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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 & BOND] 바닥 모르게 추락하는 증시 긴급진단 심리 급랭·수급 악화…단기 낙폭 과대주 주목

  • 배준희 기자
  • 입력 : 2018.11.05 11:12:10
  • 최종수정 : 2018.11.05 14:37:33
한국 증시가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1년 10개월 만에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2000선마저 맥없이 내줬다. 정부가 자본시장 안정화 자금 5000억원 투입을 골자로 한 증시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없었다. 미중 무역전쟁 직격탄을 맞은 한국 기업들이 아시아권 헤지펀드의 공매도 사냥감이 된 데다 현 정부에서 잇따라 반(反)기업 정책을 내놓고 있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추세 전환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면서도 실적 대비 주가 낙폭이 과대한 종목은 중장기 관점에서 저점 매수를 고민할 때라고 조언했다.

▶코스닥, 글로벌 증시 낙폭 1위

▷중국發 악재 한국 덮쳐

증시 변동성 확대는 한국만의 이슈는 아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과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에 따른 신흥국 금융위기 등으로 글로벌 증시가 몸살을 앓는 중이다. 기업 실적도 따져보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기업의 3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1%, 16% 증가해 금액 기준으로는 연내 최대 분기 실적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 말고 별다른 성장동력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이 또한 이미 노출된 해묵은 악재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낙폭이 유독 크다. 지난 10월부터 같은 달 26일까지 코스닥지수는 19.36%, 코스피지수는 13.48% 하락했다. 세계 주요 30개 증시 중 코스닥은 하락률 1위, 코스피는 3위를 기록했다. 역설적으로 미중 무역전쟁으로 관세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 상하이 증시(-7.89%)보다도 낙폭이 크다. 무역전쟁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는 곳은 중국임에도 오히려 한국 기업 주가가 더 급락하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진 셈이다.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기업의 실적 우려보다 증시 주변 수급에 악재가 잔뜩 도사리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무역전쟁 관련 홍콩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헤지펀드들이 중국 의존도가 높은 다수의 한국 기업들을 공매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기가 단적인 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본부장은 “삼성전기의 실적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무역전쟁의 여파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중국 내 핸드폰 재고가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그러자 헤지펀드들은 중국 핸드폰 시장의 투자심리가 꺾일 것으로 보고 관련 납품 비중이 높은 기업을 물색했고 거기에 삼성전기가 걸려들었다. 삼성전기 매출액 가운데 중국 비중이 30%가량 된다. 결국 한국 IT 기업 전체가 ‘쇼트(매도)’ 리스트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고 털어놨다.

무역전쟁으로 중국 기업 실적이 안 좋아도 정작 중국 증시는 여러 제약 때문에 공매도를 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중국 정부는 환율도 장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무역전쟁 상황에서 위안화 절하(가치 하락)로 대응하고 있음에도 외국인 자본유출이 많지 않은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다. 결국 중국과 연관성이 높으면서 유동성이 좋고 공매도도 손쉬운 한국 증시가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헤지펀드의 공매도 ‘놀이터’가 됐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서 패시브 펀드 영향력이 커진 점도 악재다. 특히 최근 들어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의 발달로 급격히 늘어난 알고리즘 매매는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미국 다우지수가 두 차례에 걸쳐 4% 넘게 급락한 것 역시 ETF(상장지수펀드)의 알고리즘 거래가 원인으로 꼽힌다. ETF 시장 확대로 개별 종목이나 글로벌 증시 등 자산군 간 상관관계가 높아지는 추세인데 한국은 알고리즘 매매에서도 중국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다. 대부분의 패시브 펀드가 편입하는 기초자산 인덱스에서 한국은 중국과 함께 신흥시장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중국 증시가 낙폭을 키울수록 곁에 껴 있는 한국 증시 또한 덩달아 변동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11월, 1950까지 하락할 수도

▷추세 전환 힘들 듯

코스피가 2000선을 내줬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바닥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올 하반기는 물론 내년 상반기 역시 낙관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주요 증권사들은 내년 전망에 관해 일제히 ‘상저하고’를 외친다.

가장 큰 문제는 내년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한번 꺾인 투자심리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는 기술적 반등이 나타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약세장을 벗어날 것이라는 강력한 근거가 부족해 단기 반등 후 기간 조정을 거치며 지리한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증시 향방을 가를 중요 변수로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와 이후 미국 증시의 반등 여부가 꼽힌다. 방향성을 두고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단기적으로 가장 큰 변수는 11월 6일 치러지는 중간선거다. 선거 결과에 따라 미 증시도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월가에서 ‘신흥시장 투자의 귀재’로 통하는 마크 모비우스 모비우스캐피털파트너스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미국 증시가 더 내릴 것”이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패배와 주가 하락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면서 무역전쟁이 격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미 고점 대비 10% 가까이 하락한 S&P500지수가 추가로 10~15%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뉴욕 증시 전망도 엇갈린다. 모건스탠리는 S&P500지수가 2400선으로 더 밀릴 수 있다고 내다봤지만, 골드만삭스는 올해 말 2850을 회복할 것이라 점쳤다.

11월 30일~12월 1일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도 주목된다. 미중 정상은 이번 부에노스아이레스 회동에서 통상 문제를 중심으로 북한 비핵화 문제 등 주요 현안을 폭넓게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내 증권업계는 11월 증시 눈높이를 일제히 낮췄다. NH투자증권이 1960~2150, 삼성증권은 1950~2120을 제시하는 등 증권사 대부분이 11월 코스피 예상 등락 범위 하단을 2000선 밑으로 잡았다. 다시 2000선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미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경제의 정점 논란에 이어 약세 국면 진입의 공포가 등장한 만큼 주식시장 반등이 시작된 이후로도 상당한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우리 경제·상장기업의 실적 상황은 과거 약세 국면 진입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며 투자심리가 안정된 이후로는 가장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위안거리”라고 촌평했다.

