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워싱턴에 ‘DC’가 붙는 이유는, 워싱턴의 정식 명칭이 ‘워싱턴 디스트릭트 오브 콜럼비아 Washington District of Colombia’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워싱턴 콜롬비아 특별구’라는 뜻으로 워싱턴 DC가 위치한 대서양 연안의 메릴랜드주는 물론 미국의 그 어느 주에도 포함되지 않는 독립 도시를 의미한다. 서울시가 경기도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경기도가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반인들 또한 수도 워싱턴에는 꼭 ‘DC’를 붙임으로써 미국 서부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와 구별하고 있다(필자는 어렸을 때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분명 워싱턴주에 위치한다’고 굳게 믿은 적도 있었다).
워싱턴 DC 여행의 목적은 ‘미국 역사’와 ‘미국인의 소박한 삶’을 보기 위해서이다. 정치와 행정, 법률 도시라고 서민의 삶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화려하지 않고 유행을 선도하지도 않는다. 오래된 도시인만큼 고풍스러운 마을도 많고, 주민을 상대로 하는 전통 시장, 마켓, 백화점, 카페, 서점, 도서관 등 평범한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풍경들도 많다. 시내로 들어가면 수많은 로비스트들이 들락거리는 곳답게 호텔, 레스토랑 등 다운타운의 인프라도 잘 되어 있다. 워싱턴 DC에서 무엇보다 집중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미국의 역사와 함께 한 권위적 시설물들이다. 미국의 역사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것이 관심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셔널몰에서 문화 공간과 함께 인기 있는 것은 바로 ‘타이들 베이슨 Tidal Basin’. 내셔널몰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여행자는 물론 워싱턴 DC 시민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특히 봄에 열리는 ‘내셔널 체리 블로섬 페스티벌 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은 주민 뿐 아니라 세계의 주목을 받는 축제이다. 수천 그루의 벚꽃 아래에서 피크닉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미국 전역과 세계에서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타이들 베이슨은 인공 호수를 중심으로 전형적인 공원으로 운영된다. 호수에서 패들보트를 타며 유유히 움직이는 사람들, 호반길을 산책하는 사람들,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요가와 필라테스, 또는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들 등 더 이상의 평화가 없겠다 싶을 풍경 속을 걷노라면, 워싱턴 DC가 갑자기 사랑스러워지고 이곳에 더 머물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곤 한다.
링컨 기념관은 건축가 ‘헨리 베이컨 Henry Bacon’의 설계로 1922년 5월30일에 완성되었다. 그리스 건축 스타일에서 가져온 ‘그릭 리바이벌 Greek Revival’ 건축 양식으로 지은 이곳은 하얀색 대리석, 3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기둥을 서른 여섯 개 세운 것은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당시 ‘노예 해방에 찬성한 북부 연방’의 36개 주를 의미한다. 기념관 중앙의 링컨을 대리석 좌상은 조각가 ‘대니얼 체스터 프렌치 Daniel Chester French’의 작품인데, 조각상 뒤쪽에 새겨진 링컨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의 매시지를 읽노라면 정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건축물, 노예해방, 위대한 지도자 등등 엄숙함과 존경심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현장에 가 보면 너무도 많은 관광객, 너무나 시끄러운 일부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빠질 지경이다. 그러나 음각된 글, 해방의 과정, 유물 등을 찬찬히 살피노라면 홀로 들어와 있는 듯한 몰아의 경지에 빠질 수도 있다.
위치 900 Ohio Drive SW Washington, DC 20024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존경이 뜻을 담은 이 탑은 두 가지 재미있는 기록을 갖고 있다. 하나는 이 탑 때문에 워싱턴 DC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없다. 국민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는 건립 취지에 맞춰 ‘워싱턴 DC에 워싱턴 기념탑보다 높은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는 법률이 재정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워싱턴 기념탑의 건립 기간은 37년이다. 1848년에 건축을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 남북전쟁 등으로 중단된 일이 많았다. 건축이 지지부분해지면서 처음에 계획했던 조지 워싱턴 조각상 건립이 취소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 기념관은 1988년 10월9일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53m 높이의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70초. 전망대에 오르면 동쪽 국회의사당, 서쪽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북쪽 백악관 등 워싱턴 DC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워싱턴 DC 여행에서 맨 먼저 내셔널 몰에 가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전망대가 그러하듯, 여기 역시 일찍 나가 탑 옆의 매표소 앞에서 줄을 서야 당일에 오를 수 있다. 이곳은 입장료는 물론 엘리베이터까지 무료로, 선착순으로 태워준다. 그러니 더더욱 서둘러야 한다.
위치 2 15th St NW, Washington, DC 20024
위치 East Capitol St NE & First St SE, Washington, DC 20004
위치 1600 Pennsylvania Ave, Washington, DC 20500
워싱턴 DC는 박물관 천국이다. 박물관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다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National Air & Space Museum’, ‘미국 역사 박물관 Museum of American History’, ‘자연사 박물관 Museum of Natural History’ 등은 다분히 미국적이고 다소 마초적인 기념관들과 달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동안 벌어진 문명의 역사와 흔적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이다. 그 넓은 땅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키고 연방으로 분권하는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미국인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논의했을까. 그리고 나사로 대표되는 미국의 과학과 문명이 어떻게 세계를 석권하게 되었는지도 이곳들에서 엿볼 수 있다. 한때는 이빨 빠진 사자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최근 미국 기업인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를 떠올리며 이런 박물관 투어를 해 보면 그 저력의 근본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코코란 갤러리 Corcoran Gallery’, ‘스미스소니언 미국 미술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프리어 미술관 Freer Gallery of Art’, ‘아프리카 박물관 Museum of African Art’, ‘여성 예술가 박물관 Museum of Women in the Arts’ 등은 미국인들의 예술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미국적 갤러리들이다.
공연 문화도 그 어느 도시 못지 않다. 콘서트 홀, 오페라하우스, 극장 등 문화 공연 시설들을 갖춘 ‘케네디 센터 Kennedy Center’, ‘셰익스피어 시어터 컴퍼니 Shakespeare Theatre Company’, ‘아방 바르 The Avant Bard’, ‘컨스텔레이션 Constellation’, ‘모자이크 Mosaic’, ‘로르 샤흐 Rorschach’ 극장 등은 건축물 앞에 서기만 해도 마음이 뿌듯해지는 문화 예술의 전당들이다. 공연과 전시 일정이 맞는다면 천천히 관람하고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그게 여행의 참 맛 아닐까.
요즘 유행하는 마을 여행도 계획해 본다. 레스토랑과 상점,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 여행 내내 즐거운 ‘U 스트리트 코리더 U Street Corridor’, 주거지역이자 클럽과 카페 문화가 남다른 ‘아담스 모건 Adams Morgan’은 즐길 거리가 많은 동네들이다. 조지타운 역시 고급 브랜드와 전통적 밤 문화가 활발한 도시이다. 조지타운에 가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인 ‘이스턴 마켓 Eastern Market’을 꼭 들려볼 것을 워싱턴 DC 동네 여행을 경험한 여행자들의 한결 같은 권유이다.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픽사베이, 위키미디어, gousa 공식 홈페이지 참조 미국관광청 일러스트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0호 (18.10.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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