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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레시피] 승진과 좌천의 직장 인생극

입력 : 
2019-12-04 14: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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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시즌에는 승진한 자와 승진에서 누락한 자 모두에게 배울 점이 있다. 그저 술 한 잔 따르면서 승진한 상사에게 무한궤도의 아부를, 승진에서 탈락한 상사에게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공허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겉으로는 그렇게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나의 1년 혹은 3년 뒤’를 그려 보아야 한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는 모두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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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인생극, ‘남의 일’이 아니다

직장은 지금, 인사철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있지만 직장인에게는 1년 동안의 성과를 평가받는 엄중한 시기다. 승진도 있고, 마치 재수를 하듯 올해도 명함 교체할 일 없는 직장인도 많다. 저녁마다 승진과 영전 축하 회식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올해로 3년째 부장인 상사를 모시는 직장인에게는 괴로운 시기다. 사실 평사원, 대리 혹은 과장급까지는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이런 모습들이 그리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직급까지는 치열한 사각의 링에 서지 않아도 에스컬레이터를 탄 듯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직장인에게는 ‘인사철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저 연례 행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남의 일일지도 모른다.

직장인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연봉 인상과 함께 승진이다. 승진은 나의 노력, 능력, 성과를 회사 혹은 상사라는 ‘갑’이 알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정받는다는 것, 그것은 미래의 보이지 않는 담보다. 담보는 클수록 좋고 혹여 나중에 위기가 닥쳐도 상쇄가 가능한 무형 자산이다. 물론 가마니처럼 가만히 앉아서 담보를 쌓을 수는 없다. 동기, 선배 혹은 후배와도 차별되는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승진에 기뻐하고 좌절하는 상사나 선배들의 모습에서 ‘나의 미래’를 가늠해야 한다. 인사철이면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들은 어쩌면 ‘직장 농사’의 성공과 실패의 살아 있는 교훈이고,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특급 과외 선생이기 때문이다. 시간처럼 빠른 것이 없다. 흔한 이야기로 20대는 시속 20km로, 30대는 시속 30km로 시간이 흐른다고 비유한다. 그만큼 주어진 시간보다 지나가는 시간은 경력이, 직급이 올라갈수록 빠르다. 이는 유효 기간과 비슷하다. 신입 사원은 누구나 유효 기간이 길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면 나의 유효 기간이 짧아진다. 직장인으로서의 유효 기간을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때를 놓치지 않고 승진하는 것이다. 평사원으로 5년, 대리로 3년, 과장으로 3년…. 이런 식으로 직장은 구성원 모두에게 생각보다 짧은 유효 기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인사철에는 승진한 자, 누락된 자 모두에게 배울 점이 있다. 그저 술 한 잔 따르면서 승진한 상사에게 무한궤도의 아부를, 승진에서 탈락한 상사에게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공허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비록 겉으로는 그렇게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나의 1년 혹은 3년 뒤’를 그려 보아야 한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의 ‘나의 모든 것’을 복기해야 한다. 보일 것이다. 성과도, 실수도, 처세도, 리더십도. 그 모든 것을 종합해 장점은 더 강하게 단련하고 약점은 보완할 ‘나만의 액션 플랜’을 작성해 보자.

내일 당장 사표 내고 떠나야 할 직장은 없다. 진상 같은 부장 얼굴에 사표를 확 던지고 당당하게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아도 ‘내가 사표를 낼 수 없는 이유’를 찾아보면 108가지도 넘는 것이 직장 생활이다. 적어도 내년 인사철에 2019년과 똑같은 모습이 당신과 당신 주변에서 벌어진다면 당신의 직장 생활 혹은 1년간의 직장 처세는 49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회사는 현미경이지만 직원 모두를 지켜보는 세밀한 관찰자는 아니다. 무기의 사정 거리처럼 각 직급별로 지켜보는 사정 거리가 있다. 대표는 최소 부장급 이상만 지켜보고 점수를 매기고, 임원은 팀장급 이상만 체크한다. 물론 부장은 자신이 맡은 부서의 모든 직원을 살펴본다. 이는 각 직급별로 처세의 연결 대상 혹은 나의 성과를 알아줄 ‘인사 평가자’를 찾는 포인트인 것이다. 엄한 곳에서 엉뚱한 사람에게 힘을 빼는 일도 없어야 하고, 조직과 상사는 산으로 가는데 나 혼자 바닷가를 헤매는 우매함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처세학, 즉 ‘회사의 목표는 어디인가’를 파악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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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은 ‘불완전한 동거’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사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계속 서쪽으로 가는 부하 직원을 예쁘게 볼 상사는 없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친절하지 않다. 그들은 친절, 즉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행동과 말이 권위와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이 산이 아닌가 보다. 내려가자”는, 리더십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상사의 의중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답은 상사의 평소 언행에 있다. 그가 현재의 지위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학습하는 것도 방법이다. 과거의 행적은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목표가 있는 상사는 지속적, 반복적으로 그 목표를 드러낸다. 물론 진짜 야망이 있는 상사라면 그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진짜 목표’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때 직장인이 범하는 가장 위험한 짓은 ‘나의 시선’으로 상사의 목표를 예단하는 것이다. “부장님의 목표는 기획 관리 이사 승진일 거야”, “이번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에 부장님이 중점을 두는 것은 A플랜일 거야”, “역시 부장님은 박 차장을 싫어하는군. 앞으로 박 차장과는 거리를 두고 밥도 같이 먹지 말아야지”라는 짐작은 자칫 “내 의중도 모르고 일을 하는 직원이군” 하는 억울한 소리를 듣게 할 수도 있다.

