향>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 <별들의 고향>의 한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71년까지 8년간 한국영화 개봉작 1194편 중 324편에 그가 등장했다. 1967년에는 한 해에만 신성일이 주연한 영화 51편이 극장에서 상영됐다. 사실상 1년 내내 그가 주연한 영화가 극장에 걸린 셈이다.

‘여배우 트로이카’남정임·문희·윤정희(왼쪽부터)와 함께 영화 <결혼교실>(1970)에 출연한 신성일(가운데).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배우 트로이카’남정임·문희·윤정희(왼쪽부터)와 함께 영화 <결혼교실>(1970)에 출연한 신성일(가운데).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찬욱 감독은 이 책에서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며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2005년에는 영화 <태풍>에 특별 출연했고, 2013년 <야관문: 욕망의 꽃>에서 주연을 맡아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명성만큼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1968년과 1990년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대종상영화제 공로상·부일영화상 공로상 등 수없이 많은 상을 수상했다.

2013년 10월 서울 동대문메가박스에서 열린 〈야관문: 욕망의 꽃>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배슬기와 신성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2013년 10월 서울 동대문메가박스에서 열린 〈야관문: 욕망의 꽃>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배슬기와 신성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신성일은 영화계 성공을 발판으로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과 1996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2000년 대구 동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본명을 표기해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본명을 ‘강신영’에서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신성일은 또 대구과학대학 방송연예과 겸임교수, 계명대 연극예술과 특임교수를 맡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저서로는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인터뷰집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등이 있다.

신성일이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행사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신성일이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행사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지만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해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이었던 신성일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딴따라’ 소리가 제일 싫다”며 “딴따라 소리 들으려고 영화계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성일은 지난달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도 참석해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레드 카펫을 밟았다. 이 것이 신성일의 마지막 공식 활동이 됐다. 신성일은 오는 9일 서울 충무로 명보아트홀에서 열리는 제8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서 공로예술인 부문상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아쉽게 참석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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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던 신성일은 3일 오후 병세가 악화됐고, 유족이 장례식장을 예약하며 이날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한 때 호흡이 돌아왔지만, 의식을 찾지 못한 그는 4일 새벽 2시30분쯤 세상과 이별했다.

영화단체들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화인장으로 치르기로 유족과 합의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과 배우 안성기가 맡고, 고문은 신영균·김동호·김지미·윤일봉·김수용·남궁원·임권택·정진우·이두용·오석근·문희가 맡기로 했다. 지 회장은 4일 빈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신성일 선배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었던 대단한 연기자”라며 “갑자기 별세하실지 몰랐는데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국현 한국배우협회 이사장이 집행위원장을, 이덕화·거룡·장미희·송강호·강수연·최민식이 부위원장직을 수행한다. 장례위원으로는 양윤호·조동관·이민용·윤석훈·장태령·홍기영·박현우·이춘연·정지영·문성근·채윤희·조영각·안병호·박종윤·박상원·신언식·김형준·주원석·홍승기·김용운·박만창 등 영화계 각 분야 인사가 위촉됐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차려졌다. 유족으로 아내 엄앵란씨와 장남 석현·장녀 경아·차녀 수화씨가 있다. 영결식은 6일 오전 10시에 진행하며, 오전 11시 서울추모공원으로 고인을 옮겨 화장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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