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몰개월의 새 - 황석영

김상헌 | 네이버 경영고문·국립극단 이사장

인생은 유치한 것이 없다

[김상헌의 내 인생의 책]①몰개월의 새 - 황석영

‘내 인생의 책’을 쓰려다 보니 대부분의 책을 감동 깊게 읽었다는 것만 생각나고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요즈음 나는 독서클럽에서 사람들과 만나 함께 책을 읽는다. 같은 책을 놓고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롭다. 모두들 자기 생각과 일치하거나 자기 상황에서 필요한 내용의 책을 좋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독후감이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그런 점에서, 읽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줄거리가 생생한 <몰개월의 새>는 아마도 청년 시절 나의 어딘가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딱히 가진 것 없어 막막한 20대 주인공 ‘나’는 동경하긴 했으나 그 일부가 될 수 없었던 ‘서울’이라는 세계에서 도피하는 심정으로 입대해 ‘몰개월’ 마을에서 훈련 중이다. 곧 전장에 투입되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처지.

인생의 막장 같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훈련병을 상대하는 술집 작부 ‘미자’의 ‘나’에 대한 연정에 ‘나’는 가족과 같은 연민을 느끼지만 여자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늘 마음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서울’의 ‘사람’이다. 전쟁터로 떠나는 ‘나’에게 꼭 살아서 돌아오라며 미자가 이별의 선물로 준 유치한 플라스틱 오뚝이 한 쌍을 ‘나’는 남지나해에 버린다. 나중에야 ‘나’는 깨닫는다. “작전에 나가서야 비로소 인생에는 유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몰개월 여자들이 연출하던 이별의 연극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자들의 자기표현임을 눈치 챈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몰개월을 거쳐 먼 나라의 전장에서 죽어간 모든 병사들이 알고 있었던 일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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