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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 전염 막을 대책 없나-한미·한일 통화스와프 복원 시급해 거시건전성 3종 세트로 자금 관리

  • 박수호,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8.10.26 09:54:33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8년 9월 15일 미국 대표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됐다.

한국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1100원대에서 1600원대로 치솟았다. 2007년 2600억달러 수준이던 한국 외환보유액은 이듬해 2000억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외국인 주식 자금 역시 170조원 가까이 빠져나갔다. 이때 정부가 선택한 전략이 통화스와프였다. 통화스와프란 국가 간에 서로 외환을 맞바꿔 빌려주기로 하는 협정을 말한다.

당시 위기를 맞은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300억달러 규모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그러자 달러 유동성 경색에 대한 우려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미국 중앙은행이 보증을 섰다는 사실이 알려진 덕분이다.

IMF(국제통화기금)가 2016년 펴낸 보고서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타당성’은, 통화스와프가 주요 신흥국이 위기 시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 조달 수단 중 가장 유용하다고 적시한다.

신흥국 위기 전염을 막기 위해 전문가들은 2008년처럼 통화스와프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한국은 중국, 스위스, 캐나다, 호주, CMIM(치앙마이이니셔티브)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통화스와프 규모나 체결국이 크고 많아졌다. 하지만 전통의 우방 미국, 일본과는 각각 2010년, 2015년 계약이 만료된 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찜찜한 대목이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한국이 신흥국 금융위기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한미, 한일 통화스와프를 서둘러 체결해놓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안전판 필수

▷개인파산·면책 등 퇴로 필요

통화스와프 외에도 각종 안전판을 마련해놔야 한다는 지적이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거시건전성 3종 세트(외환건전성 부담금,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 강화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10년 전 글로벌 외환위기 때 한국이 극복한 비결로 꼽은 사안이다. 선물환포지션 규제는 선물 외화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이 은행 자기자본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는 비예금성 외화 부채에 일정 비율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당장 위기가 온 것은 아니지만 사전 대비 차원에서 다시 이 부분을 강화하면서 외국인 자금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잘 갖춰져 있다 해도 일순간 500억~1000억달러가 빠져나가면 일시적으로 휘청일 수 있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급격한 외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서민금융 안전판 마련 대비책도 제시됐다. 최근 신흥국 위기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시장금리가 올라갔는데 이는 제2금융권을 이용하는 서민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앞서 법정 최고 이자율을 27.9%에서 24%로 인하했지만 시장 반응은 마냥 환영 일색이 아니다. 대부업체가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심사를 강화하게 되면서 제2금융권 문턱도 못 넘는 서민은 사채 시장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동근 원장은 “시중금리가 올랐을 때 서민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는 만큼 개인파산, 면책 등 이들의 퇴로를 열어줄 수 있는 다양한 대비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수출처 다변화가 답

▷신흥국 디지털 혁신 도와야

수출 품목,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 수출금액은 4504억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늘었다. 올해 연간 수출액이 처음으로 6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총 금액만 놓고 보면 수출 실적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1~9월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21.2%나 된다. 2016년 12.6%에서 가파르게 올랐다. 반도체 시장 경기가 꺾이면 한국 수출이 타격을 받고 경제 전체가 크게 휘청일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약점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과 미국, 베트남, 홍콩, 일본 등 상위 5개국이 차지한 비율은 56.5%다. 2008년 47.9%에 비해 8.6%포인트 늘었다. 특정 국가의 정치, 외교, 경제 상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인해 중국을 주요 수출처로 둔 상당수 한국 기업 실적이 급락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도널드 존스턴 전 OECD 사무총장은 “이미 무역을 하고 있는 나라와 교역량을 늘리는 동시에 아직 수출을 하지 않거나 수출량이 적은 국가의 문을 두드려 시장을 넓혀야 한다. 안정적인 수출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윤제성 뉴욕생명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도 “특정 산업이나 수출 시장에 치중하지 않고 품목과 국가를 다각화한다면 신흥국 자본유출로부터 오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대외 변수로부터 한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외화표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어하는 등 재정건전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참고로 윤제성 CIO가 몸담고 있는 뉴욕생명자산운용은 미국 3대 생명보험사로 꼽히는 뉴욕라이프 자회사로 운용자산 규모가 300조원가량이다.

디지털 기술 혁신을 이끌어 신흥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눈길을 끈다. 글로벌물류효율화연합(GCEL)은 지난 35년간 세계 총인구에서 고소득 국가 국민이 차지하는 비율이 22%에서 15%로 줄었다고 추산한다. 선진국 상당수는 출산율이 낮고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고 인구도 젊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아 구매력이 약하다. 글로벌 시장을 구성하는 인구의 평균 구매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존스턴 전 사무총장은 “한국은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다. 한국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신흥국 기업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세계 시장은 현재보다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신흥국 인구의 구매력은 개선될 것이다. 이는 글로벌 시장 내 한국 제품 수요 증가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0호 (2018.10.24~10.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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