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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좀’ R&D에 꽂힌 바이오 업계…‘뉴 패러다임’ 차세대 표적 항암물질 뜬다

  • 류지민 기자
  • 입력 : 2018.11.05 09:52:19
우리 몸의 세포가 분비하는 엑소좀은 세포 간 정보 전달체 역할을 하는 기능이 알려지면서 차세대 항암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그림은 엑소좀을 활용해 치료 가능한 신체 부위별 질병.

우리 몸의 세포가 분비하는 엑소좀은 세포 간 정보 전달체 역할을 하는 기능이 알려지면서 차세대 항암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그림은 엑소좀을 활용해 치료 가능한 신체 부위별 질병.

지난 10월 초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혼조 타스쿠 일본 교토대 교수와 제임스 앨리슨 미국 텍사스대 엠디앤더슨 암센터 교수를 ‘2018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면역항암제 원리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암 정복’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발병 초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암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국제암연구기관(IARC)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96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2015년 880만명에 비해 10%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암이 심혈관질환을 제치고 인류의 첫 번째 사망 원인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경고한다.

암을 정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항암제도 진화를 거듭해왔다. 1세대 화학항암제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해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약물의 독성이 주변 정상세포까지 함께 죽이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암을 일으키는 특정 표적인자만 선택적으로 공격한다. 암세포만 골라 죽여 부작용은 적지만 대상이 제한적이고 세포가 내성이 생기면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는 한계를 갖는다. 3세대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몸속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암세포를 죽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고 생존 기간도 길다. 다만 치료제 개발이 어렵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다.

‘암세포를 없애는 데 보다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무엇일까. 혹은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암을 진단하는 기술은 없을까.’

이런 고민 해결의 실마리로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가 주목하는 물질이 바로 ‘엑소좀(Exosome)’이다. 엑소좀은 면역세포, 줄기세포 등 우리 몸의 세포가 분비하는 나노입자다. 세포 간 정보 전달체 역할을 하는 기능이 알려지면서 차세대 항암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몸안을 돌아다니는 엑소좀은 10여년 전에는 단순히 면역 반응을 조절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약물 전달체로서의 특성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이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피 한 방울로 암 조기 진단 가능

▷정상세포 놔두고 암세포만 공격

최근 암치료 관련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진단 부문인 엑소좀 연구다.

엑소좀은 세포가 보내는 일종의 택배 상자다.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 정도인 30~100㎚(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원세포에 들어 있는 단백질, 핵산, 지질 등 여러 요소가 그대로 담겨 있다. 암세포도 예외가 아니다. 암세포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암 전이 특이 단백질을 엑소좀에 담아 내보낸다. 이 엑소좀이 다른 세포에 달라붙어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변화시킨다.

바이오 기업들은 특정 암세포가 정상세포보다 엑소좀을 많이 분비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엑소좀 진단을 통해 혈액이나 체액에 포함된 특정 질병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체내에서 살펴보기 어려운 부위에 위치한 질병 인자가 엑소좀을 분비할 경우 더욱 유용하다. 예를 들어 췌장은 주변 혈관과 조직이 손상을 입기 쉬운 구조로 돼 있어 조직검사나 수술이 어려운 부위다. 췌장암의 경우 조기 진단이 쉽지 않아 5년 생존율이 10% 미만일 정도로 치명적인 암으로 꼽힌다. 혈액 내 엑소좀 테스트를 통해 췌장암 엑소좀을 발견할 수 있다면 조기에 췌장암을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홍종욱 한양대 바이오나노학과 교수는 “흔히 암은 정기 건강검진에서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검사를 통해 발견되지만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사실상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혈액에서 암세포가 내보내는 엑소좀을 잡아낼 수 있는 키트가 개발된다면 싼값으로 조기에 암을 진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엑소좀은 모든 세포 유형에서 분비되며 혈액은 물론 타액, 소변 등에서도 발견된다. 엑소좀을 이용한 진단은 암뿐 아니라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당뇨와 같이 세포가 병들어 생기는 질병은 모두 진단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암치료에 있어서도 엑소좀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목표 세포를 알아서 찾아가는 엑소좀의 성질 때문이다. 암세포를 찾아가는 면역세포 엑소좀에 항암제를 탑재해 투입하면 약물이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에만 정확하게 가서 닿도록 할 수 있다.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장점을 합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줄기세포 엑소좀을 활용한 재생의약품이나 기능성 화장품으로도 적용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줄기세포로부터 분비된 엑소좀에는 재생 능력을 가진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이 함유돼 있다. 세포치료제인 줄기세포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 세포 분비물인 엑소좀은 줄기세포와는 달리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보관도 용이하다. 기존 줄기세포가 갖는 단점을 극복하면서 유용한 물질을 추가로 첨가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조병성 엑소코바이오 대표는 “엑소좀은 이제 막 태동한 분야지만 그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된다. 최근 엑소좀이 아토피 피부염 증상을 완화할 수 있음을 입증한 논문이 발표되는 등 향후 바이오 신약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설명했다.

