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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18 책의 해’ 도심 곳곳에 조성된 라이프러리 가을 숲으로 책 읽으러 가자

이승연 기자
입력 : 
2018-10-25 14: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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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활자를 넘기는 행위가 너무도 익숙해진 요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 먹고 실행해야 가능한 것이 되어 버렸다. 또한 숲과 공원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가까이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찾지 않게 된 책과 공원. 그런데 그 두 가지가 합쳐지자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2018 책의 해를 맞이해 열린 서울숲가을페스티벌. 마음 먹고 찾아간 이곳에서의 순간이 보다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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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읽는 분위기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에, 대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은 언제나 환영받는 분위기이다. 지난 13~14일 양일간 서울숲에서 열린 서울숲가을페스티벌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부터 매년 그 해를 대표할 만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 서울숲가을페스티벌. 올해는 2018 책의 해를 맞이해 ‘책들고 숲으로-라이프러리(삶 Life과 도서관 Library의 합성어) Forest’를 개최했다. ‘라이프러리’는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야외 생활공간에 서가를 조성해 함께 읽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캠페인이다. 지난 8월 부산 영화의전당(라이프러리 시어터), 9월 제주 협재해수욕장(라이프러리 아일랜드)에 이어, 10월 라이프러리로 서울숲(라이프러리 포레스트)이 선정됐다. 이번 라이프러리 개최 소식은 올해 가을 정취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거나, 읽으려고 목표한 책들을 책꽂이에 가지런히 쌓아두고 인테리어 용도로만 활용한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에디터 역시 마찬가지. 그동안 읽기를 미뤄둔 책을 보며 연신 한숨만 내뱉고 있었던 터라, 페스티벌이 열린 주말 아침! 일찌감치 가방에 책 두 권과 돗자리, 담요, 텀블러 등을 챙겨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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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들고 숲으로 가자 서울숲 입구에서부터 목적지로 향하는 산책길 코스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갑작스런 추위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치 제 존재감을 알리듯 만개한 꽃들 사이로 가족단위의 방문객부터 친구, 연인 등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사진을 찍기에 바쁜 모습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덧 메인 스테이지인 서울숲 가족마당에 도착해 있다. 잔디밭 위에 세워진 ‘오픈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야외 팝업 도서관이 꾸며졌다. 사실 에디터는 이곳을 찾기 전 ‘많이들 찾아올까?’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굳이 책 읽으러 먼 곳까지 찾아간다고?’ ‘책이야 아무데서나 읽을 수 있는 거 아냐?’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기우였던 듯, 서울숲 야외 도서관은 다양한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노란색 책꽂이가 동그랗게 줄지어 있는 ‘라이프러리LIFRARY’. 해당 섹션에 마련된 책꽂이에는 ‘북그러움’, ‘타인의 책 지음책방’, ‘리지블루스’, ‘말앤북스’ 등 페스티벌에 참여한 지역 독립서점 및 동네책방, 북카페들의 추천 서적이 배치돼 있었다. 한편에는 방송인 김소영, 오상진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 ‘당인리 책 발전소’에서 선정한 책들도 보였다. 책꽂이 뒤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방문객은 새로 발견한 책이 마음에 든 듯 오랫동안 우두커니 그곳을 지키고 있었고, 우연히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 역시 자유롭게 책을 골라 오픈 스튜디오 주변에 배치된 파라솔 테이블, 빈백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 마련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 역시 이번 야외 도서관에서 눈에 띈 부분이다. 이동식 트럭 차량에 꾸며진 ‘캣왕성 유랑책방’ 등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나, 필독서들을 배치했다. 어린 독자들은 책을 읽다가도 놀이터 ‘북그라운드’의 놀이 시설로 이동, 자연스럽게 ‘책도 읽고 놀 수도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리고 방문자 센터에서 진행된 북토크 ‘내 안의 자연인을 깨우는 법-어른들을 위한 숲놀이’의 경우 숲해설가이자 만화가인 황경택 작가의 안내를 따라 숲을 느끼고 관찰하면서, 잃어버렸던 자연감성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선 ‘우리가 자연인이라는 걸 어떻게 아는가’을 이야기하는 실내 강연과, 자연감성을 깨우기 위해 숲에서 해보면 좋을 몇 가지 숲 체험 활동이 함께 진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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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토크가 어우러진 라이프러리 에디터도 나만의 독서 취향에 맞는 곳, 가방 속 자리한 책을 꺼내 들 장소를 찾아 나섰다. 