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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장 속 뜨거운 공매도 논란-수수료 장사 국민연금에 비판 쏟아져 외인·기관 공매도에 개미투자자 눈물

  • 명순영,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8.10.31 10:33:38
  • 최종수정 : 2018.11.02 09:56:43
코스피 폭락장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매도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외국인 공매도가 기승을 부리며 ‘멀쩡한’ 국내 대표 기업 주가가 폭락하면서다.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등 국내 대표적인 공적 연기금이 공매도로 1500억원대 수수료를 챙겼다는 사실 역시 개미투자자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공매도 주식 대여를 금지하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폭락해 투자자 손실이 급격히 불어나는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울러 개인투자자에게 기관·외국인과 마찬가지로 공매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주식 하락장에서 공매도를 못 하는 개미들은 위험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韓주식 팔아치우는 외국인

▷삼성전기, 상장 이래 공매도 최대

삼성전기 IR 담당자는 최근 한 달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외국인 공매도가 집중되면서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낮은 가격에 다시 매수해 빌린 주식을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챙기는 투자 기법이다. 쉽게 말해 주가가 떨어져야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악재로 하락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 공매도가 몰린다.

삼성전기는 최근 3년간 크게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려간 알짜기업이다. 실적으로 따지면 주가가 올라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예상 밖 공매도 폭풍에 휘말린 것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공장 계획이 공개된 지난 10월 중순부터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삼성전기 주식 1조원 이상을 순매수하며 ‘러브콜’을 보냈던 외국인이 갑자기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지난 8월까지 적게는 1% 미만, 많아도 15%를 밑돌던 공매도 비중이 20%를 넘어서더니 9월 28일 36.1%까지 치솟았다. 삼성전기 창사 이래 최대치인 83만주가 공매도됐다. 외국인이 한 달 내내 쏟아낸 물량을 기관과 개인이 집중 매수하며 팽팽한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이 와중에 주가가 20% 가까이 하락했다.

다행히 올 연말 매출액 8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서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실적으로 주가는 버텨냈다. 그러나 공매도가 멀쩡한 기업 주가를 한순간에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최근 금융감독원을 통해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증권사별 공매도 거래량과 거래대금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공매도 상위 10개사에 모건스탠리(58조원), 크레디트스위스(46조원), 메릴린치(22조원) 등 외국계 증권사가 7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외국계 증권사가 전체 공매도 시장에서 차지한 거래량과 거래대금 비율은 각각 65%, 60%나 됐다. 증권사당 평균 거래량을 따져보면 해당 기간 국내 증권사는 평균 1억3700만주의 주식을 공매도로 팔았다. 반면 외국계는 4억7700만주로 국내 증권사의 3배가 훨씬 넘었다. 거래대금은 외국계 증권사가 국내 증권사보다 2.7배 많은 116조원이었다.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을 보유한 외국계 증권사가 공매도 시장을 휘젓고 있다는 의혹은 많았지만 개별 증권사 거래량과 거래액이 수치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기는 물론 셀트리온, 기아차, 코스맥스, 아모레G, 하나투어 등도 공매도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종목이다.

게다가 일부 외국계 증권사는 ‘무차입 공매도’로 과징금 처분까지 받았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는 공매도 투자로 국내에서 불법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무차입 공매도를 낸 외국계 금융투자회사 4곳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현대차,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SK증권 등 4개 종목에 대해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

외국계 기관끼리 주식 대차를 통해 공매도하는 경우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당국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식은 이렇다. 외국계 기관 공매도는 ‘주문전용선(DMA·Direct Market Access)’을 통해 이뤄진다. DMA는 기관용 홈트레이딩시스템(HTS). 공매도를 하려는 증권사는 DMA를 통해 공매도 종목과 수량을 기입한다. 추가로 ‘주식 차입 여부와 해당 물량’을 표시해 거래소 매매 주문을 낸다. DMA를 통해 ‘주식 차입’이 표시되면 이를 중개하는 증권사가 확인해야 하지만 차입 없이도 주문을 내주는 식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그간 외국인 불법 공매도는 관행처럼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외국인 공매도 행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에 쏟아지는 비판