▶엠디뮨 ‘바이오드론’ 기술 눈길

▷전달력은 높이고 부작용은 낮춰

엑소좀은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에서 가장 뜨는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대기업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미개척 분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 최근에서야 본격적인 연구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다.

해외 기업도 엑소좀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국 바이오 업체인 코디악 바이오사이언스가 1000억원(약 9200만달러)을 투자받아 엑소좀 항암 신약을 개발 중이고, 엑소좀 다이어그노스틱스가 전립선암과 폐암 진단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엑소슈티컬스는 엑소좀을 이용한 보습제를 출시한 정도다.

오히려 국내 바이오벤처를 중심으로 앞선 성과를 내놓는 기업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엠디뮨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공엑소좀’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세포가 분비하는 천연엑소좀은 그 양이 한정돼 있어 사업화에 한계를 갖는 데 반해 인공엑소좀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엠디뮨은 세포로부터 직접 압출 방식에 의해 대량으로 인공엑소좀을 제조한다. 이를 기반으로 소화기암과 난소암 적응증을 가진 항암제(독소루비신)를 면역세포 유래 인공엑소좀에 탑재한 치료제(BNS-Dox)를 개발 중이다.

배신규 엠디뮨 대표는 “인공엑소좀은 천연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엑소좀의 종류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얻을 수 있는 엑소좀 종류가 많아지면 그만큼 더 많은 종류의 질병을 목표로 할 수 있다. 인체 내 원하는 조직을 표적화해 약물을 전달하는 차세대 약물 전달 플랫폼 기술 ‘바이오드론’을 완성해가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리더스코스메틱 자회사 프로스테믹스는 ‘미세소낭(식물 유래 엑소좀)’을 활용한 화장품이 주력 제품이다. 아스파라거스 미세소낭으로 탈모 증상 개선 효과가 있는 ‘리클리 앰플’을 만들고, 산삼 미세소낭은 피부 미백·광택에 좋은 화장품에 활용한다. 녹용, 유산균 등으로부터 추출한 엑소좀을 활용해 만든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줄기세포 엑소좀을 활용한 아토피 치료제를 개발 중인 엑소코바이오는 최근 500억원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생소한 엑소좀 분야에서 기술력만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엑소코바이오는 줄기세포로부터 추출한 엑소좀의 재생력을 활용해 과도한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조병성 대표는 “엑소좀은 물질을 인접세포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갖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세포 흡수가 잘된다는 특징이 있다. 단기, 중기적으로는 기능성 화장품을 계속 시판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줄기세포 엑소좀을 이용한 간, 연골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엑소좀 기반 항암기술은 다양한 항암물질과 의약품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라는 점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정 조직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면 효과는 뛰어나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쓸 수 없었던 기존 항암물질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신규 대표는 “엑소좀 플랫폼을 활용할 경우 사실상 모든 항암제의 전달력을 높이는 동시에 부작용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술 개발과 함께 암 정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1호 (2018.10.31~11.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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