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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in ‘라라랜드’ 꿈, 그것은 아름다운 도전이다

입력 : 
2018-10-25 14: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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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를 상징하는 영화 중 하나가 ‘라라랜드’다. 영화는 미아, 세바스찬 두 남녀의 사랑과 꿈을 향한 열정을 토대로 할리우드의 전성기인 1940년대를 연상케 하는 연출과 촬영으로 우리를 몽환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배우가 되고 싶은 미아, 자신의 바를 차려 정통 재즈를 연주하고 싶은 세바스찬. 이 두 사람의 현재와 꿈을 펼치는 무대로 LA는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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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도시’가 빚어낸 서정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첫 시작은 18세기 후반 무렵이다. 인디언 마을이던 이곳에 스페인 군대와 민간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곳을 ‘시우다드 데 로스 앙헬레스 Ciudad de Los Angeles’ 즉 ‘천사들의 도시’라고 불렀다. 이후 ‘Ciudad de’가 빠지고 ‘Los Angeles’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는 한국인에게도 친근한 도시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한국인이 사는 곳, 유니버설 스튜디오, 디즈니랜드, 산타모니카 해변, 베버리힐스, 할리우드 극장, 심지어 류현진이 소속된 LA 다저스 구단도 있고, 요즘은 ‘LA 강남 8학군’이라는 어바인도 귀에 익은 곳이다. 물론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2년 ‘LA 폭동’으로 한인 사회는 막심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구조의 모순이 괜한 한인들에게 불똥이 튀어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LA는 미국 사회의 모든 모순, 즉 인종 차별, 노숙자,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 등이 상존하지만 그래도 미국 사회의 가장 큰 장점인 포용과 다양성의 인정이 여전한 곳이다.

인구 800만 명,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는 전 세계인이 동경하는 도시가 되었다. 다양한 인종, 문화가 공존하고 이는 영화, 음악, 미술 등 새롭고 신선한 예술 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 원천은 할리우드다. 우리가 ‘할리우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할리우드 영화, 스타, 방식, 문법…’ 이 모든 것에는 꿈과 희망이 내포되어 있다. 그 꿈과 희망은 열정을 낳고 열정은 도전으로 이어진다. 도전은 수많은 젊음의 피를 뜨겁게 달구는 불이 된다.

LA를 상징하는 영화는 수없이 많다. 마치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를 찾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최근 우리의 마음을 차지한 영화가 있다. 바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다. 영화는 미아, 세바스찬 두 남녀의 사랑과 꿈을 향한 열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할리우드의 전성기인 1940년대를 연상케 하는 연출과 촬영이 눈에 띈다. 물론 영화는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기법으로 완성되었지만 ‘클래식의 향연’처럼 우리를 몽환적인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배우가 되고 싶은 미아, 자신의 바를 차려 정통 재즈를 연주하고 싶은 세바스찬. 사실 이 두 사람의 현재와 꿈을 펼치는 무대로 LA는 제격이다.

1949년에 첫 문을 연 재즈 클럽, 유서 깊은 레돈도 해변의 라이트하우스 카페, 그리피스 공원 천문대와 LA 시내의 은하수 같은 야경 등이 영화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을 응원한다. 물론 LA에서 수백 년 된 유적지, 왕조의 흔적, 세계적인 유물들을 감상할 수는 없다. 겨우 300년이 채 안 된 미국 역사, 그중에서 200년이 갓 넘은 LA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되었고, 거장이 만들었고, 왕조의 찬란함이 깃들었다고 그 모든 것을 경외하고 숭배할 필요는 없지만, LA는 영화 역사의 시작이고 현재며 아직은 미래라는 예단이 가능한 곳이다. 할리우드를 품고 있는 도시 LA. 우리는 이 영화에서 LA의 사계절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꿈을 꾸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달리는 미아와 세바스찬에게 응원을 보내는 역할로도 만족감을 느낀다. 영화 ‘라라랜드’는 ‘꿈꾸는 자의 도시’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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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꿈꾸는 그녀, 재즈를 사랑하는 그 LA 고가 도로.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에 음악, 뉴스, 광고 등 다양한 소리들이 겹쳐진다. 카메라가 부감으로 고가 도로를 비추다가 한 차를 향해 빠른 속도로 포커스를 맞춘다.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인. 그녀의 차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차 문을 열고 노래를 부르며 나오는 여인. 옆 차의 남자가 나오며 그녀의 노래를 이어받는다. 그러자 꽉 막힌 도로에 노래와 춤의 무대가 펼쳐진다. 제목은 ‘Another Day of Sun’. ‘그래 내일도 해는 뜰 거야!’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처럼 꿈과 그 꿈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정이 가득하다. 그래! 여기는 LA니까.