▷주가 방어는 못할망정…

이번 공매도 논란에 뭇매를 맞는 곳이 국민연금이다. 국내 대표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을 끌어올리지 못할망정 공매도를 부추겨 오히려 폭락장을 연출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난 2008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10년간 빌려준 주식이 38조원에 달한다. 이 기간 국민연금은 주식 대여 수수료로 1425억원을 챙겼다. 정부가 금융위기 당시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공매도를 막은 2009년을 제외하면 매년 주식을 빌려주고 연평균 142억원을 챙긴 셈이다.

주식 대여가 불법은 아니다. 연기금에 주식 대여를 허용한 취지는 보유주식을 가만히 놀려두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을 내자는 것. 그러나 개인투자자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분노로 가득하다. 국민 노후 종잣돈으로 건강한 주식 투자를 해 수익을 거둬야 할 공적 연기금이 ‘주식 대여 장사’에 매달린다는 이유에서다. 한 개인투자자는 “사실상 공매도 세력에 실탄을 대주는 전당포 역할을 한 셈”이라고 국민연금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를 제외한 국내 다른 연기금인 사학연금, 군인연금, 공무원연금은 주식을 대여하지 않고 있다.

연기금이 빌려준 주식이 실제 공매도에 쓰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주식 대여 시기 등을 감안할 때 적잖은 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됐을 것으로 판단한다. 과거 한미약품 미공개정보 유출 사건 당시 공시가 나기 전 공매도 물량 상당수를 국민연금이 빌려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연금은 주식 대여를 중단하라’는 글에는 이미 수만 명이 서명했다. 결국 김성주 이사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국내 주식 대여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주식 대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한 뒤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한 가운데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전략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연금은 올해 기금 적립액 가운데 국내 투자 비중을 줄이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해외 주식을 늘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내 비중을 줄이겠다고 공식화한 것이 외국인 공매도를 부추겼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주가가 떨어지면 연기금이 저평가 종목 매수에 들어가며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외국인이 섣불리 공매도에 나설 수 없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괜히 공매도에 나섰다가 주가가 반등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국민연금이 아예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겠다고 공표해버리자 외국인이 물 만난 고기처럼 공매도에 나선 것이다. 국민연금의 전략 실수가 심각한 공매도 사태를 불렀다고 본다.” (A운용사 CIO)

국민연금이 주식 대차 시장에서 발을 뺀다고 당장 공매도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난 1~8월 대차시장에서 주식을 가장 많이 빌려준 주체는 외국법인(117조원)으로 국내 연기금(4조3000억원)의 27배에 달한다. 국내 연기금이 대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미미한 상황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개인투자자가 공매도에 더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개인투자자가 공매도에 더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매도 순기능은 없나

▷유동성 높이고 주식시장 신호등 역할

공매도가 개미투자자에게 뭇매를 맞고 있지만 알고 보면 순기능도 많다. 하락장에서 유동성을 높인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가가 하락세일 때에는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방식인 만큼 조정장일 때 오히려 늘어난다. 고평가된 주식이 적정 가격으로 조정되도록 거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순기능 덕분에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거래 방식이다.

지난 2001년 벌어진 엔론 사태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예다. 월가의 저명한 공매도 전문가 짐 채노스 등은 엔론 회계장부가 투명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2000년부터 엔론 주식을 공매도했다. 이후 내부자 고발로 인해 엔론이 15억달러 규모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2001년 말 파산했다. 공매도가 주식시장 신호등 역할을 한 셈이다. 미국 정부가 채노스 주장에 일찌감치 귀를 귀울였다면 분식회계를 더 일찍 적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밖에 미국 종합 산업기기 기업 타이코인터내셔널 역시 회계부정이 드러나기 전 공매도가 늘었다.