전쟁에서 고지를 점령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는 것은 그 고지를 올라간 보병의 역할이지만 승리의 뒤에는 포병, 공군, 정찰 등의 지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장 생활은 바로 이 ‘고지전’이다. 눈에 보이는 아군뿐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직장 생활은 ‘불완전한 동거’다. 심복하거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동료 혹은 상사와의 동거에서 눈살을 찌푸리지 말아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당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고 확산해야 한다. 그것이 상사의 의중을 정확히 몰라도, ‘관계에 의해 맺어진 모두와의 동거’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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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동기의 표정을 살펴라 동기는 많다. 학교, 군대, 직장 등등에서 맺어지는 특별한 인연이다. 함께 출발한다는 의미다. 끈끈한 우정도 생긴다. 하지만 직장 동기는 동반자이며 경쟁자이다. 입사해 같이 연수받고 대리, 과장까지는 큰 차이 없이 승진하지만 차장, 부장을 거치면서 직급에서 차이가 벌어지면 동기라는 말은 무색해진다. 동기생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 동기생 중에서 선두를 치고 나가는 이의 승진, 당연히 덕담 꽃이 활짝 피는 축하 파티를 벌일 수 있다. 나는 과장인데 동기가 차장 정도라면 처세에서 별 어려움이 없다. 고개 숙일 수 있다. 직장 생활에서 이 정도의 굴곡과 부침 없이 ‘별’을 단 직장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승진 당사자다. 부장으로 또는 이사로 승진하는 경우라면 동기생의 시기와 질투가 숨겨진 축하의 속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 바로 겸손이다. 고개를 더 숙이고 실력보다는 운이, 능력보다는 그저 성실함으로 승진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마음속에 ‘니들은 죽어다 깨어나도 나를 못 따라올 거야. 말만 동기지’라는 생각이 있어도 그것을 숨겨야 한다. 동기는 생각보다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마치 “난 지난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처럼 말이다. 그들의 질투심과 시기심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박 부장은 승진할 만한 인품과 실력을 갖추었지”라는 인정은 못 받아도 최소한 적으로는 만들지 말아야 ‘성공한 동기’가 될 수 있다.

날카로운 칼은 주머니에 있어도 그 예리함이 드러나고 사향은 아무리 감싸도 냄새를 풍긴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에서 가장 조심할 때는 빠른 승진, 높은 평판 그리고 과도한 칭찬을 받는 순간이다. 인생은 공평하다. 높고 낮음을 서로 메우면 고저가 없고 들고 남을 저울에 달아보면 똑같은 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조직은 생물이다. 의외로 변수도 많고 다양한 형태로 변환한다. 그 이유는 회사를 운용하는 시스템의 최종 ‘엔터 키’를 누르는 것이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명예와 권력과 돈을 모두 가질 수 없고 설사 그것을 얻어도 그 유통 기한은 생각보다 짧다.

