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신청 서비스 안내

규제에 꽉 막힌 韓 모빌리티 | 승차공유, 택시업계 ‘몽니’·정부는 외면 美 자율주행 입법 활발…韓 걸음마 단계

  • 배준희, 나건웅 기자
  • 입력 : 2018.11.02 09:40:56
한국 모빌리티 산업이 정부 규제와 기존 업계 반발에 꽉 막혀 허덕이고 있다. 이대로는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도 뒤질 판이다. 모빌리티는 자동차와 IT 산업을 중심으로 복합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척박하기 짝이 없다. 관련 업계와 기업 간 이해관계 대립, 시대착오적인 정부 규제 등에 막혀 공회전만 거듭하는 중이다.

택시업계 반발은 차량 공유 산업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운전자용 앱을 내놓자 택시단체 회원 7만여명이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택시업계 반발은 차량 공유 산업 활성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운전자용 앱을 내놓자 택시단체 회원 7만여명이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카카오 vs 택시업계, 정면 충돌

▷여론 부담 정면돌파 회피한 정부

차량 공유 서비스는 크게 ‘카셰어링(car sharing)’과 ‘라이딩 셰어링(riding sharing)’ 등 2가지로 구분된다.

카셰어링은 내 차를 남에게 빌려주는 서비스다. 라이딩 셰어링은 승차를 공유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국내에서는 쏘카와 그린카 등이 카셰어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단기 렌터카에 더 가까운 형태다. 기존 운송사업자와의 이해 상충 우려가 덜하다 보니 제한적인 성장이기는 해도 국내 카셰어링 시장의 외형은 빠른 속도로 커졌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카셰어링 시장 규모는 2011년 6억원에서 2016년 10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5000억원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라이딩 셰어링 시장은 첩첩산중이다. 법적 규제에 택시업계 반발로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최근 불거진 카카오의 교통 부문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업계 간 갈등이 단적인 예다. 택시 단체 회원 7만여명은 최근 대규모 집회를 열고 ‘불법 카풀앱 영업행위를 즉각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서비스 ‘카카오T카풀’ 출시를 앞두고 기사 모집을 시작한 데 따른 대응이다.

카카오 측과 택시업계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81조 제1항 제1호를 두고 날 선 대립을 빚는다. 이 법은 출퇴근 때 차주가 운송료를 받고 승용차를 운행하거나 차량을 임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법이 정한 출퇴근 시간을 언제로 볼 것인가를 두고 정면충돌했다. 카카오 측은 출퇴근 시간에만 한정된 것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택시업계는 ‘출퇴근 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사실상 24시간 운행이 아니냐’며 비판한다.

명분에서는 카카오 측이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다. 여론조사에서는 카카오 카풀이 ‘시민 편익 증진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웃돈다. 교통 체증 완화, 택시 수급 불균형 해소 등 카카오 측이 내세운 명분에 다수 소비자들이 공감을 표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24일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카풀 논란을 다뤘지만 똑 부러진 결론은 전혀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신교통 서비스를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 방안 마련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호한 말로 쟁점을 피했을 뿐 시기나 방식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쏙 빠졌다.

라이딩 셰어링이 규제와 택시업계 반발로 사업 확장 벽에 부딪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카풀 1위 업체 ‘풀러스’는 네이버·미래에셋 합작펀드와 SK 등으로부터 22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지만 택시업계 반발과 정부 규제로 대표이사 사임과 대규모 구조조정 등 아픔을 겪어야 했다. 렌터카와 대리운전을 결합한 ‘차차크리에이션’도 규제 직격탄을 맞고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종료했다.

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라이딩 셰어링 도입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모빌리티 혁신은 대부분의 승용차를 공유경제 울타리로 엮어야 시너지가 발생한다. 라이딩 셰어링이 활성화돼야 중장기적으로 빅데이터 축적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수진 KDB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차장은 “글로벌 차량 공유 시장은 자동차 제조업체까지 가세하며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지만 국내는 초단기 차량 임대 서비스인 카셰어링 위주로 제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은 법적 규제에 기존 운송업계 반발로 라이드 셰어링 시장 경험 축적이 어려운 상황이라 글로벌 산업 생태계 변화에서 소외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운영 중인 수소충전소는 10여곳에 불과하다. 사진은 충남 내포에 위치한 수소충전소.