시장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도록 돕는 것은 맞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공매도는 무위험 차익거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한 상장기업이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해당 기업 주식을 대규모로 공매도하면 매도 물량이 몰려 주가가 내려간다. 유상증자 신주 발행가격 또한 하락한다. 투자자는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받아 빌린 주식을 갚고 이익을 본다. 카카오가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다. 카카오는 지난 1월 싱가포르에서 1조원 규모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해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 발표 이후 공매도 거래량이 급등했고 16만원 선까지 올랐던 주가는 13만원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이로 인해 카카오 신주 발행가는 계획이 발표된 날의 종가에 비해 12%가량 낮은 가격으로 결정됐다. 자금조달 소식을 호재로 받아들이고 투자를 늘린 개인들만 손해를 본 셈이다.

▶개인투자자 장벽 낮춘다는데

▷투자 여건 크게 나아지지 않을 듯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에 관한 불만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개인투자자가 공매도에 더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개인이 빌릴 수 있는 주식 종목과 수량을 늘리고 주식 대여 서비스에 참여하는 증권사를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증권업계는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반갑다”면서도 “공매도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진다 해도 개인의 투자 여건이 크게 나아질 확률은 낮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실제 개인이 과거에 비해 쉽게 공매도를 할 수 있게 된다 해도 압도적인 자본력과 정보력을 갖춘 기관·외국인 투자자에 비해서는 여전히 불리하다.

무작정 문턱을 낮출 것이 아니라 투자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매도 거래는 절차가 복잡하고 리스크도 크다. 주식을 빌려 판 뒤 예상대로 주가가 빠지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반대로 주가가 급등하면 손실폭이 크다. 기관투자자는 상대적으로 자금 여유가 있어 대부분의 경우 손실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는 자칫 잘못하면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리스크를 인지하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금액을 투자하지 않도록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공매도 논란 잠재우려면

▷인식 개선·불공정거래 단속 강화 시급

공매도 관련 논란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개인투자자 사이에는 공매도가 공공의 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한 증권사 임원은 “개인투자자 상당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공매도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각종 규제가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를 할 때에는 호가를 직전 체결가 이상으로만 제시할 수 있다.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은 어차피 갚아야 하기 때문에 매수 주문을 낼 수밖에 없고 증시 급락을 막아준다”고 설명한다.

국내 주식시장에는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제’가 시행 중이다. 특정 주식의 하루 거래량 20% 이상이 공매도면 과열 종목으로 지정하고 다음 날 하루 동안 공매도를 금지하는 제도다.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규칙이다.

일부 개인투자자가 요구하는 공매도 폐지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김재중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 수단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고도화된다. 공매도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이 같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행동”이라고 전했다. 공매도를 폐지하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한국 주식시장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막상 공매도를 폐지해도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도 무게가 실린다. 특정 종목의 악재가 불거졌을 때 주가 하락폭이 과거에 비해 축소될 수는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 이탈과 더불어 유동성이 떨어지고 증시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개인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2010년 독일이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자 유럽 증시가 하락하고 유로화가 약세를 보였다는 점이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불공정 공매도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새겨들음직하다. 국내에서 금지된 무차입 공매도로 제재를 받은 금융사는 최근 5년간 71곳이나 된다. 무차입 공매도는 사후 적발만 가능해 실제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금융사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처벌 수위도 낮다. 71개 금융사 중 과태료 처분을 받은 곳은 26개사뿐이다. 가장 높게 부과된 과태료 액수도 6000만원에 불과하다. 불법거래를 제대로 단속하고 엄벌하지 않으면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

공매도 대신 개별 주식 선물투자로 눈을 돌려보라는 조언도 존재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별 주식 선물은 공매도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자 방식인데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작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고 팔 때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선물투자는 대차거래 비용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롱쇼트 전략을 활용하는 헤지펀드에 가입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새겨들을 만하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1호 (2018.10.31~1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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