“어느 여름 일요일 밤. 의자에 몸을 푹 묻고 조명이 꺼지며 어두워지면 음악과 기계로 만들어진 총천연색 세상, 나를 스크린 속으로 들어오라고 불렀어. 그 모든 장면 속에 살아 보라고. 그래, 난 빈털터리였지만 버스를 타고 여기에 왔어. 용감한 건지 미친 건지, 두고 봐야 알겠지. 언젠가 지루한 마을 구석에서 그 남자가 의자에 몸을 묻고 스크린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나를 알았노라 회상할 거야.

매일 소리가 들려, 계곡을 채우는 리듬. 먼저 왔다간 이들이 술집마다 남기고 간 선율들. 날 유혹하네. 난 모든 문을 두드려. 모두에게 거절당해도, 생활비가 바닥나도 먼지 낀 마이크와 네온 불빛만 있으면 난 그만이야. 언제가 내가 노래할 때 촌구석 청년이 구경 왔다가 그걸로 힘을 얻어 나아가겠지. 이 언덕을 넘어 저 높은 곳에 오를 거야, 반짝이는 빛을 향해!”

도로의 정체가 풀렸다. 사람들은 다시 일터로, 꿈과 희망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순간 “빵~ 빵~” 요란한 경적이 울린다.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정체가 풀려도 움직이지 않는 앞 차에 짜증이 난다. 그는 앞 차 옆에 잠깐 선다.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은 서로를 쳐다본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다. 마치 세바스찬은 멈춰 선 미아에게 “너도 빨리 네 꿈을 향해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할리우드 배우가 꿈인 미아. 미아는 워너브라더스 내 커피숍에서 일한다. 그녀는 오디션에 응모한다. 하지만 오디션장에서 미아에게 들리는 소리는 “그만”, “됐어요”뿐이다. 심사위원들은 딴청을 피우고 심지어 미아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미아는 포기하지 않는다.

미아와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 그녀들은 미아에게 클럽에 가자고 부추긴다. 그곳에 가면 ‘우리의 꿈에 날개를 달아 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미아의 작은 방. 한쪽 벽에는 잉그리드 버그먼의 얼굴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 이모 손을 잡고 영화관에서 본 ‘카사블랑카’다. 그때의 기억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미아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미아, 친구들은 각각 빨강색, 노란색, 초록색 원피스를 입었다. 거리로 나서며 이들은 또 한 번 희망을 갖는다. ‘Someone In The Crowd’,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그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그리는 미아와 친구들. 그녀들은 그 순간 하나가 되어 노래를 한다.

“넌 초대장 받았어? 넌 제대로 된 주소 갖고 있어? 진정제가 좀 필요해? 네가 기다렸던 사람일 수도 있지. 오늘 밤 우리는 캐스팅 콜이야. 얘들아, 이게 진짜 오디션이라면. 오! 우리 모두를 도와주세요. 그 누군가의 눈에 나를 매력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그럼 모두들 네 이름을 알게 돼. 군중 속에 있는 누군가가 네가 실제로 보는 유일한 존재야? 이 세상이 계속 돌고 도는 동안 지켜보고 있어. 어딘가 거기,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 어딘가 발견되기를 그저 기다리고 있는.”

