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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직격탄 된 신흥국 금융위기…車·부품·철강 수출 비중 57% 신흥국行 대체시장 발굴 힘들고 換리스크 우려 커

  •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8.10.26 09:58:02
한국 경제위기설이 또다시 세간에 회자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재등장한 것. 이번에는 자동차, 조선 등 주력 산업 후퇴에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금융위기가 맞물려 위기론의 진폭이 제법 크다. 신흥국발(發) 금융위기가 한국의 실물경제로까지 영향을 미칠지 우려가 크다.

글로벌 긴축정책에서 촉발된 신흥국 도미노 금융위기 우려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 때 글로벌 금융시장은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유동성을 대거 풀었고 이 유동성은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 거품을 만들어냈다.

이후 경기 과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줄이기 시작하자 전 세계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게 신흥국 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결과적으로 일부 신흥국 통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신흥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도 기로에 섰다.

이미 신흥국 수출 전선에 경고등이 켜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신흥국 중 경상수지 적자국의 통화가 1% 절하될 경우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등의 국가에서 신흥국으로 수출하는 규모가 6개월 후 최대 0.6%까지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경상수지 적자국은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라질, 멕시코, 체코, 헝가리, 폴란드, 남아공, 터키 등 10개국이다.

특히 한국은 수출 다변화 전략 차원에서 신흥국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95년 35.6%였던 신흥국 수출 비중은 2005년 처음으로 50%를 넘은 이후 꾸준히 확대됐다. 지난해 한국의 신흥국 수출 비중은 57.4%로 선진국(42.6%)을 웃돈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10년간 중국을 제외한 151개 신흥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9%에서 23.7%로 크게 상승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신흥국 경기에 한국 수출 실적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터키, 이집트, 미얀마, 남아공, 우크라이나, 인도, 폴란드, 필리핀 등 고위험군 12개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은 11.1%로 조사됐다.

▶자동차 산업 실적 내리막길

업황 악화 부품업체로 전이

워크아웃·법정관리 잇달아

실제 최근 한국의 신흥국 수출액(전년 대비) 급감 현상은 두드러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이른바 메르코수르(남미 4개국 공동 시장) 국가로의 수출액은 지난해 6월 5억5897만달러에서 올해 6월 4억7591만달러로 약 15% 감소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5억5692만달러였으나 올 7월 4억2853만달러로 23% 급감했다. 정귀일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연구위원은 “경상수지가 적자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수준이 높은 신흥 수출 시장에 대해서는 주문 취소·감소, 재고 처리 등에 대비하는 한편 시장을 다변화해 수출 변동 리스크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신흥국 주력 수출 품목이 철강 제품, 자동차, 자동차 부품 등이란 점도 예사롭지 않다. 자동차 산업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업계 맏형 격인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7%나 줄었다. 영업이익률은 1.9%포인트 하락한 3.5%로 떨어졌다. 2016년 5.5%, 지난해 4.7%와 비교하면 수익성 악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3분기에도 수익성이 악화해 영업이익 1조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차 업체의 실적 악화는 부품업체로 빠르게 전이됐다. 산업연구원 조사 결과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중견 부품업체 100곳 가운데 31곳이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를 냈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매출액이 3.8% 줄었고, 영업이익은 반 토막 났다.

이미 지난 6월 현대차 1차 협력업체인 리한이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신청한 데 이어 금문산업, 이원솔루텍 등이 잇따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 9월에는 중견 부품업체 다이나맥이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문제는 신흥국을 대체할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과 중국은 보호무역주의 심화로 갈등을 빚고 있어 수출을 늘리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시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견제로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신흥국 침체로 수출이 줄어들면 이를 대체할 시장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우리 기업들이 환율 변동성에 적절히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는 점도 신흥국 위기가 고스란히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무역협회가 지난 2016년 수출 실적 50만달러 이상인 5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출기업 58.4%가 ‘환리스크를 전혀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글로벌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수출대금을 회수할 때 수익 변동성이 커져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진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반도체에 쏠린 취약한 수출구조 아래서는 신흥국 금융위기의 악영향이 증폭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수출한 반도체는 997억1000만달러로 1000억달러에 육박했다. 반도체 수출은 전체 수출액(5736억9000만달러)의 17.4%를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한계기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 따르면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인 기업 비율이 지난해 30.9%에 달했다.

10곳 중 3곳이 영업활동으로 돈을 못 벌고 있는 셈이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금융비용)이 1 미만,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중소기업은 44.1%다.

최근 한국은행 통계에서도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3112곳으로 전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법인(외감기업)의 13.7%에 육박했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산업이 꺾이고 신흥국 수출마저 둔화된다면 한국 경제가 한 방에 흔들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흥국 투자 지금이 바닥?

국내 ‘팔아라’ vs 외국계 IB ‘선진국보다 매력적’

신흥국 투자 전망을 두고 국내 증권사와 외국계 간 시각이 엇갈린다. 국내사들은 보수적으로 돌아선 반면, 외국계 IB에서는 바닥론이 제기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11일 기준 국내에 설정된 해외 주식형 펀드의 순자산은 20조7443억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6156억원 급감하며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감소 폭 기준으로는 지난 2월 6일 미국 금리 인상 우려로 6872억원이 감소한 이후 두 번째다. 전균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미중 무역갈등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금융시장 약세 우려에 미국 국채금리 급등까지 겹친 결과”라고 진단했다.

신흥국 펀드 수익률은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16일까지 아시아신흥국주식펀드 수익률은 -16%를 기록 중이다. 사정이 그나마 나은 북미 주식형 펀드만 플러스 수익률을 냈을 뿐 인도, 중국, 동남아 등 대부분 신흥국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일제히 보수적 대응을 권고하고 나섰다. 증시가 급락할 때마다 관성적으로 ‘저가 매수’ ‘바닥론’을 외칠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중장기적으로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 가운데 선진국과 성장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가을의 기술적 반등을 신흥국 위험자산에서 한 발 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신흥시장 반등은 제한적인 기술적 반등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전략적으로는 반등 시 신흥시장에 대한 선별적인 이익 실현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비중을 낮추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보탰다.

반면 골드만삭스, JP모간, UBS,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증권사들은 ‘지금이 바닥’이라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끈다. 이들은 신흥국 증시가 워낙 많이 떨어져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높아졌고, 기업 실적 개선 속도가 선진국보다 빠를 것이란 점 등을 주목한다.

골드만삭스는 신흥국 증시 중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증시가 4분기에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티머시 모 골드만삭스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석연구원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상장사의 내년 영업이익 증가율 전망치(올해 대비 12%)가 선진국보다 높은 것도 매력적”이라고 주장했다. JP모간도 10월 초 신흥국 증시가 앞으로 6개월 내 15%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9월 말 모건스탠리는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 의견을 ‘부정적’에서 ‘중립’으로 올려 잡았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0호 (2018.10.24~10.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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