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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현혹·과장 광고에 몸서리 V커머스·SNS 마케팅 혹해서 샀다 폭망…다이어트 식품 피해 속출

  • 박수호, 김기진 기자
  • 입력 : 2018.11.02 10:27:46
“다이어트약은 물론 필터식 샤워기, 체형 교정이 된다는 발가락 링, 농약 제거 분말가루, 운동화 클리너 등등을 샀는데요. 사실 뭐 하나 제대로 효과 본 게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운동화 클리너는 가죽 운동화 닦는 데 정말 효과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페이스북 동영상 광고에서 본 아이템은 안 사려고요.” (직장인 이자은 씨)

“SNS 광고에서 나온 마약베개 광고를 보고 저도 써봤는데 진짜 실망스러웠어요. 광고에서 하라는 대로 세탁도 해봤지만 반년도 안 돼 이미 재봉선은 전부 사라지고 충전재가 퍼져버려 오히려 베고 누우면 불편합니다. 커버를 씌우기는 했지만 안의 내피가 약해서 충전재가 계속 빠져나오고 총체적 난국이에요.” (직장인 박정훈 씨)

SNS상에 올라온 동영상 광고를 보고 상품을 샀다는 소비자 불만들이다. 일명 ‘비디오커머스(이하 V커머스)’의 어두운 면이라 할 만하다.

V커머스는 영상물을 활용한 상품 광고를 뜻한다. 3~4년 전부터 SNS 활성화, 간편결제 등에 힘입어 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주목받았다. 일약 스타기업으로 떠오른 곳도 생겨났다. V커머스 제작 전문업체 블랭크는 설립 2년 차인 지난해 매출액 500억원, 영업이익 120억원, 순이익 2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월매출 10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승승장구다. ‘오늘뭐먹지’ ‘쿠캣’ 등으로 SNS상에서 아시아 2000만명 회원을 확보한 쿠캣도 음식 동영상과 온라인 푸드몰 ‘오먹상점’, 디저트 전문 프라이빗 브랜드(PB) ‘발라즈’로 올해 매출 100억원을 내다본다.

이런 성공 사례가 탄생한 후 여러 업체들이 우후죽순 뛰어들면서 일단 화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V커머스를 쏟아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표시광고 위반, 낮은 품질, 부실한 사후 서비스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한다.

라돈이 검출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오늘습관 생리대(좌)와 유튜버 제이제이가 SNS에서 화제가 된 마약베개를 직접 써보고 올린 후기 영상(우).

라돈이 검출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오늘습관 생리대(좌)와 유튜버 제이제이가 SNS에서 화제가 된 마약베개를 직접 써보고 올린 후기 영상(우).

▶V커머스, 왜 자꾸 논란되나

▷SNS는 규제 사각지대

498건.

올해 상반기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에 접수된 SNS 쇼핑 관련 소비자 상담 건수다. 2017년 상반기에 비해 18% 늘었다. V커머스만을 따로 집계한 수치는 아니지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V커머스에 허위·과장 광고가 범람하는 원인은 SNS가 규제 사각지대기 때문이다. SNS 광고 심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담당하는데 민원 접수와 모니터링을 통한 사후 심의만을 하고 있다. 사전에 예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후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이라 아무래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사후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소비자원이 2016년 불법·유해 광고를 신고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신고한 게시물이 삭제되는 등 처리가 됐다’고 응답한 사람은 2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77명은 ‘처리 결과에 대해 듣지 못했거나 처리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자 있는 제품이 등장하는 이유는 “V커머스 시장에는 제조보다 마케팅에 강한 기업이 많다”는 이종대 데이터블 대표의 분석으로 설명이 된다. 품질관리에 익숙지 않고 제조보다는 마케팅에 무게를 두다 보니 제품에 문제가 있어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남훈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는 “부정적인 사례가 계속 등장하면 광고 플랫폼으로서 SNS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초기 경험이 부정적이면 소비자 역시 다른 구매 채널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유형 있나

