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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감독 "울고 싶은 순간도...천천히 복기해야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0 22:19

수정 2019.12.10 22:19

이영애 주연, 김승우 감독 데뷔작
영화 '나를 찾아줘' (사진=워너브러더스 픽쳐스 제공) /사진=뉴시스
영화 '나를 찾아줘' (사진=워너브러더스 픽쳐스 제공)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영화 개봉하고 한동안 울고 싶은 심정이었죠. 영화관을 돌면서 여러 번 관객반응을 살폈어요. 영화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감독은, 영화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관객과 소통하는 그 순간, 비로소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흥행 결과에 상관없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고, 천천히 복기할 생각입니다.”

영화 ‘나를 찾아줘’는 ‘이영애의 14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주목받았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흥행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20대 후반에 쓴 시나리오로 11년 후 데뷔하게 된 ‘신인’ 김승우 감독으로선 만감이 교차할 법도 하다.

특히 이 영화는 개봉에 앞서 지난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영화의 완성도를 검증받았다. 내년에 열리는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와 제18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이영애·유재명 등 주연 배우들과 영화산업 관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개봉 이후 아동실종이라는 소재가 지닌 무게와 극중 아동의 불행과 그 불행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어른들을 지켜보는 게 여간 쉽지 않아 1주 앞서 개봉한 ‘겨울왕국’의 흥행돌풍에 묻히는 분위기다. 이 영화는 또 오락적 목적의 장르영화가 아니라 나쁜 놈을 처단하는데 따른 통쾌함도 없다. ‘고구마 백만개 먹은 듯하다’는 관객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 반응에 대한 온도차를 크게 느끼겠다고 하자 김승우 감독은 조심스레 “온도차가 크다”고 인정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배우들이 영화를 좋아해주시고, 그들의 연기에 호평이 쏟아진 것입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당시에는 할리우드 에이전시 관계자와 미팅을 가졌는데, 한국적 이야기라고 생각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줘 문화의 힘, 영향력도 실감했었죠.”

‘나를 찾아줘’는 실종아동을 찾아 나선 한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고, 기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기의 잇속만을 챙기려는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한통의 장난전화가 빚은 참사를 시작으로 영화는 우리사회가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차갑고 잔인한지 그 민낯을 서서히 드러낸다. 특히 ‘각자도생’이 일상화된 이기적인 어른들을 목도하는 일은 때로는 비명과 탄식이 나올 정도로 불편하고 아프다. 하지만 한발만 거리를 두고 보면, 극중 실종아동의 엄마와 대척하는 만석낚시터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여,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김승우 감독은 “관객들이 이렇게 (극중 폭력적 상황을) 세게 느낄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타인의 아픔을 감상하는데 머물지 않길 바랐습니다. 등장인물의 고통이 마치 내 일처럼, 관객들이 그들의 고통을 체험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극 사실적으로 찍었어요.”

이는 우리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경종을 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실종 아동에 대한 이야기도 진정성 있게 하면서 그 아이들을 찾을 수 없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도 다루고 싶었죠. 우리사회 축소판, 그렇게 보였으면 했습니다.”

극중 홍경장(유재명 분)을 필두로 만석낚시터 사람들을 악역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이 단순히 ‘악당’으로 치부되길 원치 않았다. “그들의 모습에 우리 모두의 모습이 조금씩 있지 않을까. 배우들이 실제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보이길 원했죠. 소극장 빌려서 한 달 간 대사 리딩하고 토론도 하면서 천천히 배역의 옷을 입게 했습니다.”

스릴러로 만들 의도는 없었단다. 그는 “소재가 무겁고 위험한 만큼, 사람들의 본성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반응할까, 거기에 중점을 뒀죠. 시스템안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충돌하는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영화 '나를 찾아줘' 김승우 감독(워너브러더스픽쳐스 제공) /사진=fnDB
영화 '나를 찾아줘' 김승우 감독(워너브러더스픽쳐스 제공) /사진=fnDB


'나를 찾아줘'는 김승우 감독이 2008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마켓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다. 수정을 거쳤으나, 집필과 개봉까지 10여년이 훌쩍 지났고, 한국사회에서는 염전노예사건, 세월호참사 등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뉴스자막으로 작게 처리돼 이를 알아본 이는 거의 없으나 극중 정연의 아들이 실종된 날짜는 4월 16일이다. 김승우 감독은 “저 역시 우리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 사건들이 제게 끼친 영향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들고자 해 오히려 특정 사건이 연상되는 흔적을 지웠다"고 했다. 그는 "보편성을 추구했는데, 기존 사건의 이미지가 관객들을 따라 붙는 경우가 있어 저 역시 무서웠다"고 부연했다.

“처음 영화 제목이 ‘아무도 없다’였어요. 지금과 달리 희망은 없고 절망 뿐이었죠. 사람들이 다 죽고 끝나는 결말이었거든요. 시간이 지나 제가 쓴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이렇게 무서운 글을 썼나’ 놀라기도 했죠. 그동안 저 역시 감정의 파고를 켞고, 나이 들고 성장하면서 지금의 희망을 품은 결말로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는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와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하겠다고 고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작품을 하려해도 이 친구(시나리오)가 저를 놓아주지 않았죠. 어느 순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인연을 만났고, 이렇게 세상에 나왔으니 고마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탄생을 견인한 이는 배우 이영애다. “지금의 제작사가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보낸 배우가 이영애였습니다. 이영애 배우가 관심을 보인다고 해 정말 얼떨떨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투자사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죠. 제작사도 상업영화 경험이 많지 않았으며, 저 역시 신인이었으니까, 영화 산업계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죠.”

이영애와 첫 만남을 묻자 그는 “소탈한 만남이었다”고 회상했다. “오픈된 식당에서 만나 소박하게 식사를 했지요. 시나리오를 잘 봤다고 하셨어요. 프리 단계에서 이영애 배우와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는 제가 아이가 없던 시기라 주로 엄마로서 느끼는 본인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줬습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유재명 역시 '나를 찾아줘'에 애정을 표했었다.
“우리가 선택한 작업의 노력들이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물론,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아쉬운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이젠 알게 됐죠. 좋아하는 영화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브로큰백 마운틴’처럼 멋진 영화는 배우를 설레게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오롯이 자리 잡고, 시간이 지나도 역시나 좋은 영화. ‘나를 찾아줘’는 사십대 유재명에게 그런 영화입니다.”
워너브라더스 제공 © 뉴스1 /사진=뉴스1
워너브라더스 제공 © 뉴스1 /사진=뉴스1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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