국내 운영 중인 수소충전소는 10여곳에 불과하다. 사진은 충남 내포에 위치한 수소충전소.

▶제자리 맴도는 자율주행

▷韓 글로벌 표준화 작업도 소외

한국은 미래 모빌리티 혁신의 한 축을 이루는 자율주행 기술 역시 답보 상태다. 지난 9월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자율주행 특허 경쟁에서 미국 구글이 일본 토요타와 GM·포드·닛산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는 닛케이가 일본 특허 분석회사인 ‘페이턴트리절트’에 의뢰해 지난 7월 말 기준 미국에서 자율주행 특허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다.

1위는 구글 계열 회사인 미국 웨이모로 2815점을 기록했다. 웨이모는 인공지능(AI) 기술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토요타가 2043점으로 2위, GM은 1811점으로 3위, 포드는 1686점으로 4위, 닛산은 1215점으로 5위를 차지했다. 한국 기업은 전체 50위 가운데 35위에 오른 현대차가 유일했다. 현대차는 보유 특허 건수 기준으로는 세계 10위였지만 고급 특허 확보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자율주행 기술의 성숙도가 경쟁국 대비 뒤처지는 것은 대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에 관한 국내 규제는 경쟁국보다 정비 속도가 한참 늦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이동 방식 혁신을 위한 시도가 잇따르는 중이다. 최근 우버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와 애리조나주 피닉스 일부 지역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시범 운영에 나섰다. 자율주행 전문기업 웨이모는 우버보다 한 단계 더 앞섰다. 피닉스시 외곽 챈들러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안전요원도 탑승하지 않은 채 자율주행 미니밴을 시험 운행 중이다.

한국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개혁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자율주행차 관련 입법이 이미 시작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시험 운영을 위한 시행 규칙 정도만 겨우 정비된 상태다. 국내 자율주행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이 필요한데 입법 전 정부 차원에서 법률 개정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국내에서 지난해 말 기준 자율주행차가 겨우 50대 정도 운행된 데 그친 것도 규제 개선이 선행되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외부 요인으로는 글로벌 기술, 관련 인프라의 표준화 작업이 지지부진한 점이 꼽힌다. 자율주행 상용화를 앞당기려면 차량용 반도체(ECU)와 센서 제어 시스템, 차량 내외부 통신, 초정밀 지도 등 ICT나 교통 인프라 확보와 표준화가 시급하다. 하지만 해당 작업이 지연되면서 서비스 표준과 법규를 정확히 반영한 차량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이 작업에도 한국은 한발 빠져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대로는 자동차 OEM 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된다. 자율주행 시대에도 대량생산 수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교통수단을 아우르는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하지 못한다면 2류 회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허남용 국가기술표준원장은 “국제표준화 회의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자율주행차 표준화기구 기술위원회 임원으로 활동하며 자국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정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도 표준화 작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비상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전소 규제에 발목 잡힌 수소차

▷세계 최초 개발 불구 인프라 미비 ‘울상’

모빌리티 혁신 경쟁은 친환경차 시장에서도 뜨겁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수소차다. 유해가스를 전혀 내뿜지 않는 데다 기존 일반 전기차 대비 연료 효율성이 뛰어나다는 장점 덕에 향후 친환경차 시장을 이끌어갈 ‘대세 차’로 평가된다. 하지만 한국 수소차의 현주소는 밝지 않다. 세계 최초로 수소 완성차를 선보였지만 각종 규제 탓에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길 처지다.

수소차는 순수한 물만 배출하고 여타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지 않는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소차 1대는 경유차 2대가 내뿜는 미세먼지를 저감하는 효과가 있다. 현대차에서 내놓은 수소차 ‘넥쏘’는 1회 완전 충전 시 609㎞를 갈 수 있다. 충전에 걸리는 시간은 3분 정도다. 전기차의 일반적인 주행거리는 300㎞ 내외, 완전 충전까지는 3∼4시간이 소요된다.