▷과장 광고부터 제품 부작용까지

그간 논란이 된 V커머스·SNS 마케팅 사례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허위·과장 광고로 인해 비판을 받은 유형이다.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9월까지 식품안전의약처가 SNS에서 적발한 허위·과장광고는 1909건이다.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 등이 인증을 받지 못했음에도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클렌즈주스’가 대표 사례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독소를 제거(디톡스)해준다고 광고했으나 식약처 조사 결과 이 같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유형은 제품 안전성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된 브랜드로는 ‘오늘습관’을 꼽을 수 있다. 오늘습관은 자사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업체 측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언론에서 보도된 생리대 라돈 수치는 국가인증을 받은 수치가 아니라 저가 라돈 측정기로 측정한 것”이라며 “국가기관 시험 결과 오늘습관 생리대에서는 국내 방사능 안전기준 수치보다 낮은 수준의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해명했지만 환불 요구가 줄을 이었다.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광고한 파인애플 발효식초는 부작용이 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자동차 시트가 다 젖을 정도로 하혈했다’ ‘복통으로 고생했다’와 같은 후기를 남겼다. 논란이 확산되자 식약처는 해당 음료를 안전검사 대상으로 선정해 검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광고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인기를 끈 마약베개도 이 유형에 해당한다. 마약베개에서 냄새가 나서 환불을 요청하거나 버리고 다른 제품을 구매했다는 소비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밖에 발 각질을 제거해주는 악어발팩도 이용한 뒤 발이 화끈거리거나 가렵다는 반응을 보인 소비자가 상당수였다.

세 번째 유형은 선정적이거나 적절치 못한 광고 콘텐츠로 인해 도마 위에 오른 사례다. 온라인 화장품 쇼핑몰 미미박스가 대표적이다. 미미박스는 뷰티·패션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을 홍보하면서 ‘남친에게 조르지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 광고는 여성을 독립적인 소비 주체가 아닌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 일반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미미박스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보디 미백크림을 선전하면서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와 같은 문구를 사용해 여성 소비자의 공분을 샀다. 소비자들은 ‘고객을 남자들이 주워 먹는 떡 취급하는 기업’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불매운동을 벌이는 소비자도 등장했다.

색조화장품 브랜드 플레이베이직은 데이트 폭력을 연상케 하는 동영상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폼클렌저 ‘밀크싸다구 클렌저’ 홍보 영상에 여성을 때리려는 남성을 행인이 제지하자 여성이 ‘더 때려줘’라고 말하는 내용을 담았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된 곳은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지알앤(GRN)이다. 지알앤은 지난 7월 여성 질 냄새를 오징어 냄새에 빗댄 마케팅 영상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유산균이 함유된 건강기능식품 ‘GRN 프레쉬즈락토’ 선전을 위한 영상으로 생리대 위에 오징어를 올린 모습, 남성이 여성을 보고 코를 막는 모습 등이 등장한다. 해당 영상 캡처본은 SNS를 통해 확산됐고 ‘회사 문 닫을 각오하고 만든 동영상인가’ ‘이런 저급한 광고를 보니 불쾌하고 화가 난다’와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근절 방안 없나

▷화제 상품 직접 써보는 리얼리뷰 인기

전문가들은 V커머스 산업이 초창기라지만 엄연히 소비자 불만, 피해는 막아야 하는 만큼 표시광고법 등 현재 있는 법 내에서라도 적극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명연 의원실은 “상황이 이런데도 식약처는 2016년부터 해당 사안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좌시하고 있다 올해 9월에서야 뒤늦게 안전검사에 나섰다. 뒷북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나친 규제보다는 업계 의견을 청취하고 당장 관련 규제를 만들기보다 가이드라인부터 제정하며 사후 규제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서희정 숙명여대 미디어학과 박사는 “정부 차원 대안이 효과가 전혀 없거나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산업 성장에 제동을 걸 수도 있으므로 규제가 아닌 가이드라인 정도를 제시하고 이후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민간 차원 자정 작용이 대안이라는 얘기도 된다. 유튜버 ‘제이제이’는 SNS상에서 화제가 된 광고 제품을 직접 사서 사용해보고 후기 영상을 올려 조회 수 100만 이상을 올리며 눈길을 끌었다. 김남훈 교수는 “SNS상에서 이처럼 양방향으로 제품 광고와 평가가 이뤄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훨씬 폭넓은 시각을 확보할 수 있고 규제만능주의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김기진 기자 kj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1호 (2018.10.31~1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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