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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더 단순한 디지털 생활…컴포트하고 컴팩트한, 스트리밍 라이프

입력 : 
2019-12-04 14:47:24
수정 : 
2019-12-07 10: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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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론을 논할 때 ‘스트리밍’이라는 단어를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그 방식에 종속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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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 된 소장의 추억

퇴근길, 운전하며 라디오를 청취하는 중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다. 매주 게스트로 출연하는 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가 한 말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지하철에서 CD 플레이어를 꺼내서 판을 교체하는데 어린 친구들이 아주 신기한 눈망울로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현재의 기성 세대에게 CD는 상당히 친숙한 음악 저장 장치였다. 카세트테이프와 바이닐 레코드(LP)로 상징되던 것들 사이에서 CD, 그러니까 ‘콤팩트 디스크(광디스크)’라 불리던 작은 원반형의 저장 장치는 많은 트랙을 한 번에 수록할 수 있기에 획기적인 음악 재생 매체가 되었다. 1980년대의 일이다. 더욱이 테이프처럼 늘어지거나 꼬일 일이 없었고, LP처럼 쉽게 긁혀서 음악이 튈 염려도 없었다. 가지고 다니기도 쉬웠고, LP에 비해 부피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CD의 등장은 굉장한 혁명이었고, 음반 산업은 이 매체에 완전히 장악되었다. 가정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시기에 VHS, 즉 비디오테이프가 가진 영향력은 엄청났다. 동네마다 대여점이 있었고, 극장을 대신하는 유일무이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었다. 추후 이 매체는 CD와 유사한 형태 속에 이미지와 사운드가 동시에 저장되는 DVD로 대체되어 꽤 많은 시간 동안 애용되기도 했다. 전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하드웨어 속에 내장된 음악과 영화를 즐기던 그런 시대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최근 필자는 이사를 했다. “무슨 책, CD, DVD가 이렇게 많아요?” 이사 업체 직원의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것들을 짊어지고 이사를 다닌다. CD는 대략 1000장 정도가 있고, DVD는 500장 정도가 있다. 여기에 새롭게 사들이고 있는 LP까지 하면 부피는 더 커진다. 약 600개에 달하는 카세트테이프와 700개 정도의 비디오테이프는 버린 지 오래다.

요즘 누가 이런 것들을 사용하냐고 물을 테다. 맞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다만 당시에 사들인 비용이 아까워서기도 하고, 또 여전히 새로운 시대의 방식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작품 및 앨범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의 걸작이라 칭하는 ‘살인의 추억’ DVD가 있다. 이걸 버려야 할까? 데이비드 핀처의 또 다른 걸작 ‘세븐’도 있다. 과연 이걸 가지고 있어야 할까? 아무튼 사용은 하지 않으나 애착만 있는, 일종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셈이다. 유사한 고민을 가진 지인과 이를 두고 대화한 적이 있다. “아까워서 버리질 못하겠어. 그렇다고 기증을 하려 해도 오랜 세월 깨끗하게 소장한 것들이 쓰레기로 전락할까 두려워!”

