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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주 52시간제, 입법적 보완 시급하다

입력 : 
2019-12-09 00:03:01
수정 : 
2019-12-09 17: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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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어야 저녁이 있는 삶이 된다. 소득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게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근로자의 말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2020년 1월 1일부터 50인 이상 299인 이하 중소기업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약 4만5000개의 사업장이 근로시간을 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16시간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현장은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 지난 10월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에서 중소기업의 65.8%가 아직 주 52시간제를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주 52시간제 시행 시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상승, 인력 부족, 생산 차질 등 어려움을 호소한다. 일부 기업들은 사업장을 50인 미만으로 쪼개거나 동종 업계 간 직원을 맞바꾸어 추가 근로에 투입한다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생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도입 시 근로자 1인당 월 33만4000원의 급여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소득수준 유지를 위해 퇴근 후 대리운전과 같은 투잡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필자는 여러 중기단체장들과 국회 여야 원내대표를 방문하여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비한 입법 보완을 요청하고, 동반자인 노동계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해 한국노총도 방문하였다.

정부도 주 52시간제 시행에 국회의 입법적 보완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계도기간 부여와 특별인가연장근로 확대 등 일부 해결책을 내놨다. 하지만 현장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한다. 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은 입법적 해결이다.

모든 산업현장을 주 52시간제라는 경직된 노동 틀에 맞추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업종별 특성과 산업현장의 상황에 맞게 노사가 합의하여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선 노사정이 합의한 탄력근로제를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고, 스타트업, 신기술 개발 등 단시간 집중근로가 생존과 직결되는 현장이 활용 가능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려야 한다.

원·하도급 구조에서 긴급 수주, 설비 특성상 작동 중지가 불가능한 경우 등 기업이 자력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 발생 시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적 장치도 시급하다. 정부가 제시한 특별인가연장근로 확대도 요건만 맞으면 언제든 활용 가능토록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할 경우 추가 연장근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만 가능하지만 일본은 노사 합의 시 기본 연장근로시간의 두 배가 넘는 월 100시간, 연 720시간까지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이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수준에서 보다 넓게 노사 자율을 존중하는 제도로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은 필요하다. 중소기업도 지키겠다는 의지가 명확하다. 하지만 기업의 대외경쟁력 확보도 중요하고, 생계 때문에 연장근로를 희망하는 근로자의 권리도 존중하여야 한다. 국회가 조속한 입법 보완을 통해 중소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주 52시간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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