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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모빌리티 전쟁 중인데 기득권에 발목 잡힌 한국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8.11.02 09:44:58
카풀(carpool·출퇴근 승차 공유) 서비스를 둘러싸고 택시업계와 IT 업계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택시기사들이 대규모 집회까지 벌이며 반발하지만 카풀 서비스를 준비 중인 카카오는 운전자 공개 모집에 나서며 맞대응했다. 이 와중에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택시업계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라 소비자만 혼란에 빠졌다.

국내 승차 공유 서비스가 어려움을 겪는 사이 우버, 그랩 등 글로벌 기업들은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다. 현대차, SK 등 대기업도 규제에 꽉 막힌 국내 대신 해외 승차 공유 업체 투자로 돌아섰다. 글로벌 모빌리티 전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데도 한국만 기득권에 발목 잡혀 모빌리티 산업이 도태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한국 모빌리티 산업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일까.



카카오 카풀, 택시업계 반발 암초에

규제 가로막혀 대기업 투자 해외로


“카풀앱 불법영업 OUT” “택시업계 다 죽는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단체 회원 7만여명이 지난 10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택시 생존권 보장’과 함께 ‘카풀 근절’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5만대가량의 택시가 24시간 운행을 멈췄다.

택시업계 반발이 커진 것은 카카오 등 주요 업체들이 카풀 서비스 도입에 나선 때문이다.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최근 카풀 서비스 ‘카카오T카풀’을 선보이기 위해 운전자 모집에 나섰다. 카카오는 올 초 카풀 스타트업 ‘럭시’를 25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이재웅 대표가 이끄는 쏘카의 자회사 VCNC도 승합차를 활용한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를 선보였다.

차량 공유 업체와 택시업계 간 갈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3년 8월 미국 우버의 자가용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X’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택시업계 반발, 서울시와의 마찰로 2년여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글로벌 차량 공유 시장을 주무르는 우버조차 한국 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한 셈이다. 올 3월에도 택시업계와 카카오가 최대 5000원까지 추가 요금을 받는 카카오택시 유료 호출 서비스 도입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택시업계는 “앱 이용료 명목으로 택시요금을 올린 뒤 카풀 서비스를 내놔 택시 승객을 뺏으려는 꼼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카카오는 콜비를 1000원으로 내렸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택시기사들이 ‘카풀앱 불법영업 OUT’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택시기사들이 ‘카풀앱 불법영업 OUT’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기업마다 그랩 등 해외 투자 올인

모빌리티 위기에도 정부 우왕좌왕

갈등이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카카오가 출퇴근 시간대 카풀 서비스 도입에 나서면서 택시업계가 또다시 불만을 쏟아내는 중이다. 카풀 서비스가 도입되면 당장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택시가 부족한 출퇴근 시간대만 운영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 IT 업계 주장이다.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인 오전 8~9시 기준 카카오택시 승객 택시 호출은 11만6000건까지 치솟지만 배차 가능한 기사는 3만6000여명에 불과하다. 카카오 측은 “카풀은 출퇴근 시간대 시민들이 겪는 불편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택시업계와 카풀 업체 간 갈등이 커지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승차 공유 관련법, 제도 정비를 미루다 양측 갈등을 키웠다는 것이다. 올 들어 차량 공유 업체들이 잇따라 카풀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양측 중재 역할은커녕 명확한 가이드라인조차 내놓지 못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 제고를 위해 신교통 서비스를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 방안 마련을 병행한다”는 애매한 입장만 내놨다.

정부가 뒷짐 지고 미적대는 사이 국내 승차 공유 산업은 고사 위기에 빠졌다. 차량 공유 스타트업 풀러스는 출퇴근 시간만 허용했던 카풀 서비스를 24시간으로 늘리려다 출범 1년 만에 현행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카풀에서 벗어나 ‘우버형 서비스’를 꿈꿨지만 택시업계 반발을 샀고 서울시는 ‘자가용 불법 유상운송 알선’이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회사는 경영난에 빠지면서 김태호 풀러스 대표가 사임했고 투자금 225억원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택시업계 반발에 부딪힌 카카오 카풀 서비스도 도입 시기가 불투명하다.

이 와중에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버, 그랩, 디디추싱 등 세계 3대 차량 공유 기업이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로 펄펄 날고 있다. 우버는 기업가치가 무려 12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36조원에 달한다. 여세를 몰아 내년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이다.

‘동남아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동남아 8개국, 186개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 덕분에 기업가치가 110억달러로 치솟았다. 등록 운전자만 230만명 수준이다. 중국 디디추싱도 이용자가 4억5000만명에 달해 56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자랑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50억달러 규모인 글로벌 차량 공유 시장이 2030년 2850억달러(약 324조원)로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정작 국내 업체는 정부 규제, 택시업계 반발에 막혀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차, SK, 미래에셋 등 대기업들은 성장판이 막힌 한국 모빌리티 플랫폼 운영사 대신 줄줄이 해외 투자에 나서는 중이다. 올 들어 국내 기업이 해외 승차 공유 업체에 투자한 금액은 6000억원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모빌리티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규제 등 관련 제도부터 새로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시장에서 모빌리티 혁신이 빠르게 진행 중인데 과거 제도에 얽매여 기회를 놓치면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차 공유를 허용하되 택시업계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아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이 차량 공유 시장을 키우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정부가 나서서 차량 공유 업체 수익 일부를 택시업계에 나눠주거나 택시에 공유 관련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상생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배준희·강승태·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1호 (2018.10.31~1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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