과거에는 이렇게 음악과 영화를 소장하고, 시간 될 때 꺼내 보며, 그렇지 않을 때 먼지를 털어 가며 보관한 CD와 DVD는 일종의 자랑거리였다. 컬렉터로서 말이다. 어떤 뮤지션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어떤 영화의 한정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사 취향의 커뮤니티에서는 우쭐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는 이런 게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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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하고 매체도 변한다 일단 음악 먼저 살펴보자. 필자는 매거진 에디터를 업으로 삼으며 오랫동안 음악 담당을 해 왔다. 그렇다 보니 음반사에서는 신보가 나올 때마다 프로모션용 CD를 꽤 많이 보내 온다. 지금도 내 책상 옆에는 그렇게 배달된 CD들이 쌓여 있다. 아이러니한 건 포장 비닐을 뜯지도 않은 CD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음악을 듣지 않은 채 리뷰를 작성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단지 이 행위 자체가 불필요할뿐더러, 현재 회사 컴퓨터에는 CD를 재생할 수 있는 ‘CD롬’이 존재하지 않는 것 역시 이유다. 예를 들어 콜드플레이의 새로운 앨범이 발매됐다는 소식을 알면 내가 정액 요금제로 가입한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접속해 간편하게 들으면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다 보니, 최근에는 음반 제작사에서도 프로모션 CD 자체를 제작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렇게 세상은 변했다. 포터블 CD 플레이어가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작금의 컴퓨터에는 이걸 구동할 장치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문득 이런 기억이 떠오른다. CD라는 것을 소장하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구매를 해야만 했다. 사실 매번 그걸 사재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2000년대 초반 ‘냅스터(napster)’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P2P 음원 공유 서비스였다. 냅스터는 자신의 CD에서 추출한 음원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올려두고, 또 그것이 필요한 청자들이 받아 사용하는 형식이었다. 일명 공짜 음원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 당시에는 MP3 형식의, 그러니까 CD에 저장되는 용량보다는 한결 가벼운 사이즈의 음원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아이팟, 아이리버 등으로 대표되는 MP3 플레이어가 구시대의 유물 같은 CD를 대체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음악 산업에서 저작권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것 역시 냅스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로부터 냅스터는 거액의 소송을 당했고, 오래 유지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MP4 파일로 대변되는 디지털화된 영상 추출 및 제작이 가능해짐에 따라 ‘토렌트’로 잘 알려진 플랫폼이 활성화되었다. 여기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도 무궁무진하게 존재했다. 엄밀히 말하면 저작권에 위배되는 불법 파일들의 전성시대가 개화된 셈이다. 필자 역시 과거에는 이런 사이트들을 종종 이용하곤 했다. 특히 국내에 개봉하지 않은 해외 영화 및 미국 드라마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저작권법의 강력한 적용 하에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콘텐츠들을 즐기고 있을까? 자명한 사실이지만 모든 게 ‘스트리밍’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트리밍은 ‘1995년 리얼네트워크사가 개발한 리얼오디오(아마 기억하는 이들이 있으리라)에서 첫선을 보였다. 인터넷에서 영상이나 음향 등의 파일을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에 다운로드받아 재생하던 것을 다운로드 없이 실시간으로 재생해 주는 기법’이다. 일단 음악에서 이 스트리밍이 먼저 시작되었다. 파일 용량 문제 때문이다. 스트리밍의 초기 단계에서는 ‘버퍼링’이라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그들의 서버에서 나의 하드웨어로 들어오기까지 생기는 시간 간격 때문에 발생하는 끊김 현상 말이다. 이제 그런 걱정은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인터넷,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의 비약적 활성화를 이루어 냈고, 5G 시대를 살아가면서 모든 음악과 영상이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내가 가진 하드웨어 속에서 자유롭게 플레이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트리밍 라이프’를 향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다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차례다. 당신은 어떻게 음악을 듣는가? 또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가? 이 문화를 즐기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공연장을 가고 극장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적잖은 돈과 시간이 소요된다. 음악에 있어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즐기는 것만큼 직접적 감흥을 주는 방식은 없다. 영화 역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투영되는 이미지로 즐겨야 제맛이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게 스트리밍이라는 방식을 통해 즐긴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월에 약 1만 원 정도의 돈을 음악을 듣기 위해 지출한다. 엄밀히 말하면 몇 개의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비용은 추가된다. 현재 나는 애플뮤직과 멜론뮤직을 동시에 사용한다. 해외 음악과 국내 음악의 접근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혹은 드라마를 위해서도 유사한 비용을 소비한다. 가장 많이 접속하는 것이 넷플릭스다. 최근 국내 여배우 한효주가 출연하는 미드 ‘트레드스톤’을 보기 위해, 아직 국내에 정식 론칭되지 않은 아마존 프라임 해외 계정에 가입하기도 했다. 