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운전하며 라디오를 청취하는 중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다. 매주 게스트로 출연하는 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가 한 말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지하철에서 CD 플레이어를 꺼내서 판을 교체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아주 신기한 눈망울로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현재의 기성 세대에게 CD는 상당히 친숙한 음악 저장 장치였다. 카세트테이프와 바이닐 레코드(LP)로 상징되던 것들 사이에서 CD, 그러니까 ‘콤팩트 디스크(광디스크)’라 불리던 작은 원반형의 저장 장치는 많은 트랙을 한 번에 수록할 수 있기에 획기적인 음악 재생 매체가 되었다. 1980년대의 일이다. 더욱이 테이프처럼 늘어지거나 꼬일 일이 없었고, LP처럼 쉽게 긁혀서 음악이 튈 염려도 없었다. 가지고 다니기도 쉬웠고, LP에 비해 부피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CD의 등장은 굉장한 혁명이었고, 음반 산업은 이 매체에 완전히 장악되었다. 가정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시기에 VHS, 즉 비디오테이프가 가진 영향력은 엄청났다. 동네마다 대여점이 있었고, 극장을 대신하는 유일무이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었다. 추후 이 매체는 CD와 유사한 형태 속에 이미지와 사운드가 동시에 저장되는 DVD로 대체되어 꽤 많은 시간 동안 애용되기도 했다. 전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하드웨어 속에 내장된 음악과 영화를 즐기던 그런 시대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최근 필자는 이사를 했다. “무슨 책, CD, DVD가 이렇게 많아요?” 이사 업체 직원의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것들을 짊어지고 이사를 다닌다. CD는 대략 1000장 정도가 있고, DVD는 500장 정도가 있다. 여기에 새롭게 사들이고 있는 LP까지 하면 부피는 더 커진다. 약 600개에 달하는 카세트테이프와 700개 정도의 비디오테이프는 버린 지 오래다.
요즘 누가 이런 것들을 사용하냐고 물을 테다. 맞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다만 당시에 사들인 비용이 아까워서기도 하고, 또 여전히 새로운 시대의 방식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작품 및 앨범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의 걸작이라 칭하는 ‘살인의 추억’ DVD가 있다. 이걸 버려야 할까? 데이비드 핀처의 또 다른 걸작 ‘세븐’도 있다. 과연 이걸 가지고 있어야 할까? 아무튼 사용은 하지 않으나 애착만 있는, 일종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셈이다. 유사한 고민을 가진 지인과 이를 두고 대화한 적이 있다. “아까워서 버리질 못하겠어. 그렇다고 기증을 하려 해도 오랜 세월 깨끗하게 소장한 것들이 쓰레기로 전락할까 두려워!”
과거에는 이렇게 음악과 영화를 소장하고, 시간 될 때 꺼내 보며, 그렇지 않을 때 먼지를 털어 가며 보관한 CD와 DVD는 일종의 자랑거리였다. 컬렉터로서 말이다. 어떤 뮤지션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어떤 영화의 한정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사 취향의 커뮤니티에서는 우쭐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는 이런 게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됐다.
이렇게 세상은 변했다. 포터블 CD 플레이어가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작금의 컴퓨터에는 이걸 구동할 장치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문득 이런 기억이 떠오른다. CD라는 것을 소장하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구매를 해야만 했다. 사실 매번 그걸 사재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2000년대 초반 ‘냅스터(napster)’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P2P 음원 공유 서비스였다. 냅스터는 자신의 CD에서 추출한 음원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올려두고, 또 그것이 필요한 청자들이 받아 사용하는 형식이었다. 일명 공짜 음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 당시에는 MP3 형식의, 그러니까 CD에 저장되는 용량보다는 한결 가벼운 사이즈의 음원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아이팟, 아이리버 등으로 대표되는 MP3 플레이어가 구시대의 유물 같은 CD를 대체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음악 산업에서 저작권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것 역시 냅스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로부터 냅스터는 거액의 소송을 당했고, 오래 유지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MP4 파일로 대변되는 디지털화된 영상 추출 및 제작이 가능해짐에 따라 ‘토렌트’로 잘 알려진 플랫폼이 활성화되었다. 여기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무궁무진하게 존재했다. 엄밀히 말하면 저작권에 위배되는 불법 파일들의 전성시대가 개화된 셈이다. 필자 역시 과거에는 이런 사이트들을 종종 이용하곤 했다. 특히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해외 영화 및 미국 드라마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저작권법의 강력한 적용 하에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콘텐츠들을 즐기고 있을까? 자명한 사실이지만 모든 게 ‘스트리밍’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트리밍은 ‘1995년 리얼네트워크사가 개발한 리얼오디오(아마 기억하는 이들이 있으리라)에서 첫선을 보였다. 인터넷에서 영상이나 음향 등의 파일을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에 다운로드받아 재생하던 것을 다운로드 없이 실시간으로 재생해 주는 기법’이다. 일단 음악에서 이 스트리밍이 먼저 시작되었다. 파일 용량 문제 때문이다. 스트리밍의 초기 단계에서는 ‘버퍼링’이라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그들의 서버에서 나의 하드웨어로 들어오기까지 생기는 시간 간격 때문에 발생하는 끊김 현상 말이다. 이제 그런 걱정은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인터넷,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의 비약적 활성화를 이루어 냈고, 5G 시대를 살아가면서 모든 음악과 영상이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내가 가진 하드웨어 속에서 자유롭게 플레이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트리밍 라이프’를 향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다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차례다. 당신은 어떻게 음악을 듣는가? 또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가? 이 문화를 즐기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공연장을 가고 극장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잖은 돈과 시간이 소요된다. 음악에 있어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즐기는 것만큼 직접적 감흥을 주는 방식은 없다. 영화 역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투영되는 이미지로 즐겨야 제맛이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게 스트리밍이라는 방식을 통해 즐긴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월에 약 1만 원 정도의 돈을 음악을 듣기 위해 지출한다. 엄밀히 말하면 몇 개의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비용은 추가된다. 현재 나는 애플뮤직과 멜론뮤직을 동시에 사용한다. 해외 음악과 국내 음악의 접근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혹은 드라마를 위해서도 유사한 비용을 소비한다. 가장 많이 접속하는 것이 넷플릭스다. 최근 국내 여배우 한효주가 출연하는 미드 ‘트레드스톤’을 보기 위해, 아직 국내에 정식 론칭되지 않은 아마존 프라임 해외 계정에 가입하기도 했다. 당신 역시 나와 유사하지 않을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7호 (19.12.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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