직장인들은 다 알고 있다. 회사의 자리 중에서 명예직인 것과 회사의 핵심으로 성장할 자가 거쳐야 하는 힘 있는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명예직에서 힘 있는 자리로 가기 위한 통로는 매우 좁다. 그 이유? 회사는 선례를 남기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 은퇴로 가는 직전 단계의 자리는 그 결과가 은퇴로 남아야 하는 것이 ‘효율’을 중시하는 회사가 조직을 운용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예외는 존재한다. 그래야 ‘열심히, 성실히, 충성스럽게, 자발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그 어떤 회사도 ‘명예와 힘 두 가지 선택지’를 조직원에게 주지 않는다는 잘 알고 있다. 병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예의 선택지가 주어지면 그것은 연착륙이고, 힘이 주어지면 더 높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높이 나는 것보다 오래 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복기해 보자. 나는 과연 어떤 길로 가고 있는 것이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럼 내 직속 상사를 바라보라. 그가 바로 나의 몇 년 뒤 모습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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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독립 채산제다 인턴이 정식 사원이 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이 쉬운 세상이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직급이 분화될수록 오히려 신분 상승은 어려워진다. 일정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승진했던 과거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회사 구성원은 다양하다. 공채 출신, 경력 출신, 계약직에서 정규직 등 그 출발선이 다르다. 그것에 따른 확실한 프리미엄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회사다. 회사는 열린 집단이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평가는 변할 수 있다. 이른바 삼류 지방 대학 경력 출신으로 회사에 들어와도 단번에 신분 상승을 할 기회는 주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동물적인 감각과 집요함,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이다. 항상 생각하고 또 판단해야 한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내년에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똑같은 조건에서의 게임은 공채 기수나 부서 에이스들의 몫이다. 그들이 이미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전투에 참여해 패배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새로 벌어질 게임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직장은 이익을 극대화 또는 지속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안에서 내가 참여할 순간과 분야를 선별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 능력은 업무 끝나고 학원에서, 책이 그리고 선배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오직 나의 능력과 판단으로 가늠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 생활은 어쩌면 독립 채산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옛날 맘모스 한 마리 잡아서 모두 모여 사이 좋게 나눠 먹는 훈훈한 원시 사회가 아니다. 자칫하면 얼굴에 철판 덮은 뻔뻔한 동료나 상사가 눈앞에서 공을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바로 직장이다. 훈수 몇 마디 두었다고 동료가 자신의 성과와 이익의 연판장에 당신의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휴지통에 버려라. 온 힘과 신경을 집중해라. 술자리에서 괜히 똑같은 B등급끼리 푸념만 늘어놓지 말고 말이다.

▶후배를 상사로 모시는 기간이 진짜 승부

직장은 1년이 지나도 도로 1학년을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느덧 후배가 먼저 2학년, 3학년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즉 후배나 나이 어린 상사를 모셔야 하는 인사 발령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조직에서는 승진한 후배 상사의 원활한 리더십 발휘를 위해 1학년인 선배를 다른 부서로 보내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배려를 하는 회사도 그리 흔치 않다. 이 경우 선택은 오로지 1학년 선배의 몫이다. 후배지만 직급이 높으니 호칭부터 모든 것이 어색하다. 후배 상사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선택은 단 두 가지다. 당당히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 하지만 ‘직장이 정글이라면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처럼 그런 결단력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나이 어린 군대 고참 모셨다는 각오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고도의 처세 스킬이 필요하다. 매일 “너 사회에, 혹은 밥상에 불만 있니” 소리가 절로 나올 우거지상 얼굴로 다니지는 말아야 한다. 마음에 없는데 간신처럼 웃고 다니라는 것도 아니다. 당당하게 일에 임하고 처신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후배 상사의 직급을 부를 때도 말끝을 흐리지 말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정확하고 바르게 상사로서 예우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후배 상사도 마음의 부담감을 덜게 된다. 상사가 당신의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오로지 선배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부담을 느끼는 순간, 당신이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도 B학점 이상 받을 수 없다.

K그룹의 A상무 이야기다.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 흰머리가 새치처럼 나더니 이내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처음에는 염색도 하지 않고 패션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녔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한 실력파이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 임원으로 승진하더니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염색도 하고 옷도 세련되게 코디하는 등 한마디로 젊어졌다. ‘바람이라도 났나’ 하는 주변의 의심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원이 되자마자 회장님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2세가 사장이 되었어. 물론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지. 그래도 날 때부터 2세고 회사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했으니 어색하지는 않았지.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내가 늙은이처럼 보이는 거야. 흰머리에 옷도 그저 블랙, 블루, 그레이 양복 교대로 입고. 그런데 문제는 사장 회의 때 2세가 임원들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느꼈어. 아버지의 가신들이고 나이도 많으니 당연하겠지.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냈지. 우선 외모라도 바꿔 보자고. 염색하고 머리 스타일, 패션도 바꿨더니 2세 사장이 나를 조금씩 편안하게 대하더라고. 아마도 내 변화된 모습에서 나이 많은 임원이라는 선입견이 사라진 것 같아.”