당신 역시 나와 유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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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라이프와 뉴트로 트렌드 스트리밍 방식이 완전히 대중화됨에 따라 이제 어떤 저장 장치에 담긴 제품들을 굳이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고 소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당신의 스마트폰을 한번 살펴보길 바란다. 나에게 국한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정된 스마트폰 저장 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음악 파일이었던 적이 있다.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로 저장된 음악들이 아까워 전화기를 교체할 때마다 고스란히 새 폰에 담아 뒀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내 모바일 속에는 단 한 곡의 음악도 저장되어 있지 않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스트리밍 앱에 접속해 클릭만 하면 되니까. 영화도 그렇다. 굳이 현재 극장 상영작이 아니라면 IPTV를 통해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그걸로 끝이다. 대부분의 가정은 지역 케이블뿐만 아니라 각 통신사와 약정된 금액으로 이용하고 있는 IPTV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TV 채널만 있는 게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의 다시 보기 기능이 있고, 수많은 영화가 즐비하다. 심지어 극장 동시 상영작들도 있다. 굳이 영화를 극장에 가서 봐야만 한다는 원칙이 있지 않다면 1인 입장료 금액으로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 같은 라이프 스타일은 앞에서 필자가 사고 소장하며 즐겼던 문화 소비의 방식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새로운 시대의 방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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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방식이 일종의 저작권 침해를 초래하는 불법적 행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스트리밍 라이프는 그것이 월정액이든 하나 당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던 간에 정당한 소비의 일환이 되었다. 이것이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애초에는 부정적으로 치부되었으나, 산업 역시 이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참, 여기에서 빠트린 플랫폼이 하나 있다. 바로 유튜브다. 필자는 매거진 일을 하다 잠시 문화를 만드는 기업의 마케팅을 담당한 적이 있다. 당시의 고위직 임원이 K-pop 한류를 주제로 한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너희는 요즘의 20대가 어디에서 음악을 듣는지 아니?”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이들은 대부분 “멜론, 엠넷, 네이버 아닌가요?”라며 당당히 답했다. 우리 세대에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모양이다. 정답은 ‘유튜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유튜브는 광고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문화 콘텐츠에 큰돈을 쓰기 어려운 밀레니얼 Z세대가 공짜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그게 맞았다. 하지만 현재는 유튜브 역시 저작권에 대해 더욱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액 요금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재개하고 있다. 각설하고 이제 유튜브 역시 우리네 스트리밍 라이프를 선도하는 플랫폼이 되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스트리밍은 각종 문화를 소비하는 선두적 방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를 위해서는 랜선으로 연결된 PC도 필요 없고, 어떤 특정 파일을 재생할 플레이어도 필요 없다. 단지 손 안에 잡히는 모바일 하나만 있으면 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 드물 정도니 말 다한 거지 않나. 너무도 편리하게 문화를 소비하게 된 시대의 반대급부가 어쩌면 바로 뉴트로(Newtro) 트렌드일지도 모른다. 너무 편리하고 빠르게 모든 걸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조금은 더 느린 방식으로 이것들을 즐기고 싶은 이들 때문에 발현된 그런 문화 소비 방식 말이다. 그래서 스트리밍과는 격이 다른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레코드, 블루레이 DVD 시장이 일종의 ‘니치 마켓’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오로지 스피드에 의한 편리성만을 추구해 온 삶. 역으로 그것이 불편해진 아이러니한 상황. 태어나면서부터 스트리밍 라이프에 길들여진 시대의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일종의 문화적 운동이 바로 뉴트로 트렌드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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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먼지 쌓인 CD 케이스들을 다시금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화질이 떨어질지라도 DVD 플레이어에 나의 애정 영화들을 삽입하기도 한다. 쌓아 두기만 하면 쓰레기지만 이용하면 나의 라이프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전히 스트리밍 라이프는 바쁜 삶 속에서 약간의 짬을 내도록 하는 순기능을 하고, 대세적 방식으로 나의 삶에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닐 레코드를 듣고, CD 부클릿을 바라보며 음악을 감상할 때의 완전한 향유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파편화된 음원들로 음악을 접하다 보니, 곡의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동어반복적이지만 그렇기에 스트리밍을 이용하면서도 또 다른 옛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건 스트리밍임에는 틀림없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7호 (19.12.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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