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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12월9~15일] 세계인권선언 70년 후 ‘인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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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8 22:45:07 수정 : 2019-12-08 22: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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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10일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던 순간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경축일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여서 당시 58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8개국이 세계인권선언 표결에 기권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기권 8표엔 악마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우선 기권 8표에는 이 인권선언이 서방세계의 음모와 관련이 있다는 소련과 동구 국가들이 포함돼 있었다. 훗날 세계가 동서로 갈리어 ‘인권’과 ‘이념’이 곧잘 부딪치는 바람에 얼마나 ‘인권’이 상처투성이가 됐던가.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기권을 한 것도 그렇다. 인종차별의 전시장 같았던 그 나라가 ‘한 표’를 포기했으니 인종차별은 없어졌던가. 엄격한 종교 율법과 여성 차별로 유별난 사우디아라비아가 버린 표도 한 표로만 계산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만도 아니다. 악마는 ‘디테일’도 아닌 수정란처럼 숨어 있다가 뒤늦게 부화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해 낙태권, 안락사, 동성혼 등 인권선언 당시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아’들이 태어나더니 무섭게 자라나고 있다. 그들은 존재이유가 충분해 당시에도 이미 미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으나 인류는 이를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인권 문제의 변두리에 서식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인권문제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의 유린이다. 제국주의 초기부터 서양 강대국은 ‘기독교 복음 전파’나 ‘문명화 사명’이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침략을 했었다. 그것이 호소력을 잃자 그들은 ‘인권’이라는 막연하고도 철학적인 용어를 앞세운 채 타 지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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