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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아람코(ARAMCO) 기업공개가 시사하는 것

입력 : 
2019-12-09 00:02:01
수정 : 
2019-12-09 17: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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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는 특정 소수가 소유하고 있던 회사의 주식을 공개 모집을 통해 일반인에게 파는 것이다. 대규모 자금조달이라는 이점이 있으나 경영 정보 공시 등 시장에서 많은 감시를 받게 된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세계 굴지의 회사가 많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기업공개를 발표했다. 아람코는 원래 엑손모빌 등 미국계 정유사가 주주였으나 진통 끝에 어렵게 국유화해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100% 소유하고 있다. 시장가치가 약 1조7000억달러로 추정돼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엄청난 회사다.

사우디아리비아 정부는 이번 기업공개 결정에 대해 "과도한 석유산업 위주에서 벗어나 다원화된 경제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 역학적 배경이 숨어 있다. 향후 에너지의 석유의존도가 낮아지게 되면 미국 등 강대국은 굳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 문제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미리미리 국제 투자자들과 공동 이해관계를 맺어 놓아 유사시 레버리지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국가의 최우선 정책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힘이 센 강대국들은 목재, 석탄, 석유 등 그때그때 필요한 에너지를 찾아다녔다. 민족, 종교 간 갈등을 이용하고 외교적 약속을 남발했다. 영국은 윤활유가 사용되기 이전인 19세기 초 기계를 돌리는 데 필요한 야자수 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아샨티왕국 분쟁에 개입하고 끝내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국제 미아가 된 터키 지역의 쿠르드족도 연합국 측 독립 약속을 믿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해 공을 세웠으나 그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서 그 약속은 없던 게 됐다.

에너지 시장에 큰 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규모 셰일가스층이 발견되고 태양열, 수소 등 대체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석유가 곧 에너지'라는 등식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어렵게 대규모 유전을 찾거나 석유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남의 나라 문제에 굳이 간여할 필요가 없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돼도 자국 우선주의 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국제 정세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은 최근 저서에서 "셰일혁명으로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주의와 안보동맹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움직임과 한국, 일본 등 우방국과의 방위비 협상 논의는 그의 말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강대국들의 '보호주의' 물결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다. 우리 수출은 수시로 관세보복 조치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외국인들이 직접 한국에 와서 우리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하면 그 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각 개인의 기호에 관한 사항은 국가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팝에 매료된 외국인들은 기회만 되면 우리나라를 찾고 싶어한다. 2012년 정부가 제출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도, 제주도의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도 백지화됐다. 한류 이외에 외국인들이 보고 즐길 게 거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내부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번 아람코 기업공개에 이어 외국인 관광비자도 지난 9월부터 사상 처음 허용했다. 우리도 이제 생각을 확 바꿔야 한다. 관광, 의료, 교육 부문의 규제개혁과 개방이 시급하다.

[신제윤 태평양 고문·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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