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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공
 테니스공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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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몸치지만 운동 배우는 걸 좋아한다. 다만, 어떤 운동에 도전한 뒤 주위 사람들에게 바로 알리지 않는다. 금방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니까. 동작이 뻣뻣하고 서툰 게 문제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간단한 홈트(집에서 하는 운동) 영상을 따라하는데도 새로운 동작이 나오면 영상을 멈추고 '저 사람이 오른손은 어떻게 했지? 왼손은 어떻게 했지? 다리는 어떻게 했지?' 하고 하나씩 살펴본다.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간단히 알려주는 코치를 만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당최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한동안 동생에게도 테니스 강습을 받는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난 뒤 내가 테니스를 배우는 줄 알게 된 동생은 "뭐? 이젠 테니스야?" 하며 깔깔 웃었다.

"왜? 내가 못 할 거 같아?"

난 괜히 뜨끔해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렸을 때 11층에 살던 아줌마 생각 안 나? 열심히 테니스 치러 다니시는데 살이 빠지긴커녕 더 뚱뚱해져서 우리가 막 신기하다고 했잖아. 그 아줌마 보고 나서 언닌 절대 테니스 안 배울 거라고 했었는데. 기억 안 나?"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11층 아줌마. 아, 아줌마가 돼서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 지금에서야 11층 아줌마가 이해된다.

테니스가 인기인 이유

테니스는 에너지 소모가 큰 운동이다. 공이 날아오는 대로 라켓을 휘둘러 치는 것뿐인데 항상 예상보다 더 많은 땀이 나고 더 빨리 지친다. 그래서인지 레슨을 받고 나면 몸이 개운하기도 하고 가뿐하기도 하다. 그렇게 그대로 집에 오면 좋으련만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으니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니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분식집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집에 와서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찍어 먹고 순대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면 슬슬 정신이 든다. 아, 또 많이 먹었구나. 어릴 적 이해하기 힘들었던 11층 아줌마의 체중 미스터리가 이제야 풀린다. 어쩌면 우리 아파트에도 라켓을 들고 다니지만 몸은 그대로인 날 주시하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테니스가 대세 운동이라고 한다. 1970년대 테니스 열풍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 후, 지금 다시 테니스가 뜨는 이유는 뭘까. 테니스를 배운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요즘 사람들이 왜 그렇게 테니스를 배우는 거야?"

그럼 난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난 남편이 배운다고 해서 '나도, 나도 배울래' 하고 따라간 것뿐.
 
테니스 라켓과 테니스화 찍은 사진
 테니스 라켓과 테니스화 찍은 사진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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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을 살펴보니 MZ세대 사이에서 테니스 코트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골프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복장이 예쁜 것이 요즘 테니스 인기의 주요 요인이라고.

그런 유행으로 인해 곳곳에 실내 테니스장이 생기고 날씨에 상관없이 테니스를 배울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비교적 쉽게 테니스에 입문하게 되었다. 나만 해도 집 근처에 실내 테니스장이 생기지 않았다면 배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쁜 테니스 복장은 나와 거리가 멀다. 테니스를 치는데 도움이 되는 테니스화나 라켓 같은 장비라면 몰라도 복장엔 별로 관심이 없다. 테니스 레슨 비용도 비싼데 비싼 옷이라니. 게다가 난 테니스를 10분만 쳐도 땀으로 목욕을 하는데 어떻게 예쁜 옷을 입고 테니스를 칠까.

레슨이 끝나면 땀에 젖은 머리와 빨개진 얼굴을 누가 볼까 무서워 양산으로 가리고 후다닥 뛰어간다. 그러다 며칠 전 한 여성 회원이 멋진 옷을 입고 휙휙 라켓을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 순간, 멋진 옷을 입으면 더 운동이 잘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멋지게 차려입고 허둥지둥 어설프게 공을 치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멋진 옷은 언제가 실력이 늘게 될 그때로 미룬다.

테니스도 계속 해보겠다

휴가와 테니스 레슨 종강일과 겹쳐서 이참에 조금 쉬다 남편이 다니는 테니스장으로 옮기기로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면 또 다른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새로운 곳에 가기 전, 남편에게 물었다.

"나 코치님한테 테니스 몇 개월 배웠다고 할까?"

아무래도 8개월 배웠다고 사실대로 말하기엔 내 실력이 너무 부끄럽다.

"내가 3, 4개월 배웠다고 했거든. 자기는 그거 감안해서 알아서 말해."

내가 보기에 남편은 굳이 배운 기간을 줄여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욕심쟁이다. 그런데 남편이 3, 4개월 배운 거라면 난 2개월 배웠다고 해야 하나? 2개월?

열심히 테니스 치던 내 6개월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시간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와 항의할 것 같다. 그래, 그 6개월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3개월? 4개월? 한 개월씩 늘인다.

갑자기 예전 생각이 났다. 27살, 중국에 두 번째 어학연수를 갔던 때. 그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중국어를 몇 년간 배웠다고 할까. 23살 때 6개월 어학연수를 하고 그 뒤로 중국어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다. 그런데도 내 실력이 부끄러워 중국어를 얼마나 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기간을 확 줄여 말했다. '예전에 6개월 연수한 적 있어요'라고.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배운 기간에 비해 잘한다고 하면 그제야 '그 뒤로 학원도 다니고 했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뭔가가 바뀌었나? 내가 더 실력이 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날 잘한다며 떠받들어 준 것도 아니다. 단지 그때뿐. 생각해보니 내가 즐거워 테니스를 하면 그만인데도 난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 그것도 많이. 몸치인 것도 변화 없는 몸매도 복장도 배운 기간도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 없을 텐데 말이다.

새로 만날 코치에게도 그냥 8개월 배웠지만 생각보다 못하니 놀라지 말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난 재미있는 테니스를 계속 배우면 되는 거다. 인스타에 인증하려고 테니스를 시작한 젊은이들이 줄줄이 테니스를 그만둬 테니스 코트 예약이 쉬워질 때까지.

뭐 그전에 내가 '아휴,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하고 먼저 그만둘 수도 있지만. 그만둘 때도 사람들이 꾸준하지 못하다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질질 끌려 운동을 지속하진 말아야겠다. 테니스가 힘들면 나에게 맞는 운동을 또 새로 배우면 된다. 세상은 넓고 운동은 많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건 언제나 신난다.

태그:#몸치,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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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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