이번 ‘책들고 숲으로’ 세부 프로그램 중 ‘내 인생의 책’을 주제로 한 ‘숲속음악회’가 은행나무숲과 대왕참나무숲에서 펼쳐졌다. 은행나무숲에서는 MODNY, 흠밴드, 이문석 트리오, 싱송생송 등의 재즈 아티스트 8팀이, 대왕참나무숲(가족마당 무대 옆)에서는 소년과 바다, 꿀막걸리, 서교동 트리오, 백허거스 등의 인디 아티스트 8팀이 참여해 무대를 꾸몄다.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숲에서 펼쳐지는 재즈와 인디공연들.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감미로운 소리가 숲으로 울려 퍼지면서 길을 가던 사람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본래 예비신혼부부들의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숲이, 이날만큼은 마치 소극장 콘서트처럼 온전히 뮤지션과 관객, 책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해 있었다. 햇빛에 녹아 든 나무 그림자는 자연스레 무대 인테리어와 조명이 되고, 무대 앞 객석에는 본래의 쓰임새를 잃은 나무 널빤지와 벤치가 VIP들을 위한 좌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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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은행나무숲에선 재즈 뮤지션 ‘김태형 Trio’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한 뮤지션들은 사전에 책 한 권을 골라 줄거리와 함께 감명 깊게 읽은 부분, 그리고 이에 어울리는 노래를 관객들에게 소개하는데, 이날 ‘김태형 Trio’가 고른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의 일부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색소폰 연주자 에디 해리스의 ‘그린돌핀 스트리트’가 흘러나오자 드넓은 서울숲 공간이 순식간에 음악으로 물들었다. 그곳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자 뒤이어 찾은 대왕참나무숲에선 마침 어쿠스틱 밴드 ‘꿀막걸리’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무대 앞 좌석은 벌써부터 만석. 관객들이 적극적인 리액션으로 보답하며 공연 분위기가 한층 업이 되는 가운데, 나는 무대와 조금 떨어진 참나무 하나에 기대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이날 고른 책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에미코의 대화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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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참나무숲 인디밴드, 은행나무숲 재즈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 캣왕성 유랑책방
라이브로 연주되는 비틀즈의 렛잇비를 들으며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 이날 나는 제법 바람이 쌀쌀해질 때까지, 책을 읽다가 단풍을 한번 바라보기도 하고, 다시 책을 읽다가 들려오는 노래에 빠져들기도 했다. 이곳에 뮤직페스티벌의 매력과, 북페스티벌의 매력이 공존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라이프러리 서울숲’은 개최에 앞서 책만 있으면 변하는 ‘야외 도서관’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알렸다. 에디터처럼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기도 하고, 빈백에 누워 낮잠을 즐기며, 재즈 선율에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셀러브리티의 책장이나 동네책방 주인들의 큐레이션 책장을 보며 새로운 책을 마주하는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사실상 책을 10분만 읽든, 목차만 읽든 상관 없다. 가을철 야외 도서관은 마음 먹고 읽는 책이 아닌, 누구나, 어느 순간에도 즐길 수 있는 책 문화와 그 재미를 알리고자 한 것에서 목적은 달성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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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2018 책의 해’ ‘2018 책의 해’는 디지털 환경의 진화 등으로 인한 출판문화산업의 위기 구조를 타개하고 출판 수요를 창출해 출판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추진됐다. 표어인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무슨 책 읽어?’는 비독자들이 책의 가치를 인식하고, 소통을 통해 책 읽기의 중요성을 확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책과 관련된 동영상과 SNS를 활용한 사업인 ‘나도 북튜버(Book+Youtuber)’는 유튜브에 익숙한 시민들이 책과 관련된 즐겁고 신나는 영상을 올려 유튜브 세대 간의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는 활동부터, 캠핑의 즐거움과 책 읽기를 엮어 책과의 하룻밤을 체험하는 ‘북캠핑’ 행사와 학교, 도서관, 직장, 서점 등의 독서동아리(북클럽)들이 다양한 임무(미션)를 수행하는 ‘북클럽 리그’ 등의 프로그램이 독자들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편 야외 도서관 ‘라이프러리’의 다음 장소는 광화문 광장(라이프러리 시티)이라고 하니, 11월 야외 도서관의 소식을 기다려보도록 하자.

[글 이승연 기자 사진 이승연, 서울그린트러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1호 (18.10.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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