샴페인과 음악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와 멋진 남자들이 넘치는 클럽. 미아는 그 소란스런 화려함에 녹아 들지 못한다. 유혹을 남발하는 남자들, 과장된 웃음과 몸짓을 연발하는 여자들, 미아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혼자만의 고독’을 느낀다. 거울 앞에 선 미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향해 가는 그 꿈이 맞는 것이야, 미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천천히 클럽을 나오는 미아. 차는 견인 당했다. 그야말로 최악이다.

천천히 거리를 걷는 미아. 그 순간 미아의 귀에 파고드는 재즈 선율. 미아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의 문을 연다. 어두운 조명 아래, 한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미아는 그 남자를 쳐다본다. “그래, 그 남자야. 고가 도로에서 나에게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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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은 재즈 피아니스트. 지금은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의 기호에 맞춰 부드러운 팝이나 소품을 연주하는 신세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레스토랑을 차려 마음껏 재즈를 연주하겠다는. 그는 순수하고 열정 넘치는 재즈가 자꾸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자신만이라도 재즈 본연의 아름답고 황홀한 멜로디를 지키고 싶어 한다. 레스토랑 사장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세바스찬에게 ‘징글벨’ 캐롤을 연주하라 한다. 영혼 없이 건반을 치는 세바스찬. 그러다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프리 재즈를 연주한다. 세바스찬의 손가락은 건반 위를 춤추고 세바스찬은 자신이 내는 소리에 도취된다. 연주가 끝나자 레스토랑은 조용하다. 세바스찬 앞에 선 사장 시몬스. 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세바스찬에게 말한다. “세바스찬, 넌 해고야.”

“음~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요.”

“그래, 나도 레스토랑을 꾸며 놓은 것들 보여서 알아. 새해엔 잘 살아 봐.”

▶연속된 도전과 실패, 포기는 없다

세바스찬에게 말을 건네려는 미아. 사장의 해고에 기분이 상한 세바스찬은 미아를 무시하고 레스토랑을 나온다.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이다.

인연은 우연처럼 이어진다. 미아는 야외 파티에 참석한다. 노란색 옷을 입은 미아. 파티장 한 곳에서는 신나는 밴드 연주가 들려온다. ‘아하’의 경쾌한 노래. 미아는 그 곳에서 세바스찬을 발견한다.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노란색 바지를 입고 키보드를 연주하는 세바스찬. 비록 재즈는 아니지만 미아는 그가 은근 반갑다. 세 번째 만남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느낀다. ‘아 저 사람도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구나.’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처음부터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이어주고,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미아와 세바스찬이 갖고 있는 ‘꿈’이다.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열심히 발을 내딛는 서로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너’를 응원한다.

“세바스찬, 내가 오디션에서 매번 떨어지는 거, 어쩌면 내가 못하는 거일 수도 있어.”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못해.”

“넌 충분히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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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닐 수도 있다고. 내가 그렇고 그런 걸 원하는 사람 중에 하나는 아닐까? 허황된 꿈이나 꾸는. 내 맘 알까?” 미아와 세바스찬은 그리피스 천문대를 찾는다. 어두운 밤, 발 아래로 LA의 반짝이는 야경이 펼쳐지고 야외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끌림, 그것을 밀어내는 또 하나의 마음을 춤과 노래로 표현한다. 아름다운 밤, 그야말로 ‘A Lovely Night’이다.

“태양은 지고 아무런 빛도 없네. 도시의 은색 빛은 바다로 뻗어 나갔지.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풍경을 만났어.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너와 나라는 것이 참 안타깝네. 다른 남자와 여자였다면, 붉고 노랗게 소용돌이치는 이 하늘을 좋아했겠지. 그런데 여기엔 너와 나뿐인데 우린 아무 감정 없네. 우린 절대 잘될 수 없어, 넌 내 타입이 아니야. 안 그래?

마음에서 사랑의 불꽃이 튀지 않아. 이 사랑스러운 밤이 아깝네. 여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넌 말했지. 그런데 확실한 것이 있어. 그건 내가 결정해. 너의 결정은 뭐야? 폴리에스테르 정장을 입은 네가 귀엽긴 하지만. 이거, 울이야. 그래 맞아.

