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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고약하다는 치매 질환…난공불락 정복 나선 K바이오

  • 명순영, 류지민 기자
  • 입력 : 2019.12.09 11:31:38
  • 최종수정 : 2019.12.15 15:47:10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민서 씨(가명·50)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85)를 모시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그간 요양원에 모셔왔으나 직접 모시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간병비는 나머지 가족이 부담하기로 했다. 간병 초기에는 “부모에게 못다 한 효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모셨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만에 지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지는 오래됐다. 밤중에도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는 통에 김 씨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김 씨는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며 “힘들어 치매 환자보다 먼저 죽을 것만 같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 씨처럼 치매를 앓는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숨겨진 환자’라고 한다. 현 의료술로는 환자 가족이 치매가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 어렵다. 게다가 오랜 기간 수발을 들어야 해 본인 건강이 나빠지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진다. 온종일 치매 가족을 돌보려면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따라온다. 이로 인해 간혹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이런 이유로 암보다 더 고약한 것이 치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치매 환자는 증가일로다. 지난해 75만명이었던 국내 노인 치매 환자가 2060년 332만333명으로 4.4배 증가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환자는 늘어나는데 치료제 개발 소식은 더디다. 최근 글로벌 거대 제약사들이 잇따라 치료제 개발에 두 손을 들며 완치의 꿈을 꿨던 업계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미국 생명공학 기업 바이오젠은 지난 3월 개발 중이던 알츠하이머 치료 후보물질 ‘아두카누맙(aducanumab)’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했다.

그간 주요 제약사들은 알츠하이머가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거나 생성을 억제해 치매 치료 또는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치료제를 개발해왔다. 아두카누맙 역시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알츠하이머 진행을 억제한다는 기전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앞서 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 가설을 바탕으로 치료제 개발을 추진해왔지만, 지금까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지난 2016년 말, 릴리의 단클론항체(잠깐용어 참조) ‘솔라네주맙(solanezumab)’도 쓴맛을 봤다. 베타 아밀로이드 제거 효과를 노리며 2100명 환자를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진행했으나, 위약 대비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보다 앞선 2013년 화이자 ‘바피뉴주맙(bapineuzumab)’ 역시 3상에서 무너졌다.

MSD도 2017년 초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로부터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이 무효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같은 해 2월 초기 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중단됐다. 존슨앤드존슨과 로슈 역시 임상시험을 포기했다.



▶새로운 기전으로 치매 공략

▷16년째 미국 FDA 승인 0건

2003년 이후 16년간 미국 FDA의 신약 허가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는 0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치매 치료제 역시 치료보다는 억제와 진행 지연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그동안 치매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이 잘못됐다는 판단에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은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치매 공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줄기세포, 천연물, 펩타이드 등 다양한 방법의 치매 치료제 개발이 활기를 띠며 ‘치매 정복’이라는 원대한 도전에 K-바이오가 선봉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아리바이오가 개발 중인 치매 신약 ‘AR1001’은 치매가 신경세포가 죽어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점에 착안해 손상된 뇌세포를 회복시키는 데 집중했다. 베타 아밀로이드 감소에 주력하는 다른 치료제와는 다른 접근이다. 치매 환자는 뇌의 신경세포가 죽고 시냅스 가소성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신경세포의 사멸과 시냅스 손상에 관여하는 효소를 억제해 인지 기능과 기억력을 개선시키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 FDA 임상 2상을 진행 중인 AR1001은 국내 제약사의 치매 치료제 후보물질 가운데 FDA 임상 개발의 진척도가 가장 앞서 있다. 실제 임상시험에서도 치매 증상의 진전을 막을 뿐 아니라 손상된 뇌신경 세포와 뇌혈관 세포를 일정 부분 회복시키는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치매 환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혈관성 치매에 더욱 효과가 뛰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젬백스의 신약 후보물질 ‘GV1001’ 역시 완전히 새로운 기전의 치매 치료제다. 치매에 걸리면 인지 기능이 점차 떨어지고 기억 감퇴 증상이 나타나는 등 노화 현상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노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텔로머라아제(DNA 조각인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와 치매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GV1001은 인간 텔로머라아제에서 유래한 16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펩타이드(peptide)다. 염색체 끝부분에 존재하는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해주는 기능을 한다. 임상 결과 손상된 신경세포에 GV1001을 투약했을 때 비교 물질인 생리식염수보다 세포 재생 효과가 5배 이상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오병용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FDA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는 4개뿐이며, 그나마도 모두 증상을 조금 늦추는 약일 뿐 제대로 된 치료제는 전무한 상황이다. GV1001은 세포 노화를 늦춰 치매를 치료한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성과를 내고 있다. 2020년부터는 치매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치매 치료제 개발에 뛰어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치매 치료제 개발에 뛰어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늘고 있다.



