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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우와, 부러워요!"

내가 제주도에 집이 있다고 말하면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나온다. 그리고 비용은 얼마인지, 얼마나 자주 가게 되는지 등을 자세히 물어본 후, 대개는 "저도 가도 되나요?"로 대화가 마무리된다. 물론 날짜만 안 겹치면 가능하다고 대답했지만 여태까지 손님 자격으로 제주도 집에 방문한 지인은 극히 드물다.

제주도 집은 연세로 임대한 집이다. 제주도는 1월 중순(설이 지난 후)을 신구간이라고 하는데 그때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개인 직거래가 대부분이고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지불하는 연세가 보편적인 형태이다. 나도 집을 '당근'(중고거래 앱)으로 구했다.
집 근처 바닷가에서 아이가 강아지풀로 작은 게를 잡는 모습
 집 근처 바닷가에서 아이가 강아지풀로 작은 게를 잡는 모습
ⓒ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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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제주도 여행을 좋아했는데 작년에는 2주 정도 지내다 오려고 계획을 짰다. 많은 시간을 들여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을 했지만 썩 좋은 곳도 아닌데 비용이 꽤 들었다(저렴한 곳인데도 2주에 100만 원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친구의 가족들과 마실(공동육아조합 용어로 친구 집에 놀러가는 것을 뜻함)을 하던 중 그냥 집을 얻어 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은 맥주 한 잔 하면서 가볍게 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바로 집을 알아보게 되었고 평일에 조퇴를 하고 당일치기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면서 첫 번째 집을 구했다. 세련된 숙소가 아닌 그야말로 평범한 가정집이라서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1년 임대료가 600만 원이었고 세 가정이 함께 임대했으니 셋으로 나누면 1년 숙소비로 부담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를 따르던(?) 나머지 두 가족의 부모들이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모른다. 같이 살림을 모으고 집을 치우고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 먹었다. 특히 제주도 집 계약서에 우리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한 가정이 빠지면서 방이 2개인 지금의 집으로 옮겼다. 다행히 첫 번째 집보다 집 상태가 더 좋았고 연세도 450만 원이라서 우리는 무척 만족하고 있다. 다만 작년보다 주말 비행기 값이 올라서 자주 가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아이들 방학 때라도 길게 가고 지인들에게 빌려주며(하루 만 원) 알뜰하게 사용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년에도 집을 유지할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긴 하다.

주택으로 이사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와 남편은 아들이 성년이 되는 10년 후, 완전히 제주도로 입도하겠다는 꿈이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중학교에 가기 전 1~2년 정도를 제주도에서 지내려고 계획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인천에 있는 집 대출금을 갚느라 여유가 없다. 사실 대출금 상환은 30년짜리라서 그걸 다 갚으면 여유가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더 이상 추가 대출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만약 추가 대출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제주도 땅을 알아보러 내려갈지도 모른다. 네이버에 있는 제주도부동산직거래 카페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들어가 보는데, 작은 땅이나 맘에 드는 주택이 있는지 살펴보다보면 꿈을 이루는 데 조금 가까이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7년 전 무리해서 아파트를 구입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상처를 많이 받아서 꼭 1층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는데 1층 전세 매물이 없었다. 그래서 대출을 잔뜩 받아서 구매를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4년 전, 그 아파트를 팔고, 지은 지 40년 된 작은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순전히 아이의 어린이집 근처로 오기 위해서였다. 더 편하게 어린이집을 다니기 위해, 마을공동체에 섞여 놀기 위해, 경인교대 운동장을 매일 드나들기 위해, 어린이집 친구들과 초등학교까지 함께 가기 위해.

문제는 기존 대출금도 남았는데 오래된 주택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느라 집값의 절반이 대출금이라는 점이었다. 작년 즈음 온 나라 부동산 가격이 떠들썩하게 오를 때 예전 아파트는 두 배 넘게 올랐지만 우리 주택은 일관되게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배가 아프지 않았다. (아주 조금?) 이 집으로 이사 온 것을 후회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마당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기르고 라일락과 수국을 기를 수 있는 2층짜리 주택에서 살 수 있다는 게 마냥 감사할 뿐이다. 

사실 이 동네 주택으로 이사 오는 순간부터 집값과는 담을 쌓게 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집값보다는 아이 친구들이 살고 있고 그 부모들이 살고 있는 '마을 공동체'가 중요했다. 이 주택에서 살아갈 우리의 삶이 가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을에 살고 싶다
 
우리집 작은 화단 모습. 수국이 피기 직전의 모습
 우리집 작은 화단 모습. 수국이 피기 직전의 모습
ⓒ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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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골목에서 함께 기르다시피 하는 고양이 '호박이(혹자는 까망이)'가 가끔 우리 마당에 똥을 싸고 가도 괜찮고, 동네 꽃집에 매일 들러 인사를 하는 아이의 엉뚱함도 재밌고 동네 놀이터나 교대 운동장에 가면 언제나 마주치는 아이 친구들도 반갑다.

다만 우리 동네 코앞까지 밀고 들어오는 대단지 아파트가 무섭기만 하다. 동네 지인 중 한 사람은 마지막 기회라며 꼭 청약을 넣으라고 흥분하지만 나는 우리 골목까지 아파트를 짓겠다고 난리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우리가 제주도로 가려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마을'에 살고 싶다. 아직 제주도에는 마을이 있다고 믿고 있다. 물론 내 고향에도 있고 전국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굳이 제주도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기왕이면 나를 설레게 하는 마을에 가서 살고 싶다. 그렇게 많이 갔는데도 생각만 하면 설레는 곳, 내게는 제주가 그렇다.

아, (자주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행복한 문장인가. "나는 제주도에 집이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브런치에도 실려 있습니다.


태그:#제주도, #연세, #아파트와 주택,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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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jey9595 사진은 우리집 양선생, 순이입니다. 저는 순이와 아들 산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40대 국어교사이고, 늘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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