난 너한테 반하지 않았어. 어쩌면 이게 널 매료시킬지 몰라. 하이힐을 신지 않은 여자나, 로맨스를 느끼는 여자에게는. 근데 난 솔직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아, 그래?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정도도 아닐지 몰라. 알게 돼서 다행이군. 나랑 생각이 같구나. 그래. 이 사랑스러운 밤만 아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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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는 계속되는 오디션 낙방에 실망하고, 세바스찬은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한다. 친구 키이스가 자신의 밴드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세바스찬은 거절한다. 안정된 수입, 적당한 인기, 성공이 보장된 밴드의 키보디스트가 된다는 건 순수 재즈를 버려야 한다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재즈가 ‘별로’라는 미아에게 세바스찬을 열심히 재즈를 설명하고 들려준다. “나는 재즈는 시끄럽고 좀 듣기 불편한 것 같아.”

“그래? 원래 재즈는 충돌이 있고 또 타협하는 거야. 매번 새롭고 매일 밤 새것이 탄생해. 무척 흥미로운 것이 재즈라고.”

점차 재즈가 좋아지는 미아, 아마도 세바스찬에 끌리는 마음일 것이다. 세바스찬은 오랜 시간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미아의 순수한 마음에 끌린다.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을 보자고 제안한다. 극장, 기다리는 세바스찬. 그 시간 미아는 적당히 속물이지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남자 친구와 고급 레스토랑에 있다. 남자 친구와 그의 친구 커플은 고상하면서도 우아하게 영화, 극장의 저급함을 얘기한다. 미아는 그 순간, 세바스찬에게 가겠다고 마음먹고 레스토랑을 나와 극장으로 뛰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미아, 그녀에게 쏟아지는 빛, 눈이 부신 미아는 잠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영상을 온몸으로 받으며 세바스찬을 찾는다. 세바스찬은 스크린 앞에,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서 있는 미아를 쳐다본다. 사랑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세바스찬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키이스 밴드에 들어간다. 밴드는 인기를 얻는다. 돈도 벌고, 음반도 내고 심지어 투어에 인터뷰도 한다. 세바스찬은 “그래 어쩔 수 없어. 나와 미아를 위해 살아야 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미아에게 “너의 이야기를 담은 대본을 써 봐”라고 조언한다. 미아는 동의한다. “그래, 이제부터 오디션은 때려치우고 새로운 역사를 써야겠어.”

일인극 대본을 완성한 미아, 세바스찬에게 대본을 읽어 보라고 한다.

“세바스찬,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깟 사람들.”

“넌 항상 그렇게 말하더라!”

“미아, 왜냐하면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거든.”

미아는 세바스찬의 조언대로 일인극 대본을 쓰고, 소극장을 빌리고, 첫 공연을 한다. 하지만 공연은 그야말로 ‘폭망’한다. 객석에는 드문드문 관객이 앉아 “지루해, 언제 끝나지, 괜히 들어왔잖아”라고 얼굴로 말한다. 게다가 세바스찬은 밴드 공연 때문에 오지도 않았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미아. 세바스찬은 그녀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고 ‘서프라이즈’를 벌인다. 서로를 위로하는 분위기로 시작한 식사 자리였지만, 결국 다툼으로 마무리된다.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넌 레스토랑을 차려서 재즈를 연주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뭐야? 밴드를 따라다니며 네가 하고 싶지도 않은 연주를 하고 있어.” “무슨 소리야. 이게 다 무엇을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인데. 난 현실과 타협했을 뿐이야.”

미아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미아는 세바스찬을 나무랐지만 어쩌면 이는 오디션에 떨어지는 자신을 질책한 것일 수도 있다. 미아가 떠난 밤, 전화 벨이 울린다. 전화기에서는 미아의 일인극을 보고 그녀를 캐스팅하고 싶으니 오디션에 참가하라는 할리우드 제작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세바스찬은 미아를 찾아 간다. 미아에게 오디션 소식을 알려주는 세바스찬.