▶천연물·줄기세포 활용 박차

▷부작용 낮추고 성공 가능성 높이고

K-바이오의 경쟁력이 잘 드러나는 것은 천연물 소재를 활용한 치매 치료제다. 최근 신약 개발에서 잇따라 실패의 쓴맛을 본 글로벌 빅파마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도 바로 천연물이다. 실제 동아에스티는 지난해 1월 전임상만 마친 천연물 기반 치매 치료제 ‘DA-9803’을 미국 뉴로보에 기술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 2013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치매 전문 연구센터인 동아치매센터를 설립하고 천연물 기반 신약을 비롯해 치매 환자 유래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매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메디포럼은 뇌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활성산소 제거에 초점을 맞췄다. 메디포럼이 개발 중인 ‘PM012’는 7가지 한약재의 복합물질로, 글루코스 대사를 증가시켜 뇌호흡으로 발생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뇌세포를 공격하는 활성산소를 원천 차단해 신경세포 재생을 유도하는 원리다. PM012의 7가지 주요 성분은 베타 아밀로이드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신경염증 치료에도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치매 치료제 도네페질과 비교하는 임상 2상을 마치고 최적 용량을 찾는 임상 2B상을 진행 중이다.

김광섭 메디포럼 대표는 “도네페질은 독성이 너무 강해 식욕 감퇴, 구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천연물을 활용하면 이런 부작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치매 완화제 ‘리바스티그민’을 제조·판매하는 씨트리와 천연물 신약 개발 경험을 가진 아이월드제약 인수를 통해 치매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을 한 단계 높였다”고 전했다.

일동제약 ‘ID1201’은 멀구슬나무 열매인 천련자에서 추출한 물질을 활용해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물질은 체내에서 알파세크레타아제 효소를 촉진시켜 치매의 주원인인 베타 아밀로이드의 생성을 억제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올 초 국내 임상 2상을 마무리하고 지난 8월 임상 3상 승인을 받으며 개발에 속도를 냈다. 3상 임상시험은 국내 환자 1449명을 대상으로 진행될 계획. 치매 치료제는 임상 환자 모집이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메디포스트와 차바이오텍은 줄기세포 기반 치매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메디포스트의 ‘뉴로스템’은 동종 제대혈 유래 중간엽줄기세포를 주성분으로 삼았다. 메디포스트는 뇌에 직접 약제를 주입하는 오마야 리저브를 활용해 뉴로스템의 임상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기존에 출시된 치매 치료제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받는 뇌혈관 장벽 투과율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다. 베타 아밀로이드 외 타우 단백질 과인산화와 응집 억제, 신경세포 사멸 억제, 시냅스 기능 회복 등 다양한 효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뉴로스템은 2a상 중이다.

현대약품은 치매에 사용하는 도네페질과 메만틴을 합친 복합제 임상을 진행한다. 도네페질과 메만틴 성분 복합제는 국내 제약사로는 현대약품이 첫 번째로 시도하는 복합제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패치형 제품으로 틈새시장 공략