▶반도체 투톱 ‘싸도 너무 싸’

▷반등 국면서 성장주 상승폭 클 듯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배 수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0.82배를 밑도는 역사적 최하단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증시 전문가들은 “추세 전환은 시기상조다. 저가 매수를 노리고 뛰어드는 것은 위험하다”고 신중한 대응을 당부한다. 하인환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과 같은 낙폭은 공포심리를 반영한다. 하락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바닥을 확인하더라도 얼마만큼 반등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현시점에서 주식시장에 투자한다면 고배당주처럼 변동성이 낮은 종목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배당수익률은 총 배당금을 주가로 나눠 구하는데 주가가 하락할수록 배당수익률은 올라간다. 그만큼 추가 하락 가능성을 방어한다는 의미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스피의 배당수익률은 2%로 확인된다. 은행의 1년 만기 예금금리와 동일하다. 지금 주식시장에 투자할 경우 예금금리에 준하는 기대수익을 확보할 수 있고 시장의 반등 여부에 따라 배당금을 웃도는 자본차익도 누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산우, SK이노베이션우, 화성산업 등은 최근 주가 기준 배당수익률 6%를 넘는 알짜 종목이다. 쌍용양회는 2016년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의 자회사 한앤코시멘트홀딩스에 인수된 뒤 파격적인 분기배당을 이어가고 있다. 이외 SK텔레콤, S-Oil, 기업은행 등도 전통적인 고배당주로 배당수익률은 4~5% 수준이다.

변동성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실적 대비 주가 낙폭이 큰 종목을 ‘장투용’으로 담아두는 것도 방법이다. 단, 주가가 출렁일 때 추가 매수할 두둑한 현금과 변동성을 견딜 ‘배짱’이 필수다.

대형주 가운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투톱’ 주가가 워낙 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6배와 4배 수준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PER은 애플의 절반에 불과할 뿐 아니라 코스피 평균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이 발표한 중국 반도체 업체로의 수출 제한은 ‘중국의 D램 산업 진출’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해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화장품 업종도 단기 낙폭이 컸다. 미 국채금리 급등으로 대표적인 고(高)PER 종목인 화장품주는 대거 조정받았다. 이런 가운데 스킨푸드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여타 중소형 화장품주까지 한꺼번에 무너졌다. LG생활건강, 네오팜 등의 종목이 실적 기반이 탄탄하다고 평가받는다. LG생활건강은 중국 럭셔리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 중국 법인의 성장률이 가파르다. 네오팜은 매출의 90% 이상이 내수에 집중돼 중국 매출 의존도가 낮다는 것이 강점이다.

콘텐츠와 바이오·헬스케어 등 성장주를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향후 반등 국면이 나타날 경우 실적 성장이 기대되는 종목에서 상승세가 가파를 것이란 진단이다. 콘텐츠 업종에서는 JYP엔터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 JYP엔터는 엔터 업종 내에서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만큼 최근 조정 국면에서 차익 실현 물량이 쏟아졌다.

바이오 대형주 가운데는 셀트리온헬스케어 주가가 바닥이라는 진단이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유럽에서의 램시마 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면서 이에 따른 충당금 설정으로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올해 영업이익률은 약 10% 내외를 기록할 전망”이라며 “실적만 보자면 올해가 바닥이지만 2019년 트룩시마와 허쥬마가 신규로 미국 시장에 출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부터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고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바이오 중소형 종목 가운데는 에이치엘사이언스 낙폭이 컸다. 이 회사는 건강기능식품인 석류농축액이 주력 상품이지만 골관절염·치주질환 시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공략 중이다. 지난 3분기 매출액 165억원, 영업이익 33억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최근 한 헤지펀드에서 보유 주식 일부를 내다팔면서 주가가 단기에 급락했다.

뿔난 ‘개미’들 정부 성토

증시 폭락하는데 ‘스스로를 믿으라’니…부글부글

한국 증시가 ‘밑 빠진 독’ 형국이 된 데는 현 정부의 ‘역주행 경제정책’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코스피가 잇달아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증시에는 미확인 ‘지라시’가 툭하면 쏟아진다. ‘외신의 터키 디폴트 보도’나 ‘미국 정부가 북한 송금과 연관된 은행에 경제적 제재(Secondary Boycott) 추진’ 등의 풍문이 단적인 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 지라시들은 실제 공매도 세력의 재료로 쓰여 일부 펀드 수익률이 급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라시에 휘둘릴 만큼 한국 증시 체력이 바닥이라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자 10월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개인투자자들이 증시 관련 청원글을 수백 건 올리는 중이다. 지난 10월 29일 코스피가 마지막 심리적 지지선인 2000선마저 내주자 투자자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날 하루 동안 200개에 달하는 국내 증시 폭락 관련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지난 10월 26일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님, 주식시장이 침몰하는데 대책을 세워주세요’ 청원글에는 10월 31일 기준 2만6486명이 동참했다. 작성자는 “경제성장률·기업 실적·환율·유가 등을 포함해 모든 경제지표가 모여 돌아가는 주식시장이 이렇게 망가지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를 성토했다.

특히 증시 폭락과 관련해 최근 정부 고위 관료들이 잇따라 투자자들 정서와 동떨어진 주장을 펼쳐 뒷말이 무성하다. 한 예로 지난 10월 29일 열린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에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분석 능력과 자금 여력이 있는 국내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금융시장을 책임지는 고위 관료가 저렇게 한가한 말을 할 수가 있느냐’는 식의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82호 (2018.11.07~11.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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