한국은 초반 기술 개발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요즘 판도가 달라졌다.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첫 수소 완성차인 ‘투싼ix’를 선보였고 지난 3월에는 2세대 수소차 ‘넥쏘’ 판매를 시작했다. 현대차를 제외하고 양산형 수소차를 출시한 것은 전 세계에서 일본 완성차 회사 2곳이 전부다. 토요타가 2014년 세단형 수소차 ‘미라이’를, 혼다가 2015년 ‘클래리티’를 선보였다.

그러나 한국 수소차는 ‘거북이’ 행보다. 현대차 ‘넥쏘’는 300대가량 판매되는 데 그쳤다. 전국적으로 운행 중인 수소차는 500대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토요타 ‘미라이’는 지난해까지 4000대 이상 팔렸다. 이 같은 차이에는 수소차 인프라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에서는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수소충전소가 거의 없다. 연구시설을 포함해 22곳의 충전소가 있지만 운영 중인 곳은 13곳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고압 충전이 가능한 상용 충전소는 7곳이 전부다.

수소충전소가 부족한 이유는 깐깐한 현행법 때문이다. 국내 수소충전소에는 가스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안전관리 책임자가 반드시 필요하고 관리자는 24시간 상주해야 한다. 연료 주입 역시 충전소 직원만 할 수 있고 운전자는 불가하다. 입지도 제한적이다. 수소충전소는 고압가스시설로 분류돼 있다. 아파트와 놀이터, 의료시설로부터 50m, 학교에서 2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수소를 위험물로 분류하는 과거 기준이 관련법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운전자 스스로 충전할 수 없고 특수 책임 관리자가 상주해야 한다는 점은 인건비 등 운영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본과 유럽에서는 충전소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일본은 충전소 입지 선정이 자유롭다. 예를 들어 일본 도쿄 시바코엔역에 있는 충전소는 반경 3㎞ 이내에 도쿄 대표적인 쇼핑가인 긴자와 정부청사, 국회의사당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안전교육을 이수한 운전자는 누구나 직접 수소를 충전할 수 있다. 유럽에는 관리자가 상주하지 않고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운영하는 충전소도 있다.

정부 지원도 뒤처진다. 올 들어 산업통상자원부와 서울시 등이 수소차 보급, 충전소 확대를 골자로 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일본 정부는 일찍이 2014년부터 ‘수소사회’ 건설을 국가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도쿄올림픽 개최 전까지 수소차 보급 대수를 4만대, 수소충전소를 160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추격도 매섭다.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 충전소 1000기 이상을 보급할 계획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소 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 수소차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이미 한발 늦은 전기차를 건너뛰고 바로 수소차로 넘어가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모빌리티에 사활 건 재계

현대車·SK, 광폭 행보

미래 먹거리 ‘속도전’


기업들은 저마다 모빌리티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지목하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현대차, SK그룹 행보가 주목받는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산업에 사활을 걸었다. 성장이 정체된 완성차만으로는 더 이상 혁신을 이뤄내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 기조연설에서 “현대차는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전환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현대차는 올 들어 모빌리티 사업 강화를 위해 국가와 분야를 불문한 광폭 투자를 단행 중이다. 지난 1월 동남아시아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 ‘그랩(Grab)’ 투자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오토톡스’, 미국 ‘메타웨이브’, 호주 ‘카넥스트도어’, 인도 ‘레브’, 미국 ‘미고’ ‘퍼셉티드오토마타’ 등에 투자했다. 모두 커넥티드카와 자율주행에 필요한 독보적 기술과 서비스를 보유한 기업들이다.

완성차 업체가 없는 SK그룹의 모빌리티 투자도 눈길을 끈다. SK그룹은 올해 초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전기차용 전지 등 미래 이동수단을 5대 신사업 분야 중 하나로 정하고 3년간 5조원을 모빌리티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는 지난해 9월 미국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투로’에 396억원을, 올해 3월에는 ‘그랩’에 810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10월에는 SK네트웍스가 AJ렌터카를 3000억원에 인수하며 모빌리티 인프라를 닦기 위한 포석을 다졌다.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도 모빌리티 관련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이들 회사는 지금까지 거둔 성과를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19’에서 선보이기로 했다. 자동차 관련 기술을 전시하는 ‘노스홀’ 부스에서 SK텔레콤은 자율주행 솔루션과 차량용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SK하이닉스는 차량용 반도체와 솔루션,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용 배터리 등을 발표할 전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1호 (2018.10.31~11.0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