“재능은 없는데 열정만 가득한 사람들 있잖아.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나 봐. 그런데 내 집은 어떻게 찾았어?”

“네가 말했잖아.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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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한다면? 미아는 오디션에 참가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쓴 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진짜 오디션(Audition)’을 준비한 것이다. 미아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일순 정적에 휩싸이고 미아는 마치 큰 무대에 선 주인공처럼 노래한다.

“내 이모는 파리에서 산 적이 있어요. 이모는 집에 오면 우리한테 온갖 애기들을 했어요. 외국을 다니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 한번은 이모가 강에 뛰어 들었대요, 맨발로. 그녀는 몸을 던져요. 아래도 보지 않고 센 강으로 뛰어들었죠. 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기침을 한 달간 해야 했지만 다시 하래도 똑같이 할 거라고 했어요. 여기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록 바보 같아 보이는 그들이지만. 여기 아파하는 마음들을 위하여.”

오디션이 끝나고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우리 다시 만나는 거야?”라고 묻는다. 세바스찬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이런 말 저런 말을 한다. 미아도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잘 안다. 서로의 꿈을 향해 사랑을 잠시 포기하자고.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말한다. “세바스찬, 난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사랑할 거야’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사실 ‘지독한 이별 통보’다. 두 사람은 헤어진다.

미아는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렇게 꿈을 이루었다. 인기도 얻고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 매일 오디션장을 쫓아다니며 대사 한 줄 겨우 외우던 미아가 그야말로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스타가 된 것이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미아는 여전히 바쁘고, 세바스찬은 미아를 생각한다. 해는 지고 가로등이 하나씩 들어오는 해변 선착장을 걸으며 세바스찬은 미아를, 자신의 꿈을, 열정을 생각한다. ‘스타들의 도시, LA, 할리우드 그리고 라라랜드’를 생각하며 나직이 노래한다. ‘City of Star’.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빛나고 있는 거니? 별들의 도시여.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누가 알까. 네가 처음 안겼던 순간부터 느꼈다는 걸. 바로 지금, 우리의 꿈이, 마침내 이루어졌어. 모두가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바 안에서도, 그리고 사람이 가득한 레스토랑의 담배 연기 속에서도, 바로 사랑이야. 그래, 우리가 찾아 헤매는 건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이야. 떨림, 시선, 손길, 몸짓, 온 하늘을 밝혀 줄 누군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날 어지럽게 해. 목소리가 들려, 난 여기 있을 거고 넌 괜찮을 거야. 내가 곧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 해도 상관없어. 바라는 건 지금 이 미칠 듯한 감정뿐이니까.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빛나고 있는 거니? 네가 이처럼 밝게 빛난 적이 없었어.”

겨울. 미아는 차가 너무 막히자 내려서 걷는다. 미아의 눈에 재즈바의 네온사인이 들어온다. 미아는 재즈바 문을 연다. 익숙한 선율, 눈에 익은 모습의 피아니스트, 바로 세바스찬이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본다. 그리고 두 사람만의 세상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아름다운 광경, 사랑스런 두 사람, 행복한 미아와 세바스찬. ‘그래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미소를 보이는 미아와 세바스찬. ‘그래 너는 네 꿈을 이루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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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바치는 송가 영화 ‘위플래시’에서 재즈 드러머의 격정적인 모습을 연출했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 그의 두 번째 작품이 바로 ‘라라랜드’다. 이 영화는 꿈과 사랑, 열정과 희망이 가득한 아름다운 뮤지컬이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 서로의 무대를 완성해 가는 배우 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사랑과 꿈을 하나로 묶어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영화는 어쩌면 꿈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LA에 바치는 송가’다.