▷SK케미칼, 국내 최초 FDA 승인 쾌거

신약 개발 실패율이 99%가 넘을 정도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패치형’ 개발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국내 기업도 속속 늘고 있다. 도네페질을 비롯해 메만틴, 갈란타민, 리바스티그민 등 기존 치매 치료제의 복용 편의성과 지속성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2007년 처음 출시된 패치형 치매 치료제는 간편한 사용법을 앞세워 기존 치료제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연간 매출 12억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치매 환자는 음식물을 제대로 삼키기 어려운 ‘연하곤란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식도로 내려가야 할 음식물 일부가 기도로 넘어가 염증이나 폐렴을 일으키는 일이 다반사다. 심하면 알약을 삼키기도 힘들어 약 복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피부에 붙이는 패치형 치매 치료제는 인지장애로 인해 복약 시간·횟수를 기억하기 어렵거나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약물을 제때 투여할 수 있어 유용하다. 알약 형태의 경구용 제품과 효과는 같으면서 오심, 구토, 염증 등 부작용이 적고 위와 간에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제약사 중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는 곳은 SK케미칼. 자체 개발한 치매 치료 패치 ‘SID710(성분명 리바스티그민)’이 국내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는 쾌거를 올렸다. 치매 치료 패치는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핵심 기술인 TDS(경피전달체계)의 높은 기술장벽 때문에 경쟁사가 동일한 제형으로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SK케미칼은 2012년 자체 TDS 기술을 바탕으로 SID710을 개발한 뒤 EU 생동성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유럽 내 첫 번째 제네릭으로 허가를 받는 성과를 올렸다.

셀트리온은 아이큐어와 함께 ‘도네페질 패치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도네페질은 치매 치료제 시장의 약 70%를 차지한다. 아직까지는 알약 형태의 경구형 제품만 상용화된 상태다. 셀트리온과 아이큐어는 기존 1일 1회 경구제 복용과 비교해 1주일 2회 패치 부착으로 복약 순응도를 높이고, 패치 크기를 줄여 복용 편리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도 지난 3월 도네페질 패치형 치료제 ‘DA-5207’의 임상 1상 승인을 받았다. 한 번 붙이면 1주일 동안 효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보령제약은 라파스와 함께 패치형 제품을 공동 개발한다.

양동원 가톨릭의료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들이 하루에 몇 번씩 약을 챙겨 먹기는 쉽지 않다. 부작용까지 감안하면 패치형 제품의 장점은 확실하다. 피부 발진이나 가려움으로 패치제 부착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도 20%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해결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패치제가 개발된다면 수요는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치매 연구 국가가 주도

▷9년간 R&D 2000억원 투입

민간뿐 아니라 정부도 뛴다. 정부는 앞으로 9년간 2000억원을 투입해 치매 조기 진단·예방·치료 기술을 개발하고 치매가 생기는 원인을 규명해나가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초기 치매 환자는 누구든지 치매쉼터에서 인지 기능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돌봄 기능을 강화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정부는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를 공식화한 뒤 전국에 치매관리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치매 환자와 가족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맞춤형 사례관리, 의료 지원, 장기요양 서비스 확대 등을 추진해왔다. 이 흐름에 맞춰 2020년부터는 치매 극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중장기 연구에 착수한다.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0년부터 2028년까지 치매 극복 연구개발 사업에 1987억원을 투입한다. 연구는 ▲원인 규명·발병 기전 연구 ▲예측·진단 기술 개발 ▲예방·치료 기술 개발 등 3개 세부 사업과 14개 중점 기술 분야에서 진행된다. 특히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혈액과 체액, 생체신호, 감각 기능을 기반으로 한 진단 기술을 개발한다. 아울러 치매를 진단하는 영상 진단용 방사성 의약품을 개발하고, 치매 영상 진단 기술과 한국형 선별검사 도구, 뇌척수액 검사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근원적 치매 치료제 개발에도 착수한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치료제는 증상 완화 또는 악화 지연만 가능하고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2년간 마련된 치매관리 체계에서 돌봄 기능을 강화한다. 치매쉼터 이용 제한이 없어지고 이용시간이 길어진다. 전국 시군구 치매안심센터에 설치된 치매쉼터는 초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공간으로 인지 재활 프로그램과 상담,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까지는 치매 검사 후 장기요양 인지지원등급을 받기 전까지 하루 3시간씩 최대 6개월 동안만 이용할 수 있다. 재활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따라, 정부는 내년부터 인지지원등급자도 치매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용시간도 하루 최대 7시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인지지원등급은 신체 기능이 양호한 경증치매 환자에게 부여하는 장기요양 등급으로 지난 11월 말까지 1만4000명이 판정을 받았다.

국가치매관리위원장인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치매에 따른 국민 어려움을 덜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수요자 눈높이에 맞춰 치매국가책임제를 내실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단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 단 하나의 항원 결정기에만 항체 반응을 하는 순수한 항체. 항암제에 이 항체를 결합해 사용하면 정상적인 세포는 손상하지 않고 치료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7호 (2019.12.11~2019.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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