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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펭귄 하이웨이’ 엉뚱한 모험으로 가는 소년의 하이웨이

입력 : 
2018-10-31 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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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는 펭귄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때 지나가는 루트를 뜻한다. 여름 방학을 맞은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 펭귄 떼가 등장한다는 내용의 영화 ‘펭귄 하이웨이’는 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저자 모리미 토미히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평균 연령 20대의 스튜디오 콜로리도의 젊은 작화로 완성된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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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똑해지고 훌륭해지고 있지만, 자랑 따위 하지 않는 ‘인격’까지 갖췄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소년 아오야마의 독백으로 영화는시작된다. 친구와 동네 수로에 흐르는 물의 원천을 탐사하며 꼬박꼬박 관찰 일기를 쓰는 아오야마는 ‘지금도 멋진데 3888일 후 어른이 되면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는, 잔망스러운 소년이다. 치과에 근무하는 누나와 그녀의 가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아오야마의 동네에 어느 날 갑자기 펭귄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가 하늘 위로 던진 콜라 캔이 펭귄으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누나의 능력이 밝혀지면 누나가 실험 대상이 되어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될까 우려한 아오야마는 비밀을 발설하지 않고 혼자만의 연구에 착수한다. 그러다 숲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한 공 모양의 물 덩어리(바다)를 만나게 된 아오야마는 누나를 지키기 위해, 또 바다가 동네를 덮치지 않도록 마을을 지키고 펭귄 떼와 바다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마을에 나타난 펭귄, 여름 방학과 함께 맞이한 반짝거리는 화면, 첫사랑 누나와 기묘한 탐험까지, 설정만 보면 스튜디오 지브리풍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아이와 미지의 존재 간 신비로운 조우가 이루어지지만 어른들의 개입으로 환상의 세계는 파괴되고, 위기에 놓인 마을을 구하기 위해 또 다시 아이들이 나선다는 ET류의 ‘소년 성장담’이 애니메이션을 타고 흐른다. 갑자기 나타난 펭귄 떼와 그 펭귄을 잡아먹는 사나운 괴수의 등장, 영원히 이어져 있는 수로와 초원 한가운데 등장한 바다는 지구 온난화와 대자연의 몰락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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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소년의 성장담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기보다는 호기심을 잃은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왜 하필 펭귄이? 어떤 원리로 물건들이 펭귄으로 변하는 거지? 바다는 왜 등장한 거지?’ 이런 의문을 계속 갖고 영화를 본다면 지루할 수도 있다. 미래의 대통령과 탐험가가 반마다 한 명씩은 있고, 성장통이 끝나지 않으며, 연상의 이성에게 꾸준한 호기심을 느끼던 유년 시절. 세상의 끝까지 걸어가면 비밀을 풀 수 있을 듯 했던 그때, 우리 각자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양 기록하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동네 탐험에 나선 과학자가 아니었던가. 초원 위에 거대한 구슬처럼 떠 있는 ‘절로 움직이는 바다’가 자연계고 펭귄을 만드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치과 누나’가 조물주라면, 바다 속에 인간이 만든 탐사 로봇 장난감을 집어넣는 건 ‘인간의 영향력’을 뜻하는 게 아닐까. 펭귄과 소년의 우정담이나 모험보다는 동네 누나를 좋아하는 소년의 짝사랑과 조금 귀여운 SF 판타지로 보면 되겠다. “펭귄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만국 공통이라 생각한다”는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의 말처럼 애니메이션 속 펭귄이 날아다니고, 물 속을 헤엄치고, 사람들을 옮기는 장면과 색감은 그 자체로 힐링을 선사한다. 후반에는 에피소드 별로 툭툭 끊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서사, 11살 남자-성인 여자 사이의 선정적일 수 있는 관계 묘사도 논란을 낳았다. 다만 작화나 색감에서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실제 초등학생을 취재하거나 아역 배우에게 연기를 시켜 보며 아이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리얼하게 살려 낸 작화는 지브리 스튜디오 캐릭터 디자이너 출신 아라이 요지로의 솜씨. 대학 시절부터 팬층을 착실히 쌓아 지브리를 잇는 차세대 주자로 주목 받아 온 이시다 히로야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일본의 인기 여배우 키타 카나가 아오야마 소년을, 아오이 유우가 치과 누나 목소리를 맡았다. 일본의 국민가수 우타다 히카루가 원작 소설을 읽고 오직 영화만을 위한 OST를 완성했다. 118분. [글 최재민 사진 국외자들, NEW]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52호 (18.11.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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