상황과 절묘하게 매칭되는 음악, 활기차고 아름다운 춤, 위대한 화가 자연이 빚어낸 LA의 낮과 밤, 스크린을 튀어나올 것 같은 색채감이 어우러져 미아와 세바스찬의 빛나지만 길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역시 화면에 남김없이 담아냈다. 영화는 기술적으로도 전성기를 구가했던 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이 많이 사용하던 2.55: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로 촬영해 할리우드와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는 물론 그 시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노래 혹은 시 같은 ‘라라랜드’는 LA가 상징하는 스타, 즉 꿈과 그 꿈을 향해 뛰어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꿈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외피는 황홀한 매력과 감정에 대한 서정시지만 속은 근본적으로 비극이다. 영화는 사랑과 꿈,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성취하는 것은, 혹은 그 자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랑을 위해서는 꿈을 놓아야 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외면하는 냉정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을까? 그저 영화인데 ‘해피 엔딩’을 주저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의 끝이 없는 욕심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영화는 미아와 세바스찬, 꿈꾸는 이들을 통해 ‘만만치 않은 세상’ ‘다 가질 수 없는 욕망의 저울추’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수없이 많은 의미와 복선의 연속이다. 화면이 열리며 펼쳐지는 대규모의 군무 장면에서도 여자는 무대에 대한 갈망을, 남자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표현한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멈칫 출발하지 못하고 있는 미아에게 경적을 울리며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세바스찬. 이 만남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한다. 때로는 힘들어 꿈을 포기하고 싶은 미아에게 세바스찬은 계속 “네 꿈을 향해 가라”고 독려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이유 없는 반항’ 상영관 장면 역시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을 위로한다. 스크린 옆, 문을 열고 들어서는 미아. 그 순간 미아의 몸에 비치는 영화 장면들은, 미아와 영화를 결합시키는 장치다. 이를 통해 미아는 연기에 대한 갈망을, 그것을 지켜보는 세바스찬은 마치 도입부 노래 ‘Another Day of Sun’의 ‘언젠가 그 지루한 마을 구석에서 그 남자가 의자에 몸을 묻고 스크린에서 내 얼굴을 보며 나를 알았노라 회상할 거야’의 완벽한 재연이다.

달콤한 사랑의 순간, 마음을 헤집는 갈등이 교차되며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진다. 그럼에도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묻는다. “나를 다시 만날 거야?” 세바스찬의 완곡한 ‘no’에 미아는 역설적으로 대답한다. “그래, 난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고. 이 말이 들리는 순간, 그것은 사랑을 지속하자는 약속이 아니다.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꿈처럼, 이들의 사랑도 불완전체다. 그래서, 미아는 ‘사랑하겠다’는 말로 이별을 대신 한다.

시간은 완벽하게 흐른다. 우연히 문을 연 재즈바. 서로의 꿈을 성취한 두 사람의 조우. 아무런 말도, 몸짓도 없지만 미아와 세바스찬은 다섯 계절을 함께 보내며 만들어 낸 서로의 꿈에 진정한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상상한다. ‘너와 내가 그때 사랑을 선택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더 사랑했을까, 꿈은 잡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마음은 여전히 꿈을 향해 있지만 세바스찬은 밴드를 따라다니며 그저 돈벌이로 음악을 연주하고, 미아는 여전히 오디션을 보거나 혹은 단역 배우로 갈증을 채우고 있었을까. 그래서 두 사람의 미소에는 5년의 시간, 노력, 열정에 대한 박수가 담겨 있다.

이 영화를 ‘새드 엔딩’이라고 말해야 하나. 그것은 보는 관점이다. 이 영화는 ‘꿈과 열정’에 대한 아름다운 관찰기다. 사랑을 주제로 본다면 분명 ‘새드 엔딩’이지만 꿈의 성취라는 시각에서는 ‘해피 엔딩’인 셈이다.

