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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에 글로벌 금융시장 패닉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8.10.26 10:02:30
아르헨티나에 이어 파키스탄까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신흥국 금융위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치솟는 데다 미중 무역전쟁, 미국 금리 인상 악재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투자금이 신흥시장에서 대거 이탈하는 분위기다.

대외 충격에 취약한 한국도 안심할 때는 아니다. 코스피, 코스닥지수가 연일 하락하는 데다 환율도 불안한 모습이라 정부는 대책 마련에 급급한 모습이다. 신흥국 금융위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슬기롭게 대처할 방법은 없을까.

아르헨 이어 파키스탄 구제금융 요청

신흥국 자금유출 도미노에 한국 흔들


“신흥국이 받는 압박 때문에 급격한 환율 변동, 심각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먹는 신흥국 자본유출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달러 대비 신흥국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달러 부채 상환 부담이 늘고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가 신흥국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IMF는 최근 배포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유입된 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하는 매우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나타날 수 있다. 자본 역류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나타났던 것과 맞먹는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IMF는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 자본유출 규모가 무려 10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13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신흥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4.9%에서 4.7%로, 내년 전망은 5.1%에서 4.7%로 내려 잡았다.

신흥국 금융위기 우려가 커진 것은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등이 줄줄이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영향이 크다.

블룸버그,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아사드 우마르 파키스탄 재무장관은 최근 IMF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재정,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커진 데다 발전소, 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상태다. 파키스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6.6%(2017년 7월~2018년 6월 기준)에 달한다. 지난 9월 기준 외환보유액도 84억달러에 그쳐 전년 대비 40% 줄었다. 올해 말이면 잔액이 바닥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파키스탄의 구제금융 규모가 120억달러(약 13조5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IMF “신흥국 금융위기급 자본유출 우려”

신흥국 통화가치 곤두박질, 韓증시 폭락

파키스탄의 구제금융 신청은 중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중국은 파키스탄에서 진행 중인 620억달러 규모의 도로, 발전소, 항구 건설 관련 대규모 채권을 보유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키스탄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며 IMF 자금 지원에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파키스탄 외에 다른 신흥국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 역시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 6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향후 3년간 500억달러의 대기성 차관을 확보했고 최근에는 70억달러를 추가한 상태다. 달러 대비 페소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49.3%(10월 9일 종가 기준)나 폭락했다. 터키 리라화 환율도 같은 기간 37.8%나 떨어졌다. 미국의 철강 고율 관세 부과 등 여파다.

인도네시아도 상황이 좋지 않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지난 10월 8일 장중 달러당 1만5427루피아까지 치솟았다. 인도네시아 환율이 달러당 1만5000루피아를 넘은 것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환율 안정을 위해 지난 5월 이후 다섯 차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경제 여건이 좋던 인도 경제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올 들어 인도 주식, 채권시장에서는 110억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달러 대비 인도 루피화 환율도 지난해 말 대비 13.8% 떨어졌다.

인도 정부는 부랴부랴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달러화 송금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IMF가 인도를 ‘달리는 코끼리’로 묘사하며 올해 경제성장률이 7.4%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상황이 급변한 셈이다. 원유 소비량의 80%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 입장에서는 국제유가 급등이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신흥국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배경은 뭘까. 미국이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다 G2 무역전쟁이 갈수록 격화된 영향이 크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 투자금이 신흥시장을 빠져나가 달러 채권이나 엔화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에 맞선 중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면서 신흥국 통화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중이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금리 인상이 이어진다면 외화 부채가 많은 신흥국 금융 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뿐 아니다. 최근 국제유가까지 치솟으면서 수입단가가 급등해 신흥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양적완화로 신흥국 경제를 지탱해왔지만 빚에 기댄 성장이 결국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흥국 자금유출 우려로 한국 경제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난 10월 11일 코스피지수는 무려 98.94포인트 내린 2129.67로 거래를 마치면서 2200선까지 뚫렸다. 최근 들어 증시가 소폭 회복되기는 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언제든 급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신흥국 금융불안이 당장 한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본다. 이승헌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고 대외 부채 상환 능력도 괜찮은 만큼 신흥국 금융불안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도 크다. 한국은 다른 신흥국보다 기초체력이 탄탄하기는 하지만 수출 위주 경제구조라 대외 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경기 확장세가 서서히 마무리되는 단계라 한국 수출 증가세도 둔화될 우려가 크다. 기업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등 투자 활성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박수호·배준희·나건웅·김기진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0호 (2018.10.24~10.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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