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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산업 활성화하려면 | 美·日·中커녕 동남아보다 못한 한국 先도입 後규제…소비자 편익이 우선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8.11.02 09:35:01
세계 IT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택시를 보기 무척 어렵다. 대형 호텔 앞이나 공항 외에는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곳곳에서 앞 창문에 ‘U’자 표시가 된 자동차만이 눈에 띈다. 우버 차량이다. 설립 후 약 10년 동안 우버는 샌프란시스코 대중교통 체계를 바꿨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택시’란 말 자체가 ‘구시대 유물’로 평가받는다. 우버가 생기면서 기존 택시 기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대부분 우버 기사로 활동하며 돈을 번다.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우버를 받아들이면서 서로 윈윈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카풀 논란이 뜨겁다. 택시업계는 카카오의 카풀 사업에 운행 중단으로 맞서고 있다. 사실 카풀 문제는 단순히 택시업계와 카카오의 갈등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혁신과 현실, 신산업과 기존 산업, 소비자 편익과 소규모 자영업자의 생존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다 확실한 대처와 함께 해외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유럽은 차량 공유 활성화

▷택시 서비스 개선 등 절충안 마련

일본은 카풀이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자동차로 손님을 유상으로 운송해주는 서비스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일본 국토교통성은 유권 해석을 통해 사실상 ‘카풀’을 허용했다. 국토교통성은 “손님이 사례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금전을 지급했다면 유상운송으로 보지 않는다”며 “운송법에 따른 등록이나 허가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당초 승차 공유 서비스에 부정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은 여론 때문이다. 자동차를 소유보다 필요시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택시 수요·공급 불균형 문제 해결과 함께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같은 분위기에 발맞춰 일본 스타트업 ‘아지트’는 승차 공유 서비스 ‘크루’를 출시하고 도쿄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 ‘크루’에서는 승객을 태우고 싶은 운전자와 타고 싶은 손님을 매칭시켜준다. ‘우버식’ 차량 공유 서비스 모델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의 합작회사 ‘디디모빌리티재팬’도 오사카에서 택시 배차 앱을 내놨다.

차량 공유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커지면서 일본 택시업계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무작정 반발하기보다 택시 서비스 개선을 위한 쇄신책을 내놨다. 일본 최대 택시 사업자인 일본교통은 ‘전국택시’ 앱을 통해 택시 배차, 사전 결제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낡은 택시는 교체하고 합승택시나 택시 정기권 등 새로운 서비스를 잇따라 준비 중이다.

일본뿐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승차 공유 서비스를 출시한 ICT(정보통신기술) 기업과 택시업계 갈등을 절충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도입하면서도 정부의 적절한 규제로 기존 사업자와 공생이 가능한 방안을 찾는 모습이다.

핀란드에서는 한국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우버를 교통법까지 개정하며 지난 7월부터 다시 허용했다. 기존 택시 사업자 반발을 고려해 택시요금도 택시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미국과 중국은 일단 신규 서비스를 도입한 후 산업 성장 과정에서 규제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미국에서는 우버 서비스 이후 4년 뒤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다. 중국도 비슷하다. 서비스 출시 이후 정부에서 규제 초안을 만들고 이용자의 요구 사항을 적극 반영했다.

“카카오 카풀을 둘러싸고 내홍이 깊어지는 한국과 달리 일본이나 다른 국가는 전향적으로 나서고 있다. 물론 교통 운송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한쪽은 제도를 보완해줘야 한다. 전통적 개념의 운송 사업자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러 해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 생각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의 합작회사 ‘디디모빌리티재팬’도 오사카에서 택시 배차 앱을 선보였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의 합작회사 ‘디디모빌리티재팬’도 오사카에서 택시 배차 앱을 선보였다.

▶정부 적극적인 중재 필요

▷기존 산업과 공존 방안 찾아야

‘한국 차량 공유 서비스는 동남아보다 못하다?’

차량 공유 서비스만을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한국의 첨단 모빌리티 시장은 그야말로 갈라파고스다. 반면 동남아시아에서 우버의 대항마로 성장한 ‘그랩’은 이미 기업가치가 110억달러를 넘어섰다.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카풀 이용이 편리하다. 그랩 덕분이다.

한국도 카풀 서비스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자가용을 이용한 유상운송은 금지돼 있지만 출퇴근에 한해 예외적으로 카풀을 허용한다. 다만 명확한 시간이 명시돼 있지 않아 서비스 업체들은 자체적인 규정을 활용한다. 결국 갈등은 “카풀을 법적으로 완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보다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법규정 해석의 싸움이다.

지금까지 관련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택시업계 반발로 인해 토종 모빌리티 플랫폼 육성은커녕 고사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는다. 심야버스 스타트업 ‘콜버스’는 국토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 카풀 업체 ‘풀러스’는 서울시의 형사 고발 이후 어쩔 수 없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카풀 갈등에 대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요구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IT경영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카풀을 ‘교통 연결 서비스’라는 새로운 산업 분류로 구분하면서 사업자와 소비자 기준이 명확해졌다”며 “정부가 산업 형태를 정의하고 미비한 법을 개정하는 역할에 나서야 갈등을 줄이면서 동시에 관련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당사자 간 힘겨루기를 넘어 긴 안목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한 채 산업만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존 산업 불안감을 해소하면서도 카풀과 차량 공유를 비롯한 교통 정책에 분명한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생각도 비슷하다.

승차 공유 서비스는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발전하는 분야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만 뒤처질 수 있다. 다만 혁신 산업이 등장하면 당연히 이전 종사자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기존 산업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공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풀에 신고제·허가제를 도입하거나, 택시 기사에게 카풀 운영 우선권을 주는 대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승차 공유를 도입하면서 해당 업체에는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추세다. 승차 공유나 자율주행차량 도입 등 교통 시스템의 변화는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는다. 순차적으로 제도 개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당장 뒤처질 수도 있다. 새 기술이 원활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적 전문성과 전략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카풀 갈등처럼 기존 사업과 신산업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은 다른 분야에서도 계속될 수 있다. 지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혁신적인 서비스는 등장할 수도 있고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이병태 교수는 “정부나 국회는 이해관계자 목소리가 아닌 국민과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당사자 간 갈등 때문에 소비자 권리 문제는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카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되 안전, 보험 등 소비자 후생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1호 (2018.10.31~1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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