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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칼럼

[매경데스크] 혁신경제 사망 선고 내린 한국

이근우 기자
입력 : 
2019-12-09 00:05:02
수정 : 
2019-12-09 17: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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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6일 전체회의를 열어 여객운수법 개정안, 일명 '타다금지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때에는 관광 목적으로서 대여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 또는 반납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에 따라 타다는 출범 1년 2개월 만에 사실상 시동이 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택시업계의 편을 든 국토교통부는 물론 소비자 편익과 경쟁 촉진을 위해 타다 영업 자체를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던 공정거래위원회조차 '반대'에서 '찬성'으로 말을 바꿨다. 타다금지법은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만 거치면 일사천리로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

국토교통위는 이날 택시운송사업자들을 위해 '현행법의 예외 규정들을 활용한 사업 추진을 제한'하는 게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국회, 정부 방침이 확고해지면서 검찰의 타다 불법 기소로 인해 시작된 형사재판도 속도가 붙게 됐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우버나 그랩 등 모바일앱을 활용한 공유경제의 사회적 편익이 얼마나 크며, 대단한 기술적 진보만 혁신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며, 소수의 목소리 높은 이익집단보다는 말 없는 다수 소비자의 편익을 우선해야 하며, 경쟁에 밀려 가난해지면 그 직업을 보호할 게 아니라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 허용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금지하는 현행법 체계상 예외 조항을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교과서적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심지어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수십만 택시운전사가 입는 피해를 방치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적어도 택시운송사업자가 아닌 택시기사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타다와 같은 모빌리티기업이 어떤 이익을 얻고, 소비자 후생은 규제 도입으로 인해 어떻게 변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더 안타까운 것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대해 남의 일인 양 외면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이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겠지"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우리 밥그릇만 지키면 된다" "나는 버틸 테니 너희는 변해야지"라며 외면하는 '버티자 신드롬'이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해서, 평생 그렇게 버틸 수 있을까. 4차산업혁명위원장인 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자는 지난달 대정부 권고안에서 "정부가 기득권을 국내 시장의 틀에서 조정하려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막강한 자금력과 경쟁력을 앞세운 해외 신생기업이 갑자기 출현해 시장을 과점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인공지능에 따른 업무 대체에 앞서, 해외 기업의 경쟁력 배가에 따른 우리 기업의 도태, 도산, 그리고 일자리 상실을 염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케아는 한국 진출 5년 만에 매출 5000억원, 매장 방문객 85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완제품 가구 판매가 아니라 플랫 박스 형태로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가져다 조립할 수 있게 해서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춘 아이디어 혁명이다. 이케아가 전국에 매장을 열고 조립식 주방 맞춤 서비스에 이어 욕실 맞춤까지 준비하는 사이 한샘 주가는 33만원에서 6만원까지 급락했다.

그게 우리가 처한 운명이다. 역사에 정해진 미래란 없다. 사람들이 내린 선택들, 그 하나하나가 모여 운명이 된다. 개개의 선택들이 모여 결정이 되고, 결정이 쌓여서 다시 의미를 가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렇게 해서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이 생겨나고 운명으로서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운명의 여신은 자신에게 순응하는 자는 데리고 가고, 거부하면 머리채를 끌고 간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타다 사망 선고, 그게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주곡이 아닌가 싶다.

[이근우 모바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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