A상무의 말은 처세술에 있어 당연한 말이다. 이왕 하려면 젊게, 능동적으로, 그러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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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조선 시대 태종의 최고 참모는 하륜이었다. 하륜의 경륜은 고려 말 권신 이인임에게 배운 것이다. 하륜은 목은 이색 문하로 신흥 사대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이인임 등 훈구파와도 반목하지 않았다. 학문적으로 이색에게 배웠지만 실제 살아 움직이는 정치 세계는 당대 권력가인 이인임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다. 이인임은 하륜을 아꼈다. 그리고 그에게 정치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정치는 딱 두 부류다. 하나는 적이고 또 하나는 도구다.”

하륜은 진영 논리로 자신을 규정짓고 파당을 형성하고 사적인 모임을 만들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대로 몸을 움직였고 그 안에서 사고의 유연성과 쓸 데 없이 적을 만들지 않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 하륜은 생각했다. “정치판을 보니 적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아군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착하지 않다”라고. 직장인은 알게 모르게 많은 모임에 속하게 된다. 학연, 지연은 당연하고 어떤 부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느냐에 따라 평생을 따라다닐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직장인이기 전에 하나의 자연인으로서 사회적 집합체에 속하고자 하는 본능이 인간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이마에 딱지를 붙이고 다니듯 표 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 친구는 박 이사 라인이지”처럼 누구나 ‘나를 쉽게 규정’지을 수 있는 직장 생활 또한 처세에서 실패다. 물론 양다리를 걸치거나 ‘나는 오로지 앞만 보고 일만 하겠다’는 우직함 또한 그리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조직이나 모임의 그늘에 숨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런 당당함은 유연함과 같이할 때 더욱 빛을 낸다. 조직은 오케스트라다. 지휘자인 부서장은 구성원들의 협연으로 소리, 즉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한다. 한 악기가 오케스트라의 전체 음을 거역한 채 튀거나 역행하는 것을 용납하는 지휘자는 없다. 다양한 소리, 나와 다른 의견과도 어울릴 수 있는 현실 감각에 바탕을 둔 유연성을 기르는 것, 그것이 조직에서 우선 필요한 처세학이다.

태종의 장자방 하륜을 더 인용해 보자. 하륜이 태종의 다른 수많은 공신들보다 가장 뛰어난 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가장 현실적이어야 한다’라고 여긴 점이다. 그는 시대를, 상황을 바라볼 때 항상 유연했고 현실에서 결코 발을 떼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500년 전 인물이지만 하륜의 처세에서 배울 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적을 만들지 마라 적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쓸데없는 고집과 독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즉 마음에 오래 남는 말로 질책하거나 모욕을 주는 언행은 내 주위를 온통 적으로 만든다.

▷나를 쉽게 드러내지 마라 목표 혹은 이념, 성향 등을 드러내 남들이 나를 쉽게 판단하고 규정짓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내 실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상대에게 선입견과 나에 대한 대책을 알려주는 것이다. 10을 알고 있다면 7 혹은 8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말하기보다 많이 들어야 한다.

▷예스, 노를 분명히 하라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의 결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당장 불편할 수 있으나 오해를 만들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신중한 처신을 한다는 생각에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유부단함과 무능력으로 연결된다. 이런 태도가 지속되면 누구라도 당신을 함께 일하고 싶은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다.

▷능력과 충성심은 한 곳에 집중하라 회사에서는 1순위가 조직 그리고 상사를 위해, 자신의 부서를 위해 노력하고 실적을 내는 것이다. 쓸데없는 배려와 명분으로 당신의 능력을 타 부서나 아무 이해관계 없는 직원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힘의 낭비다. 상대는 당신의 이런 배려조차 ‘당신의 과시욕’ 혹은 푼수 같은 ‘오지랖’이라고 단정한다.

▷1등의 등 뒤에서 결코 추월하지 마라 강한 오너십 혹은 능력 있는 부서장 조직일수록 1등이 되려는 생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야망은 감춰야 한다. 선두는 뒤에 따르는 자들에게 세찬 바람이 분다는 것을, 혹은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돌이 있거나 푹 빠질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이것을 감수하고 계속 달릴 수 없다면 선두로 나서는 결단을 쉽게 내려선 안 된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하라 선택의 기준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눈높이와 능력의 한도 내에서 실행 방법을 찾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최선의 선택이다. 물론 명분과 실리를, 명예와 힘을 다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조직은, 세상은 다 주지 않는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7호 (19.12.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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