21세기에 재연된 20세기적 장르 뮤지컬 ‘라라랜드’는 할리우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랑은 비를 타고’ ‘금발은 신사를 좋아해’ ‘카사블랑카’ 등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전성기의 작품을 재연하고, 또한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을 통해 당시를 추억한다. 이 모두가 할리우드에 대한 존경이다. 이는 클래식을 현재에 등장시키기 위해 가장 현대적인 기법을 쓰면서도 장르, 연기, 조명, 대본, 촬영 등에서 클래식의 문법을 지키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미아와 세바스찬이 그토록 바라는 꿈은 과연 무엇일까. 배우가 되는 것, 스타가 되는 것,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 다 맞다. 하지만 정작 미아와 세바스찬이 꿈꾸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이 배우고 연주자며 그 꿈의 최종 목표가 바로 미아는 할리우드고,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카페가 필요했던 것뿐이다.

제목 ‘라라랜드’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꿈을 찾고 실현하는 곳, 또한 ‘천사의 도시’인 LA다. 왜 LA일까. 그곳에는 거대한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꿈의 공장, 할리우드 역사학적으로 영화의 시작은 1895년 뤼미에르 형제로 본다. 하지만 1891년 대서양 건너 뉴욕에서는 천재 에디슨이 필름 영사기의 원형 같은 키네토스코프를 개발하여 개인 장난감처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에디슨은 무성, 유성 영화 개발에도 뛰어들어 영화의 기술적 발전을 도모했다. 에디슨은 수없이 많은 기계와 기술을 발명했다. 백열전구, 축음기 등 인류사에 기록될 그의 ‘발명록’에는 키네토스코프도 올라 있다. 에디슨은 이 모든 기술적 성취를 보호했고 영화 제작자들은 에디슨과의 마찰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그들은 결심했다. “그래, 에디슨 없는 곳에서 영화를 만들자!”

‘영화 러시’가 이루어졌다. 서부로, 서부로. 그들이 찾은 곳이 바로 로스앤젤레스다. 1년 내내 온화하고, 맑고 습도 없는 날씨, 호수, 계곡, 사계절 눈이 있는 산, 사막, 해변, 숲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천혜의 촬영소였다. 그들은 이곳을 ‘신성한 숲’ 즉 ‘Holy woods’로 불렀고 이후 ‘할리우드 Hollywood’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13km에 위치한 할리우드는 1920년대부터 대형 스튜디오들이 자리 잡으면서 영화의 메카가 되었다. 할리우드는 세계 최대의 시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 해 약 800편의 영화가 약 4만3000개의 극장에서 상영되며 15억 명이 관람한다. 이를 바탕으로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들은 기획하고, 만들고, 배급하고, 상영하는 수직적 제작 유통 시스템을 구축했다.

할리우드의 전성기는 유성 영화 발견 이후인 1930대부터다. 이때부터 스튜디오들은 대형 제작물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영화는 대체 불가의 오락이자 문화 그리고 예술로서 자리를 잡았다. 흥행, 즉 돈이 되자 자본이 몰려들었다. 할리우드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이에 부수적인 스타 시스템, 스튜디오 시스템 등 우리가 흔히 통칭하는 ‘할리우드 방식’이 영화의 교범처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더구나 제1차 세계 대전은 할리우드에게 축복이었다. 당시 영화의 본향처럼 행세하던 유럽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면서 유럽이 자본, 인력, 기술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처럼 영화 역시 할리우드가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할리우드를 ‘영화, 스타’와 동일시한다. 그곳에서 인정받는 것은 글로벌적 효능의 증명서다. 할리우드는 ‘과거’를 묻지 않았다. 미국 동부를 지배하는 엄격한 유럽식 신분제는 이곳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단역 배우도, 웨이터도, 댄서 출신도 재능과 스타성을 인정받으면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할리우드의 포용성이다.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할리우드, 로스앤젤레스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신선한 젊음이 넘치는 도시가 된 것이다.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 이들의 꿈이 영화가 아닌 21세기 현실에도 통용되는지는 수치로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존재하는 한 제2의 미아, 세바스찬은 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록 할리우드 제국주의적 패권의 양대 도구 즉 ‘항공모함과 영화’의 한 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2시간 동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상상의 결정체 영화는, 죄가 없다. 꿈, 그것은 꿈꾸는 자만이 갖는 특권이자 젊음의 도전이다. 아름다운 것이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Daum영화